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네팔 배낭여행기

붓다 탄생지! 룸비니

구상나무향기 2012. 11. 2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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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나무 아래 수행 중인 스님들>

 

 

이제서야

룸비니로 들어가는 게이트에 도착했다.

 

대성석가사까지 충분히 걸어 들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무더위에 장사가 없어

 

결국 사이클릭샤(인력거) 신세를 지기로 했다.

 

 

 

 

 

사이클릭샤를 통해 룸비니를 돌아보는것도 나쁘지않다.

날씨 좋은 날에 튼튼한 두다리가 있다면 걸어서 다니고

 

아님 사이클릭샤를 대절해서 다니자 

룸비니의 관광지는  제법 거리가 멀기 때문에 걸어서 다니기란 쉽지가 않다.

 

사이클릭샤를 대절하면 비용은 700루피에서 1,000루피 정도다.

날씨가 너무 더워 고생하는 정도를 생각해서 1,000루피로 맞춰 주었다.

 

날씨가 춥거나 비가 온다면 사이클릭샤가 그 대안이 될것이다.

 

 

 

 

 

대성석가사의 위용이다.

룸비니는 각국의 사찰들이 다 들어서있다.

 

하지만 숙박과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곳은 대성석가사가 유일하다.

그래서 많은 외국인들이 이곳 대성석가사를 찾는다.

 

 

 

 

 

대성석가사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장부에 이름을 기재하고 요금을 지불하면 된다.

 

하루 숙박은 식비 포함 300루피 정도 한다.

예전에는 무료였지만 지금은 시주를 받는다.

 

대성석가사

http://blog.daum.net/_blog/hdn/ArticleContentsView.do?blogid=03j7Q&articleno=7353921&looping=0&longOpen=

 

종무소에 부탁하면 택시도 불러주는 편의를 제공해준다.

한국 사람들이 많으니 여러날 머물며 친구도 많이 사귀어 보라

 

개인적으로 하루의 시간만 보낸게 내내 아쉬웠다.

그래도 이 하루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

 

 

 

 

 

공양시간과 예불시간은 다음과 같다.

 

공양시간은 좀 일찍가서 기다리는 게 좋다.

예불시간이 아니라도 참선을 할 요량이면 시간과 상관없이 법당에 들어가면 된다.

 

바깥에는 덥지만 그래도 법당안은 좀 시원하다.

 

 

 

 

 

도미토리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공간이다.

남.녀 도미토리가 엄격히 구분되어 있어 함께 할 순없다.

 

안에 화장실과 욕실은 같이 있다. 조금은 불편해도 모두 깔끔하다.

 

너무 더워서 팬을 꺼고 창문까지 닫았다.

열풍이 불어 들어와서 오히려 더 더웠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그 무더위에 창문을 닫고 선풍기를 꺼고 잤겠는가 상상을 해보시라

 

그날 밤 이리뒤척 저리뒤척 밤새 발광을 틀었다.

자다가 샤워도 3번이나 했을거다.

 

엎친데 덮쳐 물갈이로 인한 배탈까지 발생했다.

목이 말라 사찰의 물을 벌컥벌컥 마신게 화근이었다. 가지고 온 지사제 약이 있어 먹었지만

뭐 크게 도움은 되지 않았다.

 

 

 

 

<대성석가사 도미토리는 하룻밤 300루피다>

 

짐을 대충 놓아두고

대절한 사이클릭샤와 함께 룸비니 동산을 돌기로 하였다.

 

웬만하면

두명 정도 합의해서 사이클릭샤를 이용하는 게 좋다.

걸어 다니기엔 다소는 무리가 갈법한 거리들이다. 덥거나 비오거나 때론 추워도 그렇다.

 

마야데비 사원외 군데군데 각국의 사찰들도 둘러보고 한다면

동선의 거리가 제법 멀다.

 

 

 

 

부처님의 사리를 한국으로 옮긴 과정을 묘사해둔 기념비적 공간이다.

 

'사리이온평화기원대법회기념탑'이다.

