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마라톤/마라톤대회 참여기

제14회한밭벌울트라마라톤대회(101.2km)

구상나무향기 2019. 5. 1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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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16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뛰면서 머릿속 생각은 그다지 하지 않는 편이다.


아니 어쩌면 안 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머릿속은 백지상태.


온통 '거리와 시간'이라는 이 악질적이고 끈질긴

집착과 숙명의 콜라보에 사로잡힌 한 명의 갸녀린 런너일 뿐.


나는 생각이 없다.










잘 뛰는 사람이야

훌쩍 뛰면 제한시간이라는 굴레에 자유스럽다.


하지만 난 늘 그 굴레에 자유롭지 못하다.


허우적 대도

졸음에 겨워도

어설프게 뛰었다간 여지없이 걸려버린다.


잠깐 방심하면 제한시간이라는 숙명적 굴레에

명예는 퇴색되기 일수.


나는 늘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혀를 깨물며 사투를 벌이는

한심스런 주자다.










이 대회의 제한시간은 17시간.

어느 대회든 제한시간은 주로의 어려움과 직결되는 합리적 시간을 내포한다.


다른 대회보다 제한시간이 길다는 건

그만큼 어렵다는 대회 특성의 반증.


역시나 계족산 임도의 13km은

지금껏 겪어온 난감했던 수많은 주로 중 으뜸이었다.





<뛰어라 돼지야>





명불허전,


시간은 살떠난 활마냥 지나가고

제한시간은 목전에 임박하 게 만드는 계족산이었다.


"아니고 니미 쓰브럴 이건 계족산이 아니라 개좆산이여"


나는 욕을 만발로 쏟아내며

계족산의 임도를 뛰고 또 뛰어냈다.


맨발축제를 위해 황톳길을 정성껏 깔아 놓은 계족산.


난 그곳에서 정신줄 놓고 있었다.










주로는 작년 대회와 달리 변경되었다.


한밭벌대회는 주로의 험난함으로

악명이 자자한 대회였기에


주로가 바뀌었다고 하니 내심

이번에는 잘 완주할 수 있을거란 기대감을 가졌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두 번의 도전을 했었고

두 번 모두 실패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


처음엔 위경련

두 번째엔 우천으로 인한 물집이 원인이었다.


철치부심

나는 칼을 갈았고 이번이 3번째 도전이었다.










뭐 편할거라고?


"착각도 자유십니다" 라는

울림은 대회 곳곳에서 느껴지기 시작했었다.


사실 바뀐 코스는 되려 더 난감한 주로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명불허전이었다.


50km에서 70km 사이까지


이게 기가 막힌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분명 1시간 30분 페이스로 뛰었다고 여겼다.


그런데 도착하면

어김없이 2시간.


10km 구간을 뛰었데도 2시간이나 걸리다니?





<날아라 돼지야>






말도 안 되는 시간에 기가 막혔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주최 측에 하릴없는 투정을 부리지만 돌아오는 건

기량 부족을 탓하라는 책망의 눈빛.


알고보니 그 CP간 거리는 10km가 아닌 12km~13km.

그시각 몸뚱아리가 느끼는 지루함은 배가 될 타이밍이었기에


이팝나무와 아까시아향이 얼마나

찐하든지 아마도 그 냄새에 더 몽롱했는지 모를 일이다.


죄없는 주최측을 탓하며

누군가에게 해댄 볼맨소리는 어둠 속에 맴돌 뿐이었다.










투정은 투정일뿐

어쨌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주자는 그에 맞게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인지상정.


런너는 시간이라는 숙명적 존재에게

어떻게든 애교를 부려야 한다.


뛰고 뛰고 또 뛰고

참고 참고 또 참고


마라톤은 그런 것이다.


사실 어떤 이유고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어설픈 합리화에 불과한 것.


치기어린 투정 속, 어쨌든 시간은 촉박했고

계족산 임도를 맞닥뜨렸다.











계족산 임도에 들어선 시간,

으슴푸레 동녘의 빛이 침침하 게 밝아올 무렵이었다.


랜턴은 꺼고 새벽 기운에 졸음 겨운 신체를

다독거리고 있을 시기였었다.


계족산 임도를 다 뛰면 90km.









"헉! 저게 뭐야"


입구에서부터 치를 떨게 만드는 오르막.

황톳길이 산마냥 쏟았다.


허벅지의 텐션과

무릎 인대의 쓰라림을 즐겨야 하는 각도다.


겨우 한고비 넘기면 또 나온다.

무한반복


마치 큰 미로 속에 갇혀 버린 듯한 착각마저 들게한

계족산의 질주였었다.


"개좆산"

나는 이름을 바꿨다.









<계족산 황톳길, 인터넷 발췌>







초반, 주로는 대체적으로 평이했었다.

대전 갑천변을 돌아드는 형식.


이는 울산 태화강 주로와 비슷한데

강변의 평지다.


그후 50km부터는

길고 긴 외로움을 즐겨야 하는 어둠 속 주로다.


특히나 은근한 오르막으로 이루어진

50km~60km 사이에선 신체적 무력감이 절정에 달한다.


나는 이 구간에서 카페인젤을 먹어

졸음에 대비했었다.


마치 평생 끝나지 않을듯한 오르막이

주자의 인내를 시험하는 구간.













한밭벌대회는 61km에서 식사를 제공한다.

대체적으로 50km 즈음에 식사를 제공하는 다른 대회와는 조금 다르다.


그리고 다시 갑천으로

돌아가는 루트.


70km, 계족산으로 가는 갈림길.

이후 90km까지 계족산 임도에 혼을 갈아 넣어야 한다.


계족산 임도를 뛰고 오면

다시 갑천변과 맞닥뜨리는 데 거기가 95km.


이후 대회장까지 6km 구간을

땡볕과 씨름하며 나른한 달림을 이어가면 된다.






<대략 98km>




동이 트고 아침의 활력이 가장

좋을 시간


물론 나는 머리 처박고

혼이 비정상이었을 시간이었다.


아마 저때가 98km 정도가 아니였나 싶다.


3km 정도만 남았을 싯점인데도

나는 쉬지 않고 뛰었다.


뛰어야 한다는 의무감

사실 마라톤에서 걸으면 자책감이 생기기 마련.


어쨌든 마라톤은 뛰어야 한다.





<다왔다 힘을 내자>





걷지 않고 뛰었다.

그게 나에겐 자랑거리고 대견함의 위안거리다.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도

뛰고 있었다는 자부심.


별거 아니지만 그건 또 다른 집념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즉 힘이 남아있었다는 반증.

내가 대견스럽다고 여기는 이유다.





<대략 98km>





엑스포다리가 저만치서 보인다.

드디어 오늘 이 인고의 시간을 끝낼 마지막 종착지.


언제나 그렇치만

혹한 시간을 끝내고 다가오는 이 마침표의 즐거움 때문에


나는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지 모를 일이다.











3번째 만의 도전 그리고 성공.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그동안 체력을 유지했고

정신력을 유지했으며

그리고 대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생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아무나 뛸 수 있고

아무나 참여할 수 있지만

만족은 노력한 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력한 자와 놀고 먹은 사람이 같을 수 없음이다.

우린 그걸 인생이라 부른다.


인생, 성질 더러븐 놈


그놈은 절대 용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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