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마라톤/마라톤대회 참여기

제5회 세종울트라마라톤대회(100KM)

구상나무향기 2016. 3. 3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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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뭔 주자가 이리 없어"

 

12km부터 반환점 50km까지 단 한 명의 주자도 앞뒤로 만나지 못한

그날의 후미 분위기였다.

 

물론, 돌아올 때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이번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기량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이 되고 남는다.

 

'홀로 역주'

 

늘 꼴찌고, 늘 뒤에서 노는 헐랭이 뜀 꾼이기에 혼자라는 1인칭 싯점을

즐기고는 있었지만,

이토록 '처절히' 홀로 역주를 경험해 보기란 처음이었다.

 

 

 

 

 

<뛰기 전>

 

 

 

 

주자가 있으면 반갑고 의지가 된다.

 

아무도 없는 까만 밤, 홀로 청승맞게  '지난하고도 곤란한 고통'을 즐기기란

쉽지 않다.

 

묵언 수행 제대로 한 뜀의 날이었다.

 

 

 

 

 

<조치원역>

 

 

 

 

세종울트라마라톤, 올해로 4번째 도전이다.

 

지루하디 지루한 금강의 자전거 길, 지루함을 떠나 무기력을 느낄 정도다.

거기에 무지원 대회이기에 배고픔은 옵션이다.

 

그래서 먹거리를 적당한 거리에 숨겨 놓았는데,

사과.오렌지 한 개씩 13km 지점쯤에 놓아두고 돌아올 때 에너지원으로 삼았다.

 

샌드위치를 두 개나 넣고 뛰었는데

 

그것도 사실 부족했었다.

 

16시간을 뛰는 동안 먹을 기회가 별로 없기에

부피가 작으면서도 에너지와 포만감을 주는 먹거리를 챙겨야하는데

빵이나 건빵 그리고 생라면이 좋다.

 

뭐 고수들은 먹지도 않고 뛰는것 같더라

나같은 하수들이나 이래저래 먹는거 걱정할 뿐이다.

 

 

 

 

 

 

 

 

어차피 혼자다.

그날 보름이었는지 달이 참 휘엉찼다.

렌턴을 껐다 켰다 하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묵묵히 뛰고 또 뛰었을 뿐이다.

 

매 해 겪어봤던 길이지만, 적응은 여전히 힘들었는데

30km 지점을 통과하면서 속이 불편해 내내 진땀을 뺐다.

 

이러다 반환점까지도 가기 힘들겠다는 위기감이 감돌 정도로

신체 능력은 떨어지고 컨디션은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있었다.

 

 

 

 

 

 

 

저 멀리 공산성이 밝은 불빛을 내 비치는 풍경을 보고선

내심 반가웠다.

 

공주 시내로 들어왔다는 안도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거기에 자판기가 있기 때문이다.

 

공산성이 세계문화유산이다 야경이 좋니 뭐니 떠들어 대지만

힘겨운 주자의 입장에선 그런건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목표는 하나!

자판기였다.

 

주로에 딱 두 군데의 자판기가 있는데

공산성과 인근 한옥마을이다.

 

세종 대회의 주로에는 마트도 없고 먹거리를

취식할 방법은 없다.

 

음료수 두 개를 뽑아 냅다 원샷을 했었다.

 

 

 

 

<주로에서 본 공산성 야경, 남세우님 사진>

 

 

 

공산성을 넘어 40km 지점을 통과하니

그제야 몸상태가 조금 나아진다.

 

불편한 속은 달래지고 다리에도 힘이 좀 남는다.

이정도로 뛰면 적어도 7시간 쯤에는 50km 반환 지점에 도착할 수 있으리란

판단이었다.

(50km 반환점에 7시간 10분에 도착, cut off 8시간)

 

참 쉽지 않는 마라톤이다. 마음대로 몸대로 되지 않는다.

내 뜻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게으른 탓과 안일했던 과거의 헤이했던 정신력은

어김없이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참으로 정직한게 마라톤이다. 절대 용서가 없다.

 

 

 

 

 

 

<출발만 선두, 도착은 꼴찌>

 

 

 

 

"지금 가시는 길입니까? 돌아오는 길입니까?"

 

40km 지점을 갓 넘어선 지점에

주자 두 명이 서성이고 있는 게 보인다.

 

사실 늘 꼴찌다 보니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선두 주자를 이렇게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선두 주자와 나와의 거리는 30km~40km,

시간은 6시간 정도 차이 난다.