 

한국인에게만 좀 특별한 공간이다. 그래도 룸비니에 이러한 공간이 있다는게 대단하다.

 

신도라면 들러보자

사실 사이클릭샤가 이동해서 가봤지 크게 돌아볼 장소까진 아니였다.

 

 

 

 

 

'평화의 불꽃' Peace Lamp다.

비가 와도 꺼지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장난칠까봐 경비원이 항시 지켜보고 있다.

 

일본인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의미일까 ? 평화의 탑까지 만들었다고 하는데 별로 진정성은 없어 보인다.

 

마침 옆에 수행자가 있어 적선을 했었다.

 

 

 

 

그리고 각국의 사찰들도 찾아갔지만 소개할 정도는 아니다.

 

마야데비 사원 가기 전 주위의 연못이다.

우기가 시작되기 전 방문했기에  다소는 말라있는 모습이다.

 

방문했던 시기는 6월 초순이였는데 

네팔은 5월 말부터 8월까지가 우기다.

운이 좋아 그랬는지 난 비를 거의 맞질 않았다.

 

대신 정말 무더웠다.

차라리 비라도 좀 왔으면 더 좋았을걸 싶다.

 

 

 

 

 

마야데비 사원 들어가는 입구의 모습이다.

무더위에 걷기란 좀 힘들다.

 

가게도 편의 시설도 아무것도 없다. 너무 없는것도 좀 황량하고 삭막하다.

 

 

 

 

 

 

마야데비 사원은 맨발로 다녀야 한다.

저기 입구에 가면 입장료를 내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사이클릭샤나 자동차는 다니질 못하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사원 입구에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아쇼카 석주다.

옆의 흰건물이 마야데비 사원이고 그 뒤로 아름드리 서 있는 나무가 바로 보리수나무다.

 

개인적으로 정말 궁금했고 보고싶었던 나무다.

 

 

 

 

 

 

 

룸비니가 붓다의 탄생지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물이

바로 이 아쇼카 석주다.

 

아쇼카 대왕이 붓다 입멸 후 200년 후에 세운 돌기둥인데,

지금으로부터 대략 2,300년전 일이다.

 

(불기는 입적 후 년도이다. 올해 2012년은 2,557년이다.

즉 부처 死後 2,557년이 흘렀다는 애기다.)

 

이 석주가 발견됨으로서 룸비니가 붓다의 탄생지임을

알게 된 것이다. 19세기 말 독일의 고고학자가 발견했었다.

 

 

 

 

 

 

이 석주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아쇼카 왕은 즉위한지 20년이 지나 이곳을 찿아 참배 하였다. 

여기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로 말 (馬)의 형상을 만들고 석주를 세우도록 했다 . 

이곳에서 위대한 분이 탄생하였음을  경배키 위한 것이며, 이에 룸비니 마을은  조세를 면제하고

생산물의 8 분의 1 만을 징수케 한다"

 

 

 

 

<아쇼카 석주 문구>

 

 

여기 대목 중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 하셨기 때문이다"라는

글귀가 가장 핵심이다.

 

즉 이곳 룸비니가 바로 붓다의 탄생지임을 객관적으로 알려준 증거물인거다.

 

아래 사진은 옆에 있는 말의 형상을 한 돌덩이인데

2,500년이란 세월 앞에 말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다.

 

원래 위쪽에 있었는데 벼락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석주 옆 말의 형상>

 

이슬람이 인도를 지배한 게 700년 세월이었다.

타 종교인 불교를 당연히 배척해 왔기에 불교는 숨어들 수 밖에 없었다.

 

영원히 전설로만 이어져 올 법했던 붓다 탄생지를

아쇼카 석주가 발견 됨으로써 그게 역사적으로 사실이었음을 증명하게 되었다.

 

 

 

 

 

 

 

물론 룸비니가 붓다의 고향임을 증명하는 돌기둥이지

그게 붓다의 탄생과 관련된 설화를 사실로 증명하는 내용은 아니다.

