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마라톤/마라톤대회 참여기

제15회 부산썸머비치100km울트라마라톤대회

구상나무향기 2019. 8. 1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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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폼은 멋지게>






"아직 반환점이 멀었나요?"


간절곶 어드매에서 외치는 소리는 간절함을

넘어 숨 넘어가는 절규에 가까웠다.


"4km는 더 가야할거에요"


내가 하필 물어도 준족의 런너에게

말을 걸었을 듯하다.


그분은 이미 반환점을 찍고

서둘러 돌아오고 있는 런너였다.







"헉~ 뭐라구요"


4km라는 거리에

나는 좌절감과 아픔 쓰라림의 다변스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으니


"이러다 컷오프에 걸리겠다"













사상 첫 컷오프 탈락이라는

수모가 목전에 다아있는 상황.


그날, 썸머비치 대회에서 벌어진 헐떡이며

쓰러지듯 뛰어가고 있던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사실 내가 물어본 그분은 후미가 아니였었다.

나는 그분이 후미 주자인 줄 알고 실망했었는데


뒤로 줄줄이 뛰어오는 수많은 주자를 보고선

안심했었다.


컷오프는 다행히 면했다.







<출발은 선두, 도착은 꼴찌>





지금껏 단 한 번도 컨디션이 좋아

뛰어 본 대회는 없었다.


역시나

심술은 대회를 알아보는가 보다.


일주일 전, 탈이나고 말았는데

몸살끼에 무기력감 그리고 설사 증세까지 보이는 게 아닌가.


"하여튼 이런 헐랭이 같으니라고 "


역시나 핑계거리가 없나 싶어서

스스로 핑계를 생산해내는 몸뚱아리 답다.











대회는 임박했고

컨디션은 정말 바닥을 파고 있었다.


작년, 통영대회 때 나는 18시간 40분이라는 초유의

시간으로 완주한 전력이 있었다.


그때 당시 제한시간은 지금껏 없었던 19시간이었기에

가능했던 대회.





<100km 참여자는 180명>




여긴 썸머비치다. 제한시간은 17시간.


코스의 험난함이야 통영보다 덜하겠지만

역시나 밤의 무더움과 열사의 고통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주자가 안고 겪어야 할

고통의 무게는 똑같다는 것이다.









썸머비치대회 참가는 이번이 3회째.

두 번 모두 멋지게 완주했던 전력이 있기에


이 코스에 대한 이해도는

남다르다는 자평이었지만


착각은 자유였다.


머리속 지우개가 싹 지웠는가 보다.


제기랄

경험, 그따위는 뛰다 보니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힘든 건 매일반.


그저 '지금의 실력'이 말해주는 거지

지나간 경험은 개차반일 뿐이다.





<자발적 개고생>




해운대 송정 일광 칠암 서생 간절곶


동해안 풍경은

지겹도록 실컷 보고 온다.


거기서 한갓지게 쉬고 있는 피서객.


개발에 땀나도록

헉헉대는 가녀린 런너와의 대비.


누군 개고생

누구에겐 별천지.


같은 풍경

다른 심정


나도 피서객이고 싶다.











송정해수욕장에 접어드니 무더위는 점입가경이었다.

출발 당시 영상 34도.


해운대를 지나 송정해수욕장 도착까지

열사의 기운은 좀처럼 떨어질 기미가 없다.


그저 혓바닥을 길게 내밀며

땡칠이가 되어 이 기운을 즐기고 또 즐겨야 하는 시간.


자발적 개고생은

남에게 하소연도 못한다.








<장유마라톤 회원들, 모두 50km에만 출전했다>




해운대해수욕장의 열사는

정말 뜨거웠다.


이글거리는 지열을 온몸으로 부딛치며

달맞이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이때가 불과 5km 지점.


그런데 숨은 벌써 타들어간다.






<해운대해수욕장>



정신줄 시시각각 놓는 장면들이다.


시간대별로 찍은

셀카.


마지막 사진은 아마도 송정 해변에 접어든 싯점일 것이다.

그때 이후론 손가락 까딱도 못했다.





<18:30>






<19:00>







<19:40>









<21:40>








<03:18, 대략 67km 통과>








<06:40, 대략 88km 통과, 송정해수욕장 입구>






"도대체 반환점이 어디야"


헐랭이 런너의 다급함은

다리에 고스란히 전달되어 부하만 잔뜩 걸리고 있었다.


반환점은 진하해수욕장 인근 간절곶스포츠파크.


부산에서 울산까지.

거길 왕복하는게 썸머비치 대회 코스다.









<연화리 해안가>






밤사이 열기는 많이 가라앉았고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함까지 더해진다.


간신히 반환점에 도착하니

턱걸이에 걸렸다.


반환점에서

우겨넣듯 시락국을 집어 삼키곤


서둘러 엉덩이를 떨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여기가 어디더라?>





지금껏 없었던

초유의 늑장이었다.


컨디션 난조가 심술을 부린탓.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과거의 일.


마라톤은 뛰면 된다.

쉬지 않고 뛰고 또 뛰면 되는일.


그게 마라톤이다.









돌아갈 때 몸상태는 한결 수훨했고

근육통은 참을만 했으며


기운은 쇠락했지만

20km까지 내내 쉬지 않고 뛰고 또 뛰었다.


정신줄 놓고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내 뛰었더니

어느듯 70km 지점이다.








<여기 어디?>




초반, 잃었던 많은 시간들을

보상받기에 충분한 저력이었다.


물도 마시지 않았고

먹지도 않았다.


뛰고 또 뛰고 정말 쉬지 않고

뛰었던 뜀의 시간이었다. 지난 통영 대회와는 차원이 다른 몸상태.


몰입했을 땐

기억도 없다. 그저 앞만 보고 뛰고 또 뛴 시간만 있을뿐.










어느듯 기장군청.


갈 때 25km

올 땐 75km 지점이다.


나는 기장군청에 도착했는지도 모르고 뛰었었다.


이제 살살 걸어도 충분히 결승점에

도착할 정도의 여유의 시간.









송정을 지나니 일출이 돋아난다.


긴박하 게 뛰었던 지난 시간.

이젠 천천히 걷고 걸으니 되려 더 근육통이 욱신 거린다.


너무 심하게 뛰었나보다.


쥐가 나 퍼지고 앉아 울면서 주물기를

서너 번했었다.












해운대에 다시 접어드니

어제와 달리 산들바람이 시원하게 주자를 맞이해준다.


바야흐로 가을의 바람.


수많은 동호인들의

응원이 오고 가는데 그들의 격려는 늘 힘이 되어준다.


묵묵히 혼자 견뎌야 하는

마라톤의 품격이지만 그래도 응원 한마디에

힘이 나곤 한다.











기장해안부터 결승점 20km 구간을

내내 걸어버렸다.


중반, 너무 무리하게 뛴 탓이 크다.


뛸 힘도 없었고

또 뛸 이유도 없었다. 물론 시간은 넉넉했었다.


나는 늘 꼴찌 완주에 만족하는 런너다.

욕심 따윈 애초에 없다.






<완주>





완주만 하면 된다.


너무 잘 뛰어도 싫고

설사 제한시간을 넘겨도 무관하다.


그저 나는 주어진 시간에 완주만 하면 된다.

그게 내 목표다.










그런데 더울 때는

정말 힘들다.


시원할 때 뛰자

사람 죽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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