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산행기/지리산행기

보리뎅이골~바래봉 동릉~바래봉~팔랑길

구상나무향기 2023. 5. 1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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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봉, 바리때를 엎은 놓은 모양이라 바래봉이라 부른다.

 

 

지금 이 시기,  환상의 풍경을 보여주는 곳 바래봉.

 

5월, 이때 바래봉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의 녹음한 풍경은

연중 최고의 시기라는 자평이다.

 

비단 지금껏 바래봉을 올라본 횟수야 뭔 의미가 있겠는가,

자석처럼 끌리는 기운에 또 올라봤다.

 

 

바래봉 산철쭉

 

 

루트는 어디로?

 

좋은 길 놔두고 어먼길 다니기 좋아하는 팔자 드센(?) 사람이야

애초에 고속도로는 관심이 없다.

 

잠시간 루트를 10초간 살펴보니 뜬금없는 골짜기의 이름이 감지된다.

 

'보리뎅이골?'

 

여긴 어디인가를 유심히 살펴보니 팔랑마을에서 바래봉 동릉으로 곧장 이어지는

루트.

 

팔랑마을에 주차하면 원점회귀로 돌아들 수 있는  안성맞춤의 코스가 아닌가.

 

 

 

보리뎅이골 고사리밭 독가.

 

 

"그런데 보리뎅이골에 대한 글이 없네"

 

이래저래 검색할 만한 곳에 다 찾아봐도

당최 보리뎅이골에 대한 정보가 없다.

 

보리뎅이?

이름 만큼이나 궁금한 보리뎅이골의 정체.

 

부딪혀보자.

 

"지리산이 다 그렇지"라는 명제에 따른 셀프 개고생이야

늘 피할 수 없는 인과가 아니겠는가

 

시작은 좋았다.

산죽도 없었고 험한 계곡도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형을 봐도 수려한 계곡이 있을 만한

그런 곳은 아니다.

 

하지만 대략 난감은 곧 시작.

"어라 길이 없네"

 

 

 

보리뎅이골은 이런 지형.

 

 

오룩스맵을 따랐지만 그냥 숲.

 

줄만 그어져 있을 뿐 길이라고 느껴지는 곳은 아니었고

드문드문 발자국이 보이지만 그건 멧돼지들이 다닌 흔적의 수준.

 

실제로 멧돼지를 3번이나 조우했고

심지어 멧돼지 집까지 방문. 새끼 돼지가 있는 게 아닌가.

 

새끼 돼지는 이리저리 꽤액꽤액 거리며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기 바빴고, 혹시나 그 소리에 어미가 들이 닫칠까 싶어 황급히 도망치듯 떠나야 했었다.

 

숲에서 무리 지어 뛰어다니는 멧돼지들도 보았고,

산행 중 멧돼지가 움직이는 기척도 한두 번 느꼈으니

바야흐로 보리뎅이골은 멧돼지의 숲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군데군데 산죽 속 멧돼지 집도 몇 번이나 목격했었다.

 

 

 

멧돼지 목욕탕, 보리뎅이골은 멧돼지가 득실거렸다.

 

 

 

"아이고 팔자야"

 

방향만 보고서 무작정 오름짓만 할 뿐.

동릉이 다가오니 경사는 더욱 급해지고 땀은 비 오듯 흐른다.

불과 1km 남짓한 거리, 산죽밭은 없었지만 오르막 경사가 심해 허벅지가 꽤나 고생이었다.

 

허벅지가 굵고 봐야 할 일.

 

한 바가지 땀을 흘린 후, 표지기 서너 개가 나풀거리는 좁은 동릉 숲길에 안착한 건

팔랑마을에서 1시간 30분이 흐른 후.

 

보리뎅이골은 짧지만 길이 없기에 아주 고된 구간.

길 생각 말고 그냥 밀고 다니는 골짜기다.

 

 

 

 

보리뎅이골에서 바래봉 동릉 만나는 지점. 표지기가 몇 개 나풀거린다. 들머리는 희미하다.

 

 

 

"혹시 그분들 아니시죠"

 

그제야 인기척을 느낀다. 한 그룹의 사람들이 동릉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인적 없는 이곳에 뜬금없이 나타난 사람을 보고 혹시 '그분'들로 착각을 하신 듯.

