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마라톤/마라톤대회 참여기

제15회물사랑낙동강울트라마라톤대회(100km)

구상나무향기 2020. 6. 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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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직한 뱃살, 비루한 정신력

 

 

 

 

코로나 시대, 비대면 접촉을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더는 마라톤 대회가 없을 줄 알았는데

 

물사랑낙동강 대회가 열린다는 단비 같은 소식에 냅다 신청을 했었다.

 

혹여 혹여 열리나 마나 노심초사.

 

게시판을 연신 기웃거려봤는데 다행스러운 게 대회 일주일 전까지

취소나 연기된다는 소식은 없어 안심하면서도 나름 걱정도 가득이었다.

 

늘어난 뱃살과 비루한 정신력.

 

코로나 핑계로 비육에 전념한 지난날을 한탄하며 대회가 취소되길 어쩌면

내심 기대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코스맵

 

 

 

 

 

물사랑낙동강 대회는 200km 전용 대회다.

여기에 100km(정확히는 103.5km) 부분이 따로 있는데 나는 이 대회에 참여한 것.

 

2018년에 참여해 완주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울트라 대회의 특성이 "예전에 뛰었는데 이번에 못 뛰겠어"라는 자만심이 통하지

않는 철각의 대회다.

 

즉, 옛날하고 하등의 관련이 없는 '지금의 나'가 완성하는 대회.

 

나태해진 정신력과 나른한 체력으로는 언감생심이다.

 

 

 

 

 

 

폼은 멋지게

 

 

 

 

 

코로나 때문에 전국의 모든 마라톤 대회는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울트라 대회 역시 마찬가지.

 

올해 1월, 비치울트라가 개최된 후 처음으로 열리는 대회가 

바로 이 대회다.

 

가뭄에 단비같은 대회, 많은 사람이 몰릴 줄 알았지만 참가자 수는 예전과 큰 차이가 없다.

 

사실 이 대회의 대략 난감한 코스 특성과

200km 전용 대회라는 특성이 메니아급(소위 미친 자) 아니면 참가하기가 힘든 탓이기도 하다.

 

 

 

 

 

코로나 시대의 마라톤 대회 풍경.

 

 

 

 

 

천태산 중턱과 배내고개의 막장 오름질.

밀양댐의 불볕 더위 속 격한 오름질.

 

이 대회 코스가 가지는 열 받는 상황과 욕지거리 터지는 상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히 명불허전.

 

"니미럴 뭔 코스가 사람을 잡냐"

 

넋 나간 마라토너의 넋두리는 배내골 어디매에 하릴없이 떠돌 뿐이다.

 

 

 

 

 

 

 

 

 

 

완주 제한시간은 18시간.

 

원래 17시간이었지만 코로나 시대 대회 불참에 따른 컨디션 저하를 걱정한

주최 측의 배려였다.

 

200km는 기존 36시간에서 38시간으로 늘려주었지만 언감생심 

나에겐 관심 밖의 딴짓일 뿐이다.

 

*사상 초유의 제한시간은 제1회이순신장군통영울트라마라톤 대회였는데

그때 19시간이었다.

 

 

 

 

 

얕은 정신력 저질체력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마라톤 정신이 바로 그 불광불급의 원천.

 

미쳐도 제대로 미쳐야지

나처럼 어설프게 미치면 늘 어쭙잖게 뛰 댕기다 혼만 비정상된다.

 

그날 딱 그랬다.

 

 

 

 

 

 

코로나 시대의 마라톤 대회 풍경.

 

 

 

 

 

"컨디션 어때요?"

대회에 출전한다니 주위 지인들의 걱정 어린 한 마디가 이어진다.

 

사실 일주일 전, 제주도에 3일 동안 다이빙 여행을 했었는데

 

어찌나 체력 방전이 심했는지 사실 회복하는 데 제법 시간이 소요되었고

뛰기 직전까지 체력 저하에 나름 허덕였었다.

 

역시나 대회 직전에는 쉬어야지 무리한 운동은 금물이다.

 

고수도 아닌 나 같은 하수는 절대 지켜야 할 철칙인 데 그놈의 다이빙 욕심에

그만 대회 직전까지 몸을 혹사시켜 버린 탓.