 

붓다를 옆구리로 출산하고, 일곱 걸음을 걸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를 외쳤다고 하는 건

전적으로 설화일 뿐이다.

 

사진이 마야부인이 붓다를 낳을 때 붙잡았다는 보리수나무다.

사라수나무 또는 무우수나무로도 불리지만 모두 같은 말이다.

 

하지만 정작 룸비니 보리수나무는 붓다 탄생과는 상관없다.

실제 마야부인이 붓다를 낳을 때 잡았던 보리수나무는 마야데비 사원 내

붓다 발자국 옆에 있어야 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인 고고학자가 발견 했을 당시에

이곳은 방치된 정글 숲이었다고 한다.

 

유적지는

사찰의 터였다고 알려져있다.

 

 

 

 

 

앞의 연못이  마야부인이 붓다를 씻기고 물을 마셨다는 푸시카르니 연못이다.

그건 언제까지나 설화적 진실이고 실제로는 그냥 가둬놓은 음용 불가의 물이다.

 

오래 전 룸비니를 찾은 고승 법현스님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부인이 목욕한 그곳은 지금은 많은 스님들이 마신다"

 

현장스님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물은 맑아 거울과 같으며, 갖가지 꽃이 다투어 피어 있다."

 

아마 이곳에 그때에는 연못이 있었을것이다.

기록을 토대로 재현한 장면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보리수나무에 대한 시비도 안넘어갈 순없다.

 

붓다 입멸 후 2,557년이 흘렀다.

그러니 이 보리수나무는  2,557년 이상 묵었다고 봐야 한다.

 

이 정도 굵기와 크기는 인도 여행을 하면서 드문하게 볼 수 있는 규모다.

보리수나무 자체가 워낙에 크고 수형이 넓은 수종이라 드물지만 군데군데 저 정도의 규모는 몇 번 보았다.

 

 

인도 여행 중 살펴 본 보리수나무

 http://blog.daum.net/_blog/hdn/ArticleContentsView.do?blogid=03j7Q&articleno=7353378&looping=0&longOpen=

 

 

 

룸비니의 보리수나무가 적어도 수천년 묵을 정도의 때깔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마야부인이 옆구리로 붓다를 나을 때 잡았던 그 보리수나무의 후손일 수도 있을것이다.

 

 

 

 

 

 

물론 따지면 피곤하다.

종교적 신념에 진실은 중요치 않다. 증명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아쇼카 석주에 새겨진 문구만 있을뿐

이곳이 붓다의 탄생지라는 객관적 자료에 대해서는 존재치 않기 때문이다.

 

석주의 문구가 새겨질 당시에 어떤 근거로 이곳이 붓다의 탄생지로 인식되었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

 

 

 

 

 

 

붓다가 수행해 듣도를 했다는 부다가야의 보리수나무는

2,500년 묵었다고 했는데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룸비니 보리수나무하곤 규모가 다르다.

 

물론 지금의 나무가 그때의 그 보리수나무라기 보다는

그 후 보리수나무가 쓰러지고 그 후손의 나무일 수도 있을것이다.

 

사실 여기 보리수나무는 붓다와는 관련없는 나무다.

실제로 따진다면 마야부인이 부여잡았다는 보리수나무는 마야데비 사원 내에

존재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붓다의 발자국이 있는 마야데비 사원과

그 앞에 싯다르타 연못(푸시카르니 연못)의 모습이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3배를 해봤다.

적어도 붓다의 탄생지인 만큼 헐랭이 신도라도 그 경건함 만큼은 잊지 않았다.

 

 

 

 

 

보리수나무 맞은편 마야데비 사원이다.

저 마야데비 사원 안에 붓다의 발자국이 있다.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붓다의 발자국이란다.

 

 

 

 

 

 

주위에 있는 다른 보리수나무다.

깃발은 타르초라는 옴마니반메홈 만트라 경문을 적은 다섯가지 색의 깃발이다.

 

타르초의 색깔은 우주 5원소를 가리킨다고 한다.

