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마라톤/마라톤대회 참여기

제13회 영동곶감울트라마라톤대회(101km)

구상나무향기 2019. 10. 1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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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대회, 벌써 7번째 출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9분을 남겨두고 제한시간내 완주를 해냈다.



200940km 지점. 부상으로 포기

201016시간 9

201115시간 59

201415시간 59

201615시간 50

2017년 15시간 46분

2019년 15시간 51분





<나는 늘 기차를 타고 영동을 간다>





"85km가 어디였더라"


도로에 5km 단위로 거리 표시를 해두었는데

나는 85km 지점 표시를 보지 못했었다.


"내가 못 봤나, 아님 없었나"


머리 속은 복잡했다.

시간상 제한시간을 넘길 수 있었기에 나에겐 85km 지점 통과는 매우 중요했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

마치 자장가마냥 졸음을 덮친다.


하염없는 어둠 속, 맥없는 런너의 투덜거림은 그렇게 어둠 속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영동 대회, 나에게 그해의 마지막 대회다.


10월 이후엔 울트라마라톤대회가 잘 없을뿐더러

설사 대회가 있다 해도 추워서 뛰기 싫다.


영동 대회는 계절적으로 가장 뛰기 좋은 시기에 열리는

대회라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지만


주로가 가지는 험난함은 명불허전.

만만한 대회가 절대 아니다.










대회가 다가오기 한달 전부터 이미 나에겐 대회가 시작된다.

교통편 준비는 진즉에 하는 것이고


장거리 훈련을 해야하고

단거리 훈련과 신체적 능력치를 맞춰야 한다.


그리고 먹는 것도 가린다.

무작정 먹는 게 아니라 나름 조절해야 한다.






<역대 완주자 명단, 나도 저기 이름 있다>






실력은 형편없지만

그나마 이런 순간순간의 노력들이 완주라는 쾌거로 돌아오기에

나에겐 모든게 완주를 위한 과정이다.


무작정 준비하는 게 아니라

미리미리 준비하고 역량을 키워 나가는 게 정말 중요한 훈련의 과정이다.










마라톤에서 정신력은 두 가지다.


하나는 준비과정 중 유혹을 멀리하는 것

하나는 대회 중 인내하는 정신력


둘 다 어렵다.




<낼모레 70세 나영철님>








체중이 불어나지 않게 조절하고

정신적 스트레스나 질병에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말이 쉬워도 그게 제일 어렵다.


인생사에 치우치다 보면 이리저리 몸 관리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닐터.


방심하면

기량은 한순간에 민들레 홀씨가 된다.


뛰어보면 몸부터 안다.

그걸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완주하는 '쾌거의 나'는 볼 수 없기에


늘 경계해야 한다.






<다들 내 덩치가 커보인다 하는데 허리 31, 사이즈는 100>







어느덧 2년이 흘렀다.

작년, 딸의 대학 준비 때문에 대회를 나가지 못했기에 2년 만에 출전하는 영동 대회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행히 '조건'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몸뚱아리는 주저럽긴해도 여전히 그대로고

컨디션이야 늘 불량하니, 상태와 조건은 매일반이다.


'오기와 집념'.

승패를 가르는 건 바로 이거다.












초반엔 능력껏 잘 달렸다.


10km, 1시간

20km, 2시간 10분

30km ,3시간 47분


이 정도면 개인적으로 상당한 달림을 이어갔다는 자평.


능력에 비례해 30km을 4시간 안에 뛰었다는 건 컨디션이 무척이나

좋았다는 증거이기에 살짝 웃음끼 마저 감돌았다.


그러나...




<영동 대회만 10년째, 세월이 흘렀다>





도덕재와 용화재를 넘어가면서 시간은

더디게 더디게 발목을 부여잡았으니


역시나 시간은 마라톤의 숙명인 것인가

부여잡은 발목을 쉬이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뛴다고 뛴게 생각보다 느렸든 모양이다.
















"강력한 태풍의 영향으로 강풍이 불고

날씨가 흐릴 것이니 보온에 주의하세요"


일본에 역대급 태풍 '하기비스'가 덮친다는 기상 예보에

영동 대회 주최 측의 긴장 어린 충고가 귀에 따가웠다.


그런데


그날, 보름달은 휘엉차 렌턴을 꺼고 달렸고

바람은 시원했으며, 별이 총총 쾌청한 가을 하늘을 보여준 그날이었다.


