이삼규의 산과야생화

산행기/지리산행기

봉산좌골~심마니샘(1박)~반야봉~심원능선~심원옛길

구상나무향기 2021. 6. 2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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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천 도강

 

 

봉산좌골, 즉 봉산골을 의미하는 데 

봉산폭포에서 우측으로 이어진 골짜기를 얼음골, 봉산우골이라 부른다.

 

예전 봉산우골로 오른 적이 있었는데 거긴 볼 것도 짜달시리 없으면서 길만 험한

소위 "갈 길이 아니다"라고 단정 지어진 '혀 깨물' 루트다.

 

다시 말하지만 봉산우골은 일부러 갈 이유가 전혀 없는 고생길만 훤한 

마의 골짜기.

 

그럼 봉산골이라 부르는 봉산좌골은 어떨까?

 

나에겐 아직 미답의 장소.

이번에 심마니 샘터에서 하룻밤을 유하는 일정으로 코스를 잡아 보았다.

 

다만, 하산 코스를 심원옛길로 잡지만 않았어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산행으로 유종의 미로 남았을 추억.

 

심원옛길 잔혹사는 흑역사의 한 획을 크게 그은

정말 난감한 산행의 결정타였다.

 

 

 

 

계곡에서 복숭아를 주워 먹는 꿈은 딸을 가질 태몽이랬다.

 

 

 

봉산골,

지리산 골짜기 다운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는 원시림의 세상이다.

 

길은 끊어지기 일수고 희미해 직관에 따라 이리저리 계곡을 넘나들며

개척의 즐거움을 즐기는 개고생 길.

 

뭐 이런 곳에서 길 찾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냥 오르면 그게 길.

"뭐 지리산이 더 그렇지'라며 투덜거릴 정도의 딱 그 수준이다.

 

예전 기억력을 더듬어 보지만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봉산폭포가 이리 멀었나"하며 머릿속 지우개 성능에

감탄할 정도로 이미 기억은 저편으로 지워진 지 오래.

 

나는 입구에서 봉산폭포까지 지근인 줄 착각했고

더구나 길이 좋았다는 망상을 가진 것이였다.

 

그건 중간의 기억을 싹둑 잘라낸 것이었고 입구에서 여기까지

딱 3시간이 걸린 만만찮은 구간.

 

"너 제대로 기억하는 거 맞냐"

동료의 투덜거림에

 

"내 나이가 어땠어?"

아직 기억력 따질 나이가 아니기에 슬그머니 "길이 좀 안 좋았네"라며 딴청을 부린다.

 

 

 

봉산폭포

 

 

봉산폭포는 

예전에는 더 길고 멋진 폭포였지만 태풍으론 인한 수해로

 

밀려든 바위와 자갈로 지금은 폭포가 절반 이상 잠겨 버린 것.

유암폭포와 비슷한 운명을 가진 비운의 폭포다.

 

사실 봉산골은 여름이 최고의 장소.

가을 단풍은 그다지 멋진 곳이 아니고

 

봄이래야 이끼의 청초함을 표현하기란 버겁고

여름이 봉산골의 신비스러운 원시림을 표현하는 최고의 시기.

 

마침 전날 내린 비 때문에 수량까지도 적절했었다.

 

비 온 여름의 어느 날, 이곳을 찾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절반 가량 잠겨버린 봉산폭포.

 

 

봉산폭포를 지나면 바로 우측에 나타나는 큰 폭포가 보인다.

이곳이 봉산우골, 즉 얼음골의 들머리.

 

예전 이 폭포에 반해 이곳으로 올랐다가

허벅지의 텐션을 쓰라리게 느끼며 올랐던 기억이 새록새록이다.

 

"이 골짜기는 가급적 피해라"

나는 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인바디 검사해서 체지방 25% 이상 되는 사람들은

이 코스 삼가시라. 근육량 떨어지면 허벅지 경련 나는 코스다.

 



 

 

봉산우골의 들머리

 

 

봉산골, 즉 봉산좌골로 바로 스며든다.

오늘 목표인 심마니 샘터까지 쉼 없이 올라야 하는 미션.

 

적어도 해 질 녘까지는 도착할 거란 예상했는데

정확히 오후 6시에 도착, 861번 도로에서 5시간 동안 참으로 쉼 없이 올랐다.

 

 

 

애기괭이눈 잎

 

 

봉산골은 이끼와 함께 애기괭이눈과 왜갓냉이의 잎들이

우점하며 이곳을 더욱 초록의 세상으로 물들이고 있는 장관을 연출한다.

 

"지리산 어디에 이런 비경이 있을까?"

 

비단 국내의 여러 지역 어디를 가더라도

지리산만큼이나 원시의 비경을 간직한 곳은 보기가 드물 것이고

 

더더구나 이런 이끼 가득한 천혜의 원시림과

 태초의 비경을 보여주는 곳, 봉산골이다.