 

그 어설픈 판단은 대회 곳곳에서

"아이고 죽겠네"라는 곡소리로 되돌아왔었다.

 

 

 

 

 

 

 

 

 

49km 1cp까지는 거의 평지다.

을숙도 대회장에서 삼랑진역까지는 무척산 고개를 제외하곤 거의 평지 수준.

 

낙동강물사랑 대회는 전반부는 평지, 후반부는 (격한)오르막이다.

 

평지 구간인 전반부에

시간을 많이 벌어 놔야 하는데도

 

헉헉거리는 모양새가 영판 없는 두꺼비다.

 

제한시간 한 시간 더 늘었지만 결국 늘어난 시간만큼 농땡이도 늘었다.

 

 

 

 

 

 

코로나 시대의 대회장 풍경.

 

 

 

 

 

 

도착하는 CP 모두 저번 대회 때 보다 1시간씩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기량은 퇴보.

 

역시나 저질체력, 후회막급의 컨디션.

 

하지만 악착같은 집념과 근성은 그대로 남아 있었나 보다.

 

바닥으로 치달은 에너지를 끌어올리며

나름 고통의 허벅지를 다독거리며 분투하고 있었다.

 

 

 

 

 

 

 

 

 

 

 

 

49km, 1CP 늘품추어탕.

 

저번엔 6시간 30분 소요.

이번에는 한 시간이나 더 늦은 7시간 25분이 걸려 도착했었다.

 

제한시간이 1시간 더 추가되긴 했지만

 

나태해진 정신력,  고통에 아우성을 부리는

저질 체력의 콜라보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늘품추어탕, 1cp

 

 

 

 

 

미역국 한 그릇으로 속을 달래고

찬물로 정신을 차린다.

 

뛰면서 속 쓰림 때문에 혼줄이 났었다.

위장약을 챙겼어야 했는데 깜빡했던 것이다.

 

장거리를 뛰면 속쓰림 증세나 구역질 증세가 나오는 데 이때 위장약을 먹어 주면

효과가 좋다.

 

늘 챙기는 데 그날은 하필 빠뜨렸다.

쓰린 위장을 몸으로 견디며 밥을 넘기니 그제야 한숨 돌린다.

 

정제 소금도 틈틈이 먹었더니 그런대로 좀 낫다.

 

 

 

 

 

 

49km 1CP, 출발 전

 

 

 

 

 

이제 날도 밝았다.

 

곧 뜨거운 햇볕이 이 어설픈 런너를 괴롭힐 것이기에 나름 정신 무장을 단디하고

마음 가짐을 굳건히 한다.

 

아직은 얼굴이 밝다.

 

 

 

 

 

아직은 얼굴 때깔이 좋다.

 

 

 

 

콰이강의 다리를 지나 삼랑진역까지는

내내 지루한 도로다.

 

덤프트럭이 어찌나 많이 지나다니는지 흠칫흠칫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매우 위험했었는데 지친 자의 희미한 정신력에

아차하면 사고 위험 지역이다.

 

삼랑진역(61km)을 지나면 망할 천태산을 올라야 한다.

 

 

 

 

 

56.8km 콰이강의 다리

 

 

 

 

천태산 도로의 해악질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미 겪어봤지만 그렇다고 면역이 있을 리는 없고

 

그저 묵묵히 이 고통을 즐길 뿐이다.

 

"망할 천태산"

 

 

 

 

 

 

66km 천태산 중턱

 

 

 

 

서서히 얼굴이 망가져 간다.

일출 후 잠시 안개 때문에 시원했던 시기가 지나고

 

땡볕이 스멀거리기 시작하니 점점 더 지쳐간다.

 

"뛰어야 하는데 뛰어야 하는데"

라는 자책감은 늘어가는 시간과 더불어 뇌내에 울러 퍼지는 환청으로 들린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제한 시간에 걸릴 듯.

 

남은 코스의 험난함을 계산한다면

지금 시간으론 완주를 담보하지 못할 타이트한 시간대.

 

 

 

 

 

더위에 지친 어설픈 런너.

 

 

 

 

 

"뛰어야 한다. 뛰어야 한다."

 

원리삼거리를 넘어 배내고개 오르기 직전까지

수없이 되뇌는 내면의 외침.