달리기엔 최적의 날씨 그 이상.

태풍이 되려 구름을 싹 걷어가 버린 영동의 하늘이었다.









도마령 직전, 54km 5cp다. (cut off 8시간 30분)


여기까지 어떻게 뛰어왔는지 기억에도 없을 정도로

정신 없이 뛰고 또 뛰었다.


이제

미역국 한 그릇으로 허기를 채우고 서둘러 올라야 한다.




<미역국 식사>





도마령은 영동 대회 최고의 정점이자

고된 구간이기 때문이다.


속은 거북하고

허벅지의 텐션은 시간이 갈수록 부하를 일으키고 있지만

느긋할 수는 없다.


도마령 오름은 속보로

내리막은 무릎을 보호하면서 조심스럽게 뛰고 또 뛰어본다.







<5cp 출발 직전>






역시나 도마령을 넘어

일직선의 고요하고도 적막한 주로를 뛸 땐 고립감이 상당했었다.


7번을 뛰지만 역시나 이 구간은

정신력으로 버텨야 할 고행의 순간이다.


졸졸 흐르는 하천의 물소리

보름달의 휘엉찬 빛을 벗삼아 뛰고 또 뛰는 영동 대회 최고의 카타르시스의 시간이다.









몰입감과 집중력에선

최고의 순간.


"쉬어본 시간이 있었나?"


자문하지만 역시나 쉬어본 적이 없고

걸어본 적도 없다.


오로지 뛰고 또 뛴 뜀의 시간.

하지만 시간은 녹록치만은 않았다.


80km을 통과했을 때 제한시간은 목전에 다아 있어

근육의 아우성을 무릅쓰고 쉬지를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뛰어가도

 85km가 보이질 않는 것이다.


"어...어디갔지"














"이상하네 분명 80km을 지난지 제법 되었는데"


74km CP에서 10km 이상을 지나왔지만

느낌은 암울했었다.


사실 85km 지점을 보진 못했지 이미 통과했고

한참이 지난 후였다.


난 그것도 모르고 조바심만 낸 것인데


그만큼 시간은 여유를 담보하지

못한 상태였든 것이다.









"어..노근리 평화공원이다"


경험상 저기가 90km 지점을 알기 때문에 나는 이 간판을 보고

매우 반가워했었다.


"휴~85km 지점을 통과했었네"


지금까지의 남은 시간 계산으론

아직 85km을 통과 못했다면 제한시간내 도착은 무리였기 때문에


제법 긴장했었다.










노근리평화공원 9cp, 89km 지점.


이때가 제한시간을 1시간 40분을 남겨둔 싯점이었고

남은 거리는 12km. (영동 대회는 101km)


"젠장 또 더럽게 뛰어야 되네"


이놈의 팔자,

한번도 편하게 뛰어본 적이 없다.


이제부터 뛰어도 주저럽게 뛰면 안 된다.

힘차게 뛴다해도 턱걸이로 들어갈 수 있는 마의 시간대.


"90km에서 전력 질주라니"











여기서부터 1km 단위로 거리 표시를 해두었는데


km당 7분이나 8분대로 뛰어야 되는 숨막히는 미션의 구간.

1km 마다 시계를 보면서 뛰었다. 더 늦으면 안 된다.


정말 미치도록 환장할 '혀깨물 타임'.


사실 이 구간은 지금도 그렇치만

앞전에도 그전에도 똑같이 그랬었다.


이놈의 팔자, 맨날 실력이 거기서 거기다.












100km 지점을 통과하고

마지막 1km가 남은 싯점.


그제야 안도가 쉬어진다.

이제 1km을 걸어도 제한시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1km가 남았을 때라야 안도가 될 만큼 나의 실력은

늘 간당간당하다.









하지만 이번만 그랬든 건 아니다.

어느 대회나 늘 그래 왔고


나의 울트라마라톤 대회는 항상

이런 스토리였다.


극한의 데쟈뷰가 12년째 이어지고 있다.












어쨌든 저쨌든 주저럽거나 말았거나

난 완주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혀를 깨물거나 말았거나

난 완주했다.


그게 나의 목적이었고 목표였기에

누구보다 행복하고 희열차다.


나는 할 수 있다.

아니 나는 "앞으로도 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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