 

 

 

 

 

봉산골의 루트는 계곡으로 이어지는데

가급적 이끼를 밟지 않으려

 

옆으로 돌아 돌아 우회하여 봉산골 상부로 진입했더니

넝쿨 숲에 빠져 버려 박 짐 짊어지고 오르니 보통 고생이 아니다.

 

저 원시림의 비경 속, 이끼 밟고 오르면 산신령에게 한 대 맞을 듯싶어

힘들더라도 우회해서 올랐다.

 

오미자 넝쿨과 미역줄나무 그리고 온통 잡목과

너덜이 막고 있어 네발로 기어 기어 봉산골 상부로 치닫는다.

 

 

 

 

 

그 아름답고 신비스런

봉산골의 이끼계곡 몇장 감상해보자

 

 

 

 

 

 

 

 

 

 

 

 

 

 

 

계곡으로 바로 올라야 덜 힘들지만 일부러 우회해서 올랐다.

 

가급적 이끼를 밟지 않기 위해서다.

 

나 한 사람 때문에 이 지리산의 원시가 파괴되는 걸 원치 않는

자그마한 바람 때문.

 

함박골 실비단폭포라 불리는 이끼폭포가 사람들에게 의해

훼손된 모습을 보면 늘 가슴이 아프다.

 

 

 

 

 

 

뭐 찾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는 게 어찌 보면 가장 큰 보호이자 보존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사람만 찾지 않으면 자연은 늘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기에

 

조심스럽게 곁에서 지켜보고 

천천히 조심해서 한발 내딛는다. 미끄럽기도 하여 이곳은 정말 조심해서 올라야 할 코스.

 

 

 

 

 

 

 

 

 

 

 

 

최상류부에 오르니

어느덧 계곡은 사라지고 된비알 격정의 오름이 시작된다.

 

박 짐이 부담스러워 네발로 기어가며

오름질을 해야 할 정도의 경사도.

 

한발 한발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니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심장의 고동은 격동으로 울린다.

 

땀을 짜내듯 다 쏟아낸 어느 순간.

드디어 심마니 능선에 도착하니 한숨이 절로 쉬어진다. 

 

 

 

 

 

 

샘터 인근이 바로 봉산골 들머리.

조금 더 지나면 하점골도 있지만 하점골에 비해 봉산골의 난이도가 더 높다.

 

내려가기란 만만찮은 여정과 위험도가 도사리고 있으니

봉산골은 오름 코스로 선정하는 게 어떨지 싶다.

 

 

 

심마니능선에서 들머리. 샘터 인근이다.

 

 

심마니 샘, 이곳은 수차례 지나갔던 곳이자 

어느 가을날, 대소골에서 올라 삼거리 근처에서 야영도 했었다.

 

하지만 심마니 샘터에서 하룻밤 유할 거란 계획은 이번이 처음이다.

 

언젠가는 쉬어 보고 싶은 곳, 나만의 버킷리스트 하나가 성취된 그날.

 

그날 샘터 곳곳에 박 팀들이 선점하여

시끌벅적했었다.

 

 

 

심마니 터줏대감 가문비나무

 

 

조촐한 저녁.

걸인의 찬과 황후의 밥으로 가볍게 식사를 마무리하는 밤의 시간.

 

술은 없거나 아주 약하게.

자연의 소리에 동화하고 그 기운을 느끼며 일찍 잠자리에 든다.

 

뭐 사실 표현은 그렇게 하지만

피곤해서 바로 뻗었다고 보면 된다.

 

 

 

 

 

 

힘겹게 올랐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고 평온한 밤의 기운을 느끼며 

 

오늘, 그 격정의 시간을 되새긴다.

 

 

 

 

 

 

 

 

비 온다는 하늘나라 선녀들의 경고가 있긴 했지만

밤새 조용했고 아늑하기만 했었다.

 

아마도 마고할미의 기운이 선녀들 보다 강한 게 아닌가 싶다.

 

새벽이슬만이 이곳이 풀숲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을 뿐

습기는 없었고 개운했었다.

 

푹 자고 일어난 해돋이의 시간.

다만 밋밋한 출현이었다.

 

 

 

 

그저그랬던 해돋이.

 

 

 

아침을 부랴부랴 지어먹고

해돋이와 동시에 부단히 몸을 움직인다.

 

"일단 반야봉을 찍읍시다"

 

삼거리에 이르러 고생 보따리를 내려놓고

반야봉에 올라 기념하기로 하고 지근의 반야봉으로 오른다.

 

 

 

 

반야봉

 

 

 

 

"어디로 하산 루트로 정해 볼까"

 

사실 이 고민에서 두루봉으로 하산했어야 했다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론적 측면이었고

 

그때는 심원능선을 타 심원옛길로 걸어 쟁기소 인근 861번 도로로 돌아가고자 했기에

선택의 고민 없이 길 좋은 심원능선을 타고 내림의 즐거움을 느껴 보리라 했었다.

