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마라톤/마라톤대회 참여기

이순신장군 통영100km울트라마라톤대회

구상나무향기 2018. 7. 3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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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즉 미치도록 해야 뭔가를 이룬다는 말인데


이 달리기만큼 불광불급의 인내심을 자극하는 스포츠도 드물듯하다.


인내심과 체력을 극한까지

시험하는 진정한 미친 자들의 퍼레이드이자 놀이터.


바로 마라톤대회장이다.










"아이고 이 미친놈아"라는

소리는 예적부터 들어왔기에 새삼 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아이고 너 진짜 미쳤구나"라는 소리는

이번 통영 대회 참여에 따른 후유증 오지랖 잔소리다.


무엇보다

전자의 '미친놈'과 후자의 '미친놈'은 격이 다르다.


이번 통영 대회 출전에 대해서는

가족과 지인에게 함구했었다.





<마법의 무기>






가족들에게 함구한 이유는 하나.


"폭염"


더워도 더럽게 더운 이 폭염 속에서 '개고생 + 개고생'을

자처하며 개발바닥에 불이나는 상황을 즐겨야 하는 극한의 현실.


"너 진짜 미쳤구나"라는 탄식의 오지랖이

귓등을 스칠 건 자명한 사실이기에 그래서 입 닫았다.








<개고생 +개고생>




무엇보다 완주에 대한 자신감은

상당히 결여되어 있었든 건 사실이었다.


나 역시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기우가

내내 이어졌었다.


평일 밤, 10km 뛰는 데도 땀은 비 오듯 흐르며

몸에서 일어나는 열기는 주체를 못 할 지경이었는데


"이 폭염 속에서 100km을 뛴다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책망감은 당연한 의문부호였었다.














통영대회 코스는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악명 높기로 자자했었다.


대회는 1회 대회지만 이 코스는 여러 차례 통영마라톤대회와

통영거제울트라대회를 통해 이미 경험해봐서 알고 있었든 바.


코스의 난이도와 험난함은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수준을

넘어서 혀를 내두를 지경.


뛰어 본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대회장 주변>




벅찬 코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열대야 + 폭염'의 현실은 극복해야 할 최대의 방해물.


30도 안팎의 열대야,

35도 이상의 불볕더위(체감온도 38도는 옵션)


빠져 나갈 구멍은 보이지 않는 1타2피 극한의 개고생이

뻔히 보이는 현실이었다.






<코스맵>





주최측 제한시간은 19시간.

이건 울트라마라톤 대회 역사상 초유의 시간이다.


공식적으로 이렇게 제한시간을 많이 둔 대회는 당연코 없었기에


"왜 이렇게 시간을 많이 주지"라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건 사실.














하지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마라톤대회에서 제한시간이 길다는 건 딱 한가지


"코스의 험난함" 바로 이것이 이유의 전부다.


울트라마라톤에서 제한시간은 

'합리적인 이유'를 내포하고 있기에 시간만 봐도 대충 대회의 성격이 나온다.












미증유의 압박감이 상당한 오르막 주로.


그런데 거기에 폭염은 서비스,

즉 완벽한 '개고생 + 개고생'의 콜라보다.


초유의 제한시간 조건을 갖춘

진정한 미친자들의 향연이 바로 이 통영대회인 것이다.






<美친자들>





"그러다 쓰러진다"

그건 엄연히 해보지 않고 설레발로 떠드는 자의

헛소리일뿐


뛰어보지도 않고 미리 말하지 못하는 바다.


뛰자, 뛰어보자

겪어보면 알터.


폭염이 날 쓰러뜨릴 지 아님 내가 기어서라도 골인할 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이 대회장에 서서

똥폼을 지기며 V자를 그리고 있는 이유다.









<초반 10km 구간>




그러나 기우는 곧 현실로 다가왔다.


"우와 정말 장난 아니네"


불과 20km을 뛰었을 뿐인 데도 나는 탄식을 내지르고 말았다.


20km 같으면 평소 2시간 정도면 충분한 데

그날 나는 3시간을 훨씬 넘겨 도착했으며


50km 통과할 땐 8시간 30분을 기록,

흑역사의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이토록 늦게 뛰어낸 건 역대급 저조한 기록.


그만큼 코스의 압박감은 상당했고 열대야의 현실에서 빠른 속도로

뛰어내지 못했다는 나름의 자책스런 이유다.






<52km,5cp>




그런데 문제는 60km 이후 부터.


이제 해가 뜰 싯점이 점차로 다가오니 긴장감이 감돈다.


