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마라톤/마라톤대회 참여기

제11회순천만울트라마라톤대회(101.5km)

구상나무향기 2017. 9. 1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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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울트라마라톤대회, 정확히 101.5km다.

100km 대회에선 국내 대회 중 가장 긴 거리를 자랑하는 대회가 바로 순천만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대회 포함 총5회 출전.


2009년 15:38

2011년 15:59

2013년 16:39

2015년 15:59


제한시간을 넘긴 경우는 지금껏 한 번.








순천만 코스는 오르막 내리막이 매우 심하다.

오를 때 힘들지만 내려갈 땐 그만큼 신나게 뛰어 내려가지 않는가라고 반문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60킬로 이상 넘어가기 시작하면 내려가는 것도 곤역.


내리막도 엉금엉금 뛰다보면 걷는거나 매한가지라

오르막이 많으면 시간의 손실은 클 수 밖에 없음이다.








순천만대회, 이미 4번을 경험했지만

역시나 기억력은 다 지우개가 지웠나보다.


이렇게나 많은 고개와 언덕이 존재했었는지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늘어나지만

사실 내 시간은 마지막에서 다 까먹었지 정작 초.중반엔 잘 뛰었다.









마지막 남은 5킬로에서 아마 거의 1시간 이상을 소요했을 것이다.

지쳤고 탈진했었다.

걸을 힘도 없도 기력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역시나 졸음 때문에 많은 시간을 놓쳤기에

더 열심히 뛰었더니 역시나 막판 5킬로 지점부터는 탈진이 와버린 것이다.




<첫출전 안나푸르나 한선영씨>






60킬로에서 70킬로 사이.

언제나 졸음의 덫은 날 덮친다.


그리곤 난 어김없이 그 덫에 걸려든다.

피하지도 못하고 늘 그렇게 허우적거리며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음이다.


이 지긋지긋한 사슬을 끊고 싶지만

늘 변함없는 패턴이요 방식이다.


잠도 많이 자보고

컨디션을 조절해봐도 영락없이 걸려든다.





<어설픈런너>





상사호가기 전, 꾸벅꾸벅 졸다가 아마도 족히 6번 정도는 가드레일에

부딪힐 뻔 했을 것이다.


이 구간은 저번 대회에서도 똑같은 데자뷰를 반복했던 바로 그 지점이다.


"아이구야 사람 환장하겠네"

혹한 시련이었다.


시간은 살떠난 활마냥 속절없이 흘러가기만 하는데

뛰는 걸음은 영판없는 두꺼비 모양새다.




<서영준 형님>




그제야 졸음이 가고

정신 차린 싯점이 74킬로를 넘긴 이후였었다.


뛰다 걷다 계속 속도를 올리며

한 명 두 명 주자를 제치며 계속해서 나아가니 그나마 이븐페이스는 유지된다.


그래도 울트라런너라고

거리가 늘어날 수록 기량은 되려 안정적으로 유지되는게 나름 자부심이다.







그날 상사호는 짙은 안개로 전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대단한 안개였다.


안개 속을 헤치며 달려가는 런너들의 모습이 사뭇

장험하고 멋진 폼들이다.


일출이 올랐는지도 모를 시간.

언제부터인가 안개가 걷히고 따가운 햇살이 런너를 괴롭힌다.










90킬로를 넘었을 시점부터는

땡볕이 본격적으로 머리 위로 떨어진다.


"아니 가을 날씨가 아니라 한여름이네"


일출부터 시작된 땡볕은

가을의 느낌이 아닌 한여름 온도 그대로였었다.


그래도 참고 참으며

쉬지 않고 꾸역꾸역 거리를 늘려가고 있었다.


되려

초반보다 더 열심히 뛴 땀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달림도 소강을 보이자

마라톤의 숙명적 존재 '시간'은 그렇게 속절없이 늘어만 가고 있었다.








95킬로를 통과한 싯점.


아뿔싸

탈진이 급습한다.


"낭패다."


기력은 쇠퇴하고 뛸 힘은 나지 않는데

허기가 뱃가죽을 쥐어 짜기 시작한다.


3킬로 지점부터는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해 도착까지 30분이나 잡아 먹게 만들었다.


이 거리대는 뛰어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지만

탈진해 걷는 경우도 여러 번 경험이 있었다. 탈진하면 항우장사라도 못 뛴다.


98킬로에서부터 101.5킬로 지점까지

정확히 30분 걸렸다.







47.7km 식사 지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별 무리없이 참 잘 뛰었다고 여겼다.


늘 초반부는 그렇다.

그러다 중반부에서 후반부, 졸음의 덫에 걸려 허우적 대다가


막판에 탈진하는 시나리오.


젠장...

딱 내 스타일 달림표다.




<47.7km, 이미 혼이 비정상>





어째거나 저째거나

그래도 난 완주했다.


제한시간을 넘겼거나 말았거나

그래도 난 완주했다.


졸았거나 말았거나

그래도 난 완주했다.


어설프거나 말았거나

그래도 난 완주했다.


인생이 쓰거나 달거나

어째거나 난 살고있다.













지금껏 잘 뛴 대회는 결단코 없다.


늘 나는 완주 자체만 즐길뿐이다.


제한시간을 넘겨도

나에겐 도착만 하면 그저 좋을 뿐이다.






<온 우주가 나서도 못 도와줄 런너의 도착 표정>




이 한심한 짖거리를 언제까지 할줄은 모르겠지만

누가 뭐래도

난 내가 자랑스럽다.


"왜? 내가 한 고생은 내가 아니까"


그 고생을 참고 난 완주했으니까


나는 내가 대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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