 

"배넘이재에서 올랐어요"

동릉 끝자락, 장항마을 근처가 배넘이재인데 아마 거기서 오른 팀인 듯하다.

 

바래봉 동릉은 협소한 길.

바래봉 정상에서 장항마을까지 이어진 능선인데

 

그리 험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쉬운 길은 아니다.

다만 길은 뚜렷하다.

 

 

 

동릉 끝자락에 피어난 화사한 철쭉.

 

 

동릉 끝자락에 도착하니 인파로 인산인해.

혹시나 '그분'들의 움직임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건 기우.

 

수많은 인파에 등산로는 이미  잠식된 지 오래다.

 

 

 

 

한국 사람들의 독특한 문화 인지 모르지만

정상석에 대한 애착은 참으로 집착적이지 않는가

 

도대체 이게 뭐라고 줄을 끝 간 데까지 선다.

낭비하는 시간 정도는 충분히 감내하는 사람들의 정상석 탐닉.

 

 

 

정상석 찍을려고 줄 선 사람들.

 

 

 

 

이렇게 봉우리마다

돌멩이 세우기에 집착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참으로 유난이지 않을까 싶다.

 

가까운 일본만 보더라도 천왕봉 보다 더 높은 봉우리라도 이름도 없고

특출 난 유명 봉우리에 나무 막대기 세운 게 전부다.

 

알프스에 가봤더니 정상석은 없고 그냥 이정표 정도의 돌탑이나 페인트 표시만

있는 정도. 

 

중국은 더 점입가경, 해발 2~3천 봉우리에도 정상석 따위는 없는 무명 봉우리에 불과.

 

SNS의 패악인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은 '정상석 페티시'라도

있는가 싶다. 슬쩍 무리에 스며들어 사진만 찍고 부리나케 벗어난다.

 

 

 

 

 

저 멀리 보이는 팔랑치에 꽃은 보이지 않는다.

팔랑치 산철쭉은 먼저 피어났고 그 후 바로 냉해가 덮쳐 싸그리 꽃잎이 다 떨어져 버린 것.

 

냉해가 지나간 다음에 핀 꽃들은 그날 최고 절정이었다.

특히나 정상 부위 산철쭉과 화사한 철쭉들은 산객들의 시선을 부여잡기에 충분.

 

철쭉 또한 산철쭉에 비해 손색없는 화사함을 보여준 그날.

문명의 이기에 가녀린 찍사의 숨 가쁜 투혼을 불어넣어 보지만 작품은 그냥 그렇다.

 

 

 

 

 

 

사실 전날, 바래봉에 올라 야영을 하기로 했었다.

바로 바래봉 동릉 입구 저기서 피칭을 할 계획. 개인적 버킷리스트 중 하나.

 

널따란 바래봉을 한눈에 조망하고

천왕봉 뒤로 일출이 돋아나는 장관을 보기엔 최적의 장소.

나의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하나 걸어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산신령의 심술일까 비와 바람에 결국 취소

오늘 당일치기 배낭을 멘 이유다.

 

어제 왔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여긴 바람 불면 텐트 치기 힘든 장소라

결국 '지리산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해결하진 못했다.

 

 

 

 

바래봉 동릉 자락

 

내가 바래봉에 처음 선 날.

그때를 뚜렷이 기억하는 데, 그건 태극종주할 때였었다.

 

고 조은산님과 함께 둘이서 야간산행으로 덕두산을 넘어 바래봉에 도착.

어디가 어딘지 모를 암흑.

 

팔랑골 들머리 입구에 침낭만 깔고 드러누었는데 그때가 2002년 6월.

 

밤에 찾아왔든 바래봉,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꿩소리가 시끄러워 잠에서 깨어났던 기억이 소록소록하다.

 

그날 길고 긴 서북능선을 종주하고 노고단 대피소에서 졸도의 경지로 쓰러진, 

그때의 조은산님과의 추억이 벌써 20년 하고 1년이 더 흘렀다.

 

 

 

 

멧돼지에 혼난 산꾼.