 

70km~85km 구간.

 

야트막한 오르막은 배내고개에서 날 선 오르막으로 바뀐다.

 

지친 자의 발걸음, 머리를 푹 숙인 채

오기와 집념으로 무장하고 목적지를 향해 걷고 또 걷는다.

 

산딸기와 오디 그리고 매실을 판매하는 거리 판매대가 즐비한

배내고개 가는 길.

 

"뛰어야 되는데"라는 소리는 거의 잠꼬대 수준이다.

 

 

 

 

 

망할 천태산

 

 

 

 

 

"니미럴 배내고개"

 

망할 천태산을 넘으면

더 격한 오름질로 헐랭이 런너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곳, 배내고개다.

 

원리삼거리에서 걷다 뛰다 정신줄 부여잡고

허벅지 통증을 눈물로 달래며 올라야 하는 구간.

 

갖은 욕설을 다하며 오른 배내고개.

수박화채의 시원함으로 앞으로 가야 할 고비를 계산하니 시간은 부족하다.

 

 

 

 

 

86km 배내골 삼거리 가는 길.

 

 

 

 

 

85km 배내고개를 지나고

내리막을 뛰고 뛰니 배내골 삼거리(86.5km)다. 여기서부터 밀양댐 정상까지는 오르막.

 

그런데 이 구간 오르막은

땡볕과 씨름하며 올라야 하는 저승 고갯길이다.

 

정말 덥다.

대충 30도 이상의 무더위

 

이 열기를 온몸으로 견디며 이 고역의 현실을 벗어나야 할 위기의 구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체력과 정신력은 급격히 흩어지는 모래 신세다.

 

 

 

 

 

 

90km 밀양댐 오르면서, 정신이 거의 나갔다.

 

 

 

 

 

밀양댐 오르막은 진정한 시험의 구간이다.

정상이 90km..

 

이 구간을 지나면 내리막 일색이지만 그렇다고 활기차 게 뛸 형편은 아니다.

너무나도 힘든 구간.

 

저승사자가 왔다 갔다,  정신줄 놓고

다리만 들었다 놨다를 반복할 뿐이다.

 

 

 

 

 

밀양댐 구비구비

 

 

 

 

 

밀양댐 정상에서 표충사 갈림길인 아불 삼거리까지가

근 10km 거리다.

 

거리 보단 심리적 거리가 더 멀었을 구간.

 

쉴 새 없이 달려드는 덤프 트럭들의 위협.

 

지친 런너의 갈지자 행보, 도로가 협소해 아주 위험한 구간이다.

 

시간 대비 아슬아슬 완주의 거리.

쉴새 없이 뛰고 또 뛴 땀의 시간들이다.

 

저번 대회와 완벽한 데쟈뷰다.

 

즉 어설픈 기운은 그때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는 거. 역시나 헐랭이 런너다.

 

 

 

 

 

표충사 주차장이 도착지. 103.5km

 

 

 

 

 

"도대체 나는 왜 이런 개고생을 즐기는가?"

 

시원한 안방에 누워 수박이나 먹고 쉬지

왜 이러고 사는가?

 

뛰면서 늘 궁금해 하는 나의 철학적 질문.

 

그러나 늘 답은 대회장에 있고 나는 그 질문의 답을 뛰면서 하고 있다.

 

 

 

 

 

 

 

 

 

왜 뛰는가?

 

답도 모르 면서 늘 뛴다.

 

후회하면서 뛰고

포기한다면서 뛰고

집념으로 뛰고

 

어쨌든 뛰고 있다.

 

 

 

 

 

103.5km,  표충사 주차장

 

 

 

 

그리고 앞으로도 뛰고 있을지 모르겠다.

뛰는 내내 "다시는 대회에 나가나 봐라"

 

다짐을 했지만

슬그머니 그 다짐은 내면의 나와 타협한 지 오래다.

 

벌써 다음 대회를 신청하고 있으니 

 

팔자가 사납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완주했다.

 

앞으로도 그러길 바라마지 않는다.

 

변함없이 한결 같이,  완주의 그 순간.

내가 거기에 서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의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내 인생 최대의 수식어

'개고생'이다.

 

 

 

 

103.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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