불볕더위라는 무식하고도 화끈한

저승야차가 이 어설픈 주자를 잡아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50km에서 60km까진 그나마

시간은 늘어졌지만 꾸역꾸역 거리를 소화하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폭염 속 이라도 나름 새벽에는 견딜만했고

코스 또한 평지가 자주 나타나 거리 줄이기엔 최적의 시간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울트라런너인데

뛸 땐 뛰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얼굴은 점차로 망가져가고 있었다>




정제 소금은 수시로 삼켰는데

갯수를 세지 못 할 정도.


하지만 소금 덕분인지

되려 후반으로 갈수록 물은 거의 먹지 않았을 정도로

마시는 물의 양은 크게 줄어 들었다.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10km 단위로 있는 cp.


60km 후반부터는 cp에서  받은 물을

고스란히 남겨 다음 cp에 도착했을 정도였다.





<오전 10시경>





해가 뜨니 역시 기대(?)했던 대로

폭염은 주자를 시시각각 희롱하며 탈진의 저주를 부린다.


뛰고 싶었다.


의외로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고

체력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뛰지를 못했다.

너무 더워 진을 빼기 때문이었는데


이글거리는 지열보다 이게 더 나를 열받게 하는 현실이었다.






<오전 11시경>





역시나 일출과 동시에 온도는 급격히 상승하여

30도에 육박하더니 이윽코 35도로 치닫는다.


이런 온도에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를 뛰어 보았는가?


끝도 없는 길고 긴 오르막, 이건 평소에도 힘들다.

그런데 그늘 한점 , 바람 한점 없는 그 길을 뛰어야 한다는 현실.


"아니고 니미럴" 욕이 안 나올 수 없는 현실이었다.







<폭염이 느껴지시는가,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19시간이라는 초유의 제한시간.

그런데 그 19시간이 간당하다고 느껴질거란 건 생각도 못했다.


1. 내가 정말 완주 할까?

2. 설마 제한시간 19시간을 넘길까?


1단계를 의심했는데

이젠 2단계를 의심해야 하는 처지였었다.


1단계의 고비는

넘겼다는 게 그나마 자랑거리다.






<해저터널>






가장 힘들었던 구간은

1km~100km 전구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버거웠든 게 사실이다.


50km,

오르막과 오르막의 위험 속에서 견뎌야 했던 열대야.

50km~80km, 땀방울을 먹어가며

쉴새없이 뛰어야만 했던 구간.


살인 폭염이 내리쬐는 80km~90km의 길고 긴 오르막의 아스팔트 위의 길,


90km~100km, 도심지 통과는

전율스럽다 못해 차라리 혀 깨물고 쓰러지는 게 더 나을지 모를 위협적인 구간이었다.






<뛰어라 돼지야>




그러나 완주하는 사람들은

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씩씩하게 완주하며 승리의 환희에 기뻐한다.


포기하는 자만이

이런 저런 핑계 거리를 늘어 놓고 합리화를 외칠뿐.


그래서 내가 포기하지 않고 지금 이 극한의 스트레스를 즐기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90km부터는 도심지를 통과한다>







하루야마 시게오는 그의 저서 '뇌내혁명'에

이렇게 스트레스 극복법을 적어놨다.


"뇌내 모르핀을 작용시키면

다시 없는 충실감과 지칠줄 모르는 생기, 발전적인 사고 방식을 가질 수 있다."


뇌내 모르핀, 즉 뇌에서 분비하는 행복 물질이다.


극한 상황에 처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려 하지만

되려 행복 물질이 극한 상황에서도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증거다.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이유.


바로 '내가 좋아하는 마라톤'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기우,

스스로의 기우를 모두 뛰어 넘어 나는 완주했다.


그렇기에 나는 행복한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완주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뛰어서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완주는 과정의 결과물, 나에게 과정은 뛰는 것이기에

그걸 더 즐기고 싶을 뿐이다.


뇌내모르핀은

힘들 때 나오는 것이지 편할 때 나오는 게 아닐 지다.









사는 게 늘 힘들고 어렵다.

쉽다고 누가 그러겠는가


이렇게 다들 힘들고 어렵다 어렵다 해도 실제 부딛혀 보고 맞닥드려보니

35도의 폭염도

그 무시무시한 언덕길도 다 넘어가더라


안 뛰어보고 설레발로 핑계로 치부될 수 있는 서사지만

뛰어보고 겪어보니 별거 아니더라.



"그 뭐시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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