 

 

 

 

 

 

 

 

 

 

 

 

 

고산지대에 흐르는 이 샘터의 물이 식수 부적합에 다들 의아해 한다.

 

나도 놀랍다.

 

이 물을 마신 게 20년이 넘었는 데도 말이다.

 

하지만 음용 부적합이라는 문구를 보고선 섣불리 마시긴 찝찝해진다.

대장균이 과다 검출된 이유라는데

 

식수의 근본인 비가 오염되고 빗물이 스며든 이 샘터의 물도 오염된 이유다.

 

그래도 한 바가지 퍼서 꿀꺽꿀꺽 시원하게 마셔 버렸다.

 

지금까지 별탈 없으니 산신령이 도운 것인지 몰라도

산토끼가 눈비비며 마시는 깊은 산속 옹달샘도 눈치 보면서 마셔야 할 지경이다.

 

 

 

 

 

 

 

 

팔랑치까지는 쉽게 걸을 수 있는 곳.

이 구간은 철쭉 시즌이나 눈꽃 보기 좋을 때, 발맛 보기 딱 좋은 구간.

 

저 멀리 서북능선의 아늑함과

맞은편 지리산 주능선의 우뚝 선 거대함을 마주하기 너무 좋은 길.

 

팔랑치에서 팔랑마을까지는 불과 2km

팔랑길이라고 이름 붙여질 정도로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손쉬운 구간.

 

쉬지 않고 걸었더니 30분 만에 도착한 팔랑마을.

 

 

 

 

 

 

 

 

 

 

 

 

 

 

 

 

 

전화위복,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바뀐다는 뜻.

얼마 전 지독히도 나쁜 일을 겪었는데 그게 다시 전환되어 좋은 결과로 도출된 적이 있었다.

 

스트레스가 최고 수위까지 올랐다가

최근 다시 도파민 분비 수준까지 회복된 차.

 

걱정과 스트레스로 가득한 사람이 뭔 꽃을 보고 즐겁다 하고, 5월의 녹음을 싱그럽다 하겠는가

 

그저 지금 이 순간이 아름답다면,

 

사는걸

감사하게 생각하자

 

 

 

붉은색 산철쭉, 흰색은 철쭉

 

 

 

철쭉

 

 

 

산꾼이라면 철쭉과 산철쭉은 구분하자.

 

 

 

산철쭉과 철쭉이 어울러져 피었다.

 

 

철쭉

 

 

16년 간 지속한 마라톤을 코로라 핑계 대고 그만두고 말았다.

 

혹자는 그런다. 그렇케 뛰댕기다가 무릅에 고장난 거 아니냐며 타박을 하지만

 사실 무릅이 문제가 아니고 어깨가 고장나 버렸다.

 

그때 대회장에 있을때 나 보다 나이도 많고 더 오래 뛴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 나이 되면 저럴 수 있겠지"라고 당연 시 여겼더랬다. 

하지만 그건 망상에 불과한 오류, 그때는 지금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그랬다고 나까지 그러라는 법은 없었든 것이다.

 

그 사람이 그럴 때는 다 이유가 있고 지독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남의 업적을 쉽게 볼 일이 아니다. 

 

 

 

 

 

 

철쭉

 

 

산철쭉이 화사한 바래봉

 

 

 

 

 

 

구미 금오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이름 붙여진 '금오족도리풀.'

지리산에서는 백운산~금대산 자락이나 바래봉 일부 지역에서 볼 수 있다.

 

점차로 줄어드는 희귀식물이다.

 

 

금오족도리풀

 

바래봉에 왔다면 눈여겨 살펴보자. 예전보다 개체수가 확 줄었다.

 

 

 

금오족도리풀

 

 

 

팔랑마을 랜드마크, 지리산 억새집

 

 

 

 

절전모드를 깜빡 잊고 해제하지 않아

일직선 구간이 있으니 대략 참고할 정도로 보시면 된다.

 

바래봉 샘터 구간이 어지러운 건

밥 먹자고 이리저리 숲길 찾아 헤메다 보니 저런 것이다.

 

팔랑마을~보리뎅이골~바래봉 동릉~바래봉~팔랑길~팔랑마을

시간은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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