 

"오늘은 길 좋은 데로 좀 가자"

 

어제 봉산골의 험한 루트에 기가 빠져 오늘은 뚜렷한 길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

심원능선으로 가닥을 잡은 바.

 

심원능선에 대한 추억은 오름과 내림의 경험이 제법 많은 곳이지만

심원마을이 사라지고 난 뒤론 처음이다.

 

심원마을이 사라지고  이곳으로 접근하기가 힘들어

대체적으로 이 루트는 잘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심원마을 터.

 

 

 

한참을 타고 내려오니 어느덧 심원마을.

 

그 예전 서울산장이니 심원산장이니 하면서 이곳에서 수없이 잠도 자고

산채정식을 즐기며 가족단위로 놀러 와 여름 피서까지 즐긴 곳, 심원마을이다.

 

이젠 온갖 잡풀들이 우점하여 이곳이 예전 마을의 터였음을 보여줄 뿐

옛 영화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우측 계곡 한편에 우뚝 커니 감시카메라만

덩그러니 서있을 뿐 여기가 마을이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그냥 더 넓은 풀밭의 풍경이다.

 

 

 

 

심원마을 터

 

 

 

심원마을을 가로질러 심원옛길로 접어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직관에 따라 "저곳으로 가면 된다"하고 줄 곧 걸었을 뿐.

 

그러나 심원마을과 달궁까지 이어지는 옛길은 이제 묵을 대로 묵었고

길은 희미할 대로 희미해

 

수시로 끊어지길 반복한다. 그렇다고 계곡으로 가기도 벅찬 상황.

나는 이곳에서 어제 보다 더 한 진을 빼는 혹한 산행의 시간을 겪어야만 했었다.

 

산죽이 빼곡히 짙게 막고 있어 사람의 방향을 방해하고

길은 사라져 우측엔 낭떠러지의 계곡이라 이리도 못 가고 저리도 못 가는 형국이었고

 

오룩스맵의 구간은 선만 그어져 있을 뿐 거긴 길이 없는

그야말로 직관에 따라가야 할 개척의 상황.

 

박 짐의 무거운 짐을 지고 심한 비탈의 산죽밭을 이리저리 오가며

횡보를 했더니 짜내듯이 땀은 흐르고 또 흐른다. 

 

사실 옛길은 두루봉 능선을 하산해서 이어진 길과

쟁기소와 달궁 간에 이어진 옛길만 걸었지

 

이렇게 심원마을에서 달궁간 이어진 옛길을 다 걸어 보리란 생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경험이 없었다.

 

심원마을 터에서 두루봉 능선 입구까진

길은 거의 없다시피 한 원시의 상태. 길은 사실상 없고 계곡으로 내려가 걸어가는 게 

더 나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계곡 또한 상당히 위험했기에 산죽밭을 에둘러 뚫고 가야만 했었다.

 

"그냥 도로로 오르자"

 

결국 차 소리가 들리는 곳, 오룩스 맵을 이용

가장 도로와 가까운 곳을 찾아 무작정 산죽밭 비알을 올라 힘겹게 861번 도로에 올랐다.

 

정말 식겁했었다.

 

"아니 이 길이 이토록 힘들었나"

 

 

 

심원옛길의 만수천은 엄청 웅장하다.

 

 

만수천, 고생은 했지만 사실 심원마을과 달궁마을 간 이어진 이 계곡은

극찬 할 정도의 아름답고 멋진 소와 징담이 줄줄이 이어지는 천혜의 지리산 계곡이다.

 

"여기로 둘레길 만들면 엄청난 대박이겠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자연은 그대로 놔두는 게 최선이라고 하지만

사실 만수천 비경은 개인적으로 칠선계곡 보다 더 버금가는 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웅장한 으뜸의 비경이다.

 

지금은 사람이 전혀 다닐 수 없을 정도의 묵은 길이지만

계곡의 비경만큼은 지리산 어떤 계곡보다 더 뛰어난 환상적인 곳임은 추천하는 바이다.

 

시간 좋은 사람들이면 달궁에서 심원마을 간 

만수천만 돌아봐도 '엄지 척'을 외칠 구간이란 자평이다.

 

 

 

겨우 도로로 올랐다.

 

 

여기서 차를 세워 두운 곳까지는 제법 먼 거리.

달궁의 농장 바로 위 도로까지 한참을 걸었다. 

 

할머니의 잔소리에 농장에 차를 대지 못했기 때문이었는데

 

진은 진대로 다 빼고 겨우 도착한 달궁.

 

흑돼지와 3년 묵은 김치로 멋지게 마무리하며

지리산 1박 2일의 무탈함에 감사하고 회포를 푼 시간이었다.

 

고생은 고생이었고

추억은 추억.

 

"내일 점심 뭐 먹지" 만큼 갈등 큰 지리산의 루트 검색.

 

다음에는 제발 좀 쉬운 데로 가야지 싶다가도

막상 가면 또 거기서 거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덕동식당의 삼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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