 

빠른 자와 느린 자의 한계는

늘 그렇게 천양지차의 뱁새와 황새 간격이다.

 

 

 

 

<이색 복장 참가자, 정장 입고 뛴 주자다>

 

 

 

그들의

답변은 짧았고 역시나 예상대로 였다.

 

"돌아오는 길입니다"

 

"아이구야"

 

역시나 그랬다.

이때부터 돌아오는 주자들의 불빛이 내 앞을 하나둘 스쳐지나 가는데

꼴찌라는 자괴감도 들 법도 하지만 이젠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나의 페이스를 그들로 인해 흐트러지지 않고

계속 유지하는 게 오히려 관건이다.

 

마라톤은 심리가 흔들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체력보단 정신력에서 완주를 결정지을 때가 많다.

 

100km, 나에겐 제한시간 내 완주만이 목표다.

더 빨리 뛰고자 하는 욕망도 있지만, 능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나는 나이기 때문에 묵묵히 내 걸음대로 갈 뿐이다.

 

동요할 필요도 자책할 필요도 없다.

 

 

 

 

<100% 저런 주로다. 지루하디 지루한 금강의 자전거 길, 남세우님 사진>

 

 

 

끝도 없이 이어진 자전거 길,

울트라마라톤 대회의 단골 메뉴인 가파른 고개 길도 없는

일직선의 주로로만 이어진게 바로 세종대회다.

 

지루함은 잊은지 오래되었다.

이미 익숙한 고통이지 않는가. 그 고통과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면

완주 할 수 없는게 울트라마라톤이다.

 

 

 

 

<학나래교, 남세우님 사진>

 

 

 

50킬로 반환점에 도착하니 7시간 10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주최 측에서 주는 떡국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선 후딱 일어선다.

지체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날씨는 추웠다.

평년보다 10도나 차이가 났는데 새벽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을 정도로

추웠다.

 

가벼운 복장으로 서리가 내릴 정도의 추위를 견디기란 쉽지 않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체온을 올리지 않으면

금방 오한에 사로 잡힐 정도다.

 

그날

저체온증으로 포기한 주자도 있었다 하니

그 새벽, 제법 사뭇 쳤었다.

 

나는

땀을 덜 흘리는 체질인지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50킬로 반환점에서, 손이 얼어 장갑을 못 끼고 있다.>

 

 

 

 

돌아올 때의 감정은 갈 때의 감정과 다를 바가 없다.

올 때나 갈 때

지루함과 고단함은 똑같다.

 

돌아올 때 더 지겹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적응하기 전, 오히려 50km 반환점까지가 더 힘들다.

 

금강 변 곳곳에서 새벽녘 이루어지는 생명체들의 활발한 모습에

시선이 즐겁다.

 

꿩들의 목격은 다반사고, 고라니도 서너 마리 본 듯하다.

그리고 큼지막한 물고기들의 자맥질도 제법 많았다.

 

그들의 모습을 즐기며 졸음에 겨운 신체를

어찌어찌 버티고 오니 80km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역시나 주자는 앞 뒤로 보이질 않는다.

갈 때 올 때, 주로엔 혼자였다.

 

 

 

<제한시간 16시간>

 

 

 

80km 이후부터는 속도가 늘지도 줄지도 않았는데,

시간은 3시간 20분 정도가 남아 있었기에 게으름만 피우지 않는다면

제한시간 내 충분히 안착 할거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착각도 참 자유십니다."라고

여긴 건 95km 지점을 통과하고 났을 때였다.

 

불과 5km의 거리에 시간은 40분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신체적 능력에 따르면 충분한 거리 대지만

 

지금은 막판 진땀을 빼고 있을 싯점이라,

40분이라는 벽은 나에겐 또 다른 시련을 안겨주는 험난함이었다.

 

늘 이때가 100km 구간 중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다.

숨은 턱까지 차고 신체 능력은 밑바닥을 보이고 있을 사정이다.

 

머리 푹 숙이고 뛰고 또 뛰었더니

그제야 이 고단한 행위의 종착점이 나타난다.

 

 

 

 

 

 

<완주의 순간>

 

 

 

출전하기 전, 삶에 겨운 신체와 정신력은 스트레스에

찌들어있었다.

 

그다지 뛰고 싶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출전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을 정도로

컨디션은 좀처럼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완주의 기쁨을 누리고 보니

뭐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부딛혀 보자.

그럼 어떻게든 답은 나올 것이다.

 

그 나온 결과에 수긍해야지

해보지도 않고선, 포기란 단어를 선택하기란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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