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마라톤/마라톤대회 참여기

제6회세종100km울트라마라톤대회

구상나무향기 2017. 4. 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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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역>





"이래 가지고 출전해도 되겠나"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을 보며 나직이 외친 독백이었다.


몸상태는 그야말로 최악 중 최악을 외치고 있었으니


2주 전부터 걱정은 산이되어,

포기라는 단어까지 꺼집어 낼 정도의 수준이었다.






<어설픈 런너>




개인적으로

심신이 가장 지칠 시기가 바로 이때인데,

내가 먹고 사는 직업의 성수기가 3월이기 때문이다.


2주 동안이나 헤롱대기 시작한 몸상태는

가히 바닥까지 치닫고 있었다.








비단 지금껏 뛰어낸 수많은 울트라 경기 중에

몸 상태가 좋아 출전했던 대회는 당연코 없었을 것이다.


정신력에 기인한 결과였기 때문에

역시 이번에도 믿을 건 정신력뿐이었다.


그래도 나름의 훈련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기에

지금의 컨디션 악화가 실제 대회 때는 다를 거란 짐작이었다.


'불광불급'


미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얻어지는 건 없다고 했다.


일단

미쳐보자.

미치는데 몸상태 보고 미치겠는가







출전자 총 178명.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출전하는 대회가 바로 이 세종울트라마라톤대회다.


작년에 이어

정말 고수들만 출전했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다들 대단하더라








앞뒤.

주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외롭게 뛰는 마라톤이긴 하지만 그래도 말벗이라도 있으면

덜 외로운법.


오롯이

혼자 이겨내야 할 기나긴 고통의 시간만이 주로(走路) 내내 함께했었다.


늘 그랬고 또 마라톤은 당연히 그런 것이라 여기고 있었기에

이미 면역된 지 오래다.






<어설픈 런너>




하지만, 늘 그렇게 여기고 있다 해도 닥치면 힘들고 외롭다.


이 지난한 고독과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면

완주의 기쁨은 없다.


불편한 감정들을 극복하고 이겨내야 하는 게 특히나 이 울트라마라톤이다.










금강 자전거 길은 100% 평지다.

도로와는 외떨어져 강변 옆에 형성돼 있는데


지루하고도 지루한 길.

변화도 없는 단순 길이기 때문에 무력감으로 치자면 어느 대회보다 더하다.


강의 청명한 풍경이 나름 위안이 되지만

그또한 잠시, 해가 지면 사위는 어둠 속이다.




<금강의 풍경>




작년과 올해.

정말이지 고수들만 모였나 보다.


나 같은 헐랭이 런너는 아무도 없는듯한데,

다들 쌩쌩 달려서 그런지

어물쩍거리는 주자는 아무도 없었다.


열심히 앞만 보고 뛰고 또 뛴 그 날의 뜀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몸 상태가 안 좋아 무척이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건 기우였다.





<날아라 돼지야>




지루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세종울트라마라톤대회다.

특히나 지원이 없기에 배고픔은 옵션이다.


돌아 올 때, 그 배고픔은 상당하다.


그래서 배낭에 적당한 먹거리를 넣고 뛰어야 하는데

나는 돌아올 걸 대비해 적당한 거리에 과일 몇개를 숨겨 두었다.


80킬로 넘어가면 정말 배고프다.




<런너의 모습, 이런 길로 100킬로를 뛰어낸다.>




청남대, 영동, 순천대회 등등 다른 대회에선

고개 마루나 언덕 길이 존재하기에 오르락 내리락이 심한 경우가 많다.


그럼 그런 굴곡진 대회가 더 힘들고

이런 평지는 쉽지 않을까?


딴은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이건 천만의 말씀이다.


평지라고 결코 쉬운게 아닌다. 마라톤의 시간은 주로 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그 영향이 평지라서 덜 받는 건 아니라는 거다.


결국 도착하는 시간은 굴곡진 주로를 뛰는거나 평지 길을 뛰는거나

차이는 거의 없다.


결국 '네 실력'의 차이다.








석장리박물관은 30킬로를 조금 더 지난 장소에 위치하는데

여기까지 뛰어오니 3시간 40분이 채 되지 않았다.


나의 기량으로 보아선 제법 괜찮은 뜀의 시간이었다.

걱정한 몸상태에 비해 기량은 되려 안정적이었다.





<석장리박물관에서>




이제 공산성의 야경이 보여지는 공주 시내에 접어들 시간이다.


여기서부터 40킬로 까지는 렌턴이 필요 없는데

시내이기 때문에 빛이 밝기 때문이다.


공산성 앞 자판기에서 고카페인 음료를 뽑아 냅다

원샷으로 마셔버렸다.


주로 중, 자판기는 딱 두 군데에 있는데

공산성 앞 그리고 한옥마을 가기 전이다.


40킬로에서 50킬로까지는 빛이 없는

엄청 깜깜한 주로다.


할 때 마다 느끼지만,

이 구간이 지루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심신이 많이 지쳐있는 사정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아무도 없다>





50킬로 반환점에 도착하니

정확히 7시간이 걸렸다.(cut-off 8시간)


작년보다 10분 빨랐다.


기량이 줄어 들었을까?

체력이 부족하지나 않을까?


내내 몸상태가 안좋아 걱정했는데 오히려 작년보다 더 빨리 반환점에 도착했다니

나름 선전했다.





<50킬로 반환점에서>




이제 돌아가자!

왔던 길 다시 돌아가면 그뿐.


힘내자 힘을 내자!!!!!


주위는 깜깜해도 나의 정신력은 어느 때보다 맑았다.


영상1도의 기온.


무척 추웠다. 그래도 작년에 비하면 되려 나은편이었다.

작년엔 서리도 내렸고 심하게 추웠었다.








돌아오는 길!

다행히 졸음이란 큰 덫엔 걸리지 않았다.


졸음만 없다면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기에

뛰어내는 거리에 비례해 기량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시간적 안배는 적절했다.

예상시간에 맞춰 뛰었고 예상시간에 충분히 도착했었다.










새벽에 안개가 매우 짙었다.

얼마나 짙었는지 10m 앞의 사물이 보이질 않을 정도였었다.


80킬로 지점 쯤, 강변에 고라니 서너 마리가

나를 보고 있어도 도망도 가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 나의 땀냄새를 못 맡은건지 아님 짙은 안개에 보이지 않는건지

두리번 거리기만 할 뿐 나를 적대시 여기지도 않는다.


폰을 꺼내러 배낭을 풀었더니 그 소리에 저어기 놀라더니

그제야 후다닥 사라지는게 아닌가.


이 동네, 고라니 제법 많이 봤다.









90킬로를 넘어가니 허기가 급작스럽게 몰려드는게 아닌가

에너지바로 간신히 허기를 달래보지만 속은 니글거리기만 하다.


95킬로와 97킬로에서 먹은 초코파이는

내 지금껏 먹었던 간식 중 최고의 먹거리였다.


군대에서 먹었던 그 어떤 초코파이보다 더 맛있었는데

그만큼 배가 고파 주린배를 움켜 쥐고 뛰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오만가지 감정이 다 섞인 완주의 시간.


주위로 주자는 없었다.


오로지 혼자.


도착시간은 15시간 46분.

전체 완주자 중 꼴찌의 기록이었다.


5회 출전해서 4회 연속 꼴찌 완주자라는 기염(?)을 토했다.


이것도 참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째튼 매번 그렇게 힘겹게 완주하는 참으로 어설픈 런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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