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산행기/일반산행기

진례환종주 33km(황새봉~용지봉~비음산~응봉산)

구상나무향기 2019. 12. 2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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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지도로 본 진례환종주>





진례환종주.


인터넷을 뒤져봐도 '진례환종주'란 단어는

눈에 보이질 않는다.


딱히 뭐라 부를 이름도 없지만

진례환종주가 가장 어울려 그렇케 불러봤다.


둥글게 종주했으니 어쨌든 환종주가 아니겠는가

중앙에 있는 분지가 바로 '진례'


그러니 진례환종주다.







<중앙 분지가 진례, 좌.우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다>




용지봉을 기준으로

 

우측 능선은 무척지맥 (용지봉~황새봉)

중앙은 낙남정맥 (정병산~용지봉)

좌측은 정병산에서 뻗은 진례 능선 (정병산~태종산)





<진례환종주>







장유에 살다보니

진영과 진례에 자주 갈일이 생기는데


그때마다

좌.우 길게 뻗어내린 능선에 시선이 간다.


"어...정병산 능선이 아니네"


사실 나는 남해고속도로 좌측편 능선을

정병산에서 뻗어내린 능선이라 착각했었다.






<진례 벌판>






비음산을 지나 정병산 가는 길목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는 능선.


소위 진례 능선이다.


길이는 10km 남짓.

정병산에서 노티재를 지나 진영의 여래고개와 진례 태종산까지 이어진다.


진례와 진영을 잇는 능선.






<진례 환종주>





짐짓 봐도

좌측이나 우측 능선 모두 10km 이상 되는 긴 능선들.


용지봉과 정병산 구간의 중앙부분을 생각하면 족히 30km는 느끈히 나올듯한 모양새다.

(실제로 걸어보니 33km가 나왔다.)






<시작 지점, 고기백화점>




시작은 다소 늦었다.

늑장을 부린 탓인데 사실 이 때문에 후반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때는 동지.


해가 가장 짧은 시기인지라

해 떨어지기 전, 산행은 마무리가 되었어야 했는데


응봉산 도착하니 이미 오후 5시 20분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능선 내내 뛰어야만 했었다.





<날머리 태종산, 해가 떨어져 응봉산에서 하산했다.>






고모리 무촌교를 지나 임도를 따라 오르면 황새봉 시작 지점.


언덕 위에 서니 진례가 한눈에 드러나는데

맞은편 두 봉긋한 봉우리가 응봉산과 태종산이다.


날씨는 싸늘해

영상 0도에서 3도 정도를 보인다.


자켓을 벗지 않고 산행할 정도였지만

땀은 제법 흘렸다.







<맞은편 진례 능선>




무척지맥은 능선길이 아주 좋다.


진례에서 남해고속도로가 있는 장고개까지 약 10km 가까이 되지만

2시간 만에 주파할 정도로 길은 매우 양호하다.


황새봉에서 용지봉까지가

바로 무척지맥인데 소위 고속도로 수준.


봉우리들이 서로 이어져 있어 걷기에 매우 순탄하다.


하지만

반대편 진례 능선은 '동네뒷산잔혹사'의 거친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 정말 험로였었다.


봉우리가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다 삼각뿔마냥 떨어져 있기에 오르락내리락 식겁했었다.








후다다닥~~

깜짝 놀라 숲을 보니 고라니 두 마리가 뛰어 내려오는 게 아닌가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고라니는 사라지고

고즈늑한 임도만 찍혔다.


사실 고라니를 찍을려고 했던 장면이다.





<고라니는 사라지고 임도만>




산행 내내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을 정도로

한갓진 산행을 즐겼다.


서늘한 기온,

하지만 거친 숨소리에 땀방울은 송글하다.


길도 너무 좋아 이런 길이라면

종일 걸어도 좋다고 흥얼거리며 산행을 즐기고 있었는데


물론 앞날에 대한

험난함을 전혀 모른체 말이다.








"여기 잠깐만요 여기로 오면 안 돼요"


내려오고 보니 골프장이다.

거기 안전 요원이 나를 보더니 기겁을 하는 게 아닌가.


아니 뭐 내가 산짐승도 아니고

웬 호들갑인가 싶었는데


골프공에 맞을 수 있으니 절대 조심해서 다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골프장을 통과해야 한다>




골프공은 어찌 잘 피했는데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길이 소멸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서 장고개 (남해고속도로)로 가야 하는데


길이 낙엽에 가려 싹~ 사라져 버린 게 아닌가

급히 오룩스맵을 확인하고 뺑뺑 돌은 덕분에 간신히 길을 잡았다.


하지만 이미 도깨비바늘에

온몸을 망친 뒤였다.






<저거 떼어 낸다고 식겁했다>




무척지맥은 두 개의 도로가 길을 가로 막고 있는데


남해고속도로 장고개와

진례국도의 냉정고개다.


남해고속도로가 있는 장고개에서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오룩스맵엔 도로를 횡단하는 것으로 선이 그어져 있지만

실제론 길은 없다.




<도로를 횡단하는 길은 없다>





남해고속도로 철망에 서서

지도를 한참 들여다봤다. 여긴 온갖 잡초가 무성한 그야말로 난감한 위치.


"아..저기다"


지도상 분명 터널이 있을 거라 여겨

방향을 잡고 걸으니 거기 또한 온통 도깨비바늘 투성이다.


오늘 아랫도리는 도깨비바늘로 완전 도배를 하고 말았다.


"아이고 이걸 언제 다 떼어내냐"




<남해고속도로>




드디어 통과하는 터널을 찾았다.

이 길을 곧장 걸으니 냉정고개까지 터널이 이어진다.


도깨비바늘 떼어 낸다고

전경부