파란색-하늘, 노란색-땅, 빨간색-불, 흰색-구름. 초록-바다

 

사실 보리수나무라고 해서 특별히 다 이렇게 하는것은 아니다.

인도나 네팔엔 보리수나무는 우리네 동구 밖 느티나무 수준으로 흔하다.

 

 

 

 

 

타르초는 때가 묻어도 그대로 삭아 없어질 때까지 교체하지 않는다.

마야부인이 부여 잡았다는 보리수나무는 경외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 보리수나무 아래 수행중인 스님들이다.

사실 마야데비사원이나 연못 그리고 보리수나무는 스토리텔링화 된 내용들이다.

 

역사적 진실과는 다르다.

아쇼카 석주가 발견된 장소이지 여기 보리수나무 아래가 붓다가 탄생한 장소는 아니다.

 

또한 마야데비 사원이

붓다의 출생 장소였다는 객관적 진실도 없다.

 

 

 

 

 

 

보리수나무 법당아래 약간의 시주를 하면

스님이 나에게 팔에 무언가 감아주며, 기도를 해준다.

 

보리수나무를 한바퀴 돌면 의식은 끝난다.

 

 

 

 

 

룸비니에 대한 감정은 조금은 남달랐다.

전설의 나무, 보리수나무를 직접 보았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붓다 탄생지에 대한 고찰의 의미는 더 큰 '감성적 추억'으로 다가왔다.

 

역사적 진실과 종교적 신념은 전혀 상관없다고 본다.

 

부처의 탄생지에서 조금은 더 경건해 질려고 했고

 

무엇보다 내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그만큼 더 높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건 확실하다.

 

 

 

 

 

<보리수나무의 밑둥, 오랜 세월을 느끼게 해준다>

 

 

말로만 듣고 책에서만 보았던  바로 그 보리수나무다.

마야부인이 잡았던 나무가 맞든 아니든 어째튼 붓다 탄생의 배경이 된 장소임에는 분명하다.

 

붓다가 탄생했던 순간을 직접 본 나무의 자손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째튼 신성의 나무 보리수는 나에겐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마야데비 사원은 촬영금지 구역이다.

그래서 인터넷에 있는 공개된 자료를 가져왔다.

 

이것이 붓다의 발자국 형상이라고 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며 하늘과 땅을 가리킨 바로 그 자리다.

 

 

 

 

이곳에서 많은 스님들과 신도들이 기도를 한다.

룸비니 최고의 성지다.

 

이곳에는 1,600년된 붓다 탄생의 모습을 새긴 돌 조각이 있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4세기 경 제작되었는데

마야부인과 옆구리로 나오는 붓다, 그리고 신 브라마가 새겨져 있다.

 

 

 

 

 

보리수나무는 바깥에 있고

발자국은 멀리 떨어진 이곳에 있다. 일곱 걸음 치곤 제법 멀었다.

붓다는 태어나자마자 축지법을 썼는가 모를일이다.

 

그래서 진실에 가까울려면 여기 발자국 옆에 보리수나무가 자라야 옳다.

즉 그때의 보리수나무는 없어지고 다른 보리수나무가 장소를 이동해 자라고 있는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역사적 진실과 종교적 신념은 다른거다.

이곳에서 경건해 마지 않는, 먼길에서 온 스님과 신도들은 격정에 그 몸서리를 친다.

 

진실만 따지면 그런 감정이 나오겠는가...

 

 

 

 

 

 

사이클릭샤를 타고 다시 돌아온 대성석가사다.

무더위에 룸비니를 한바퀴 돌아도니 참으로 고되다.

 

물론 붓다 탄생지에 왔다는 그자체 만으로 받은 신선한 감동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것이다.

 

그것이 신도이든 아니든

이곳에서 가지는 경건한 감동이 글로 표현될 감정은 아닐것이다.

 

예불 시간에 맞춰 기도 하는것도 잊지말자

개인적으로 여러 날 쉬어보지 못하고 바로 다음 날 카트만두로 넘어왔기에

매우 아쉬웠던 룸비니의 일정이었다.

 

 

 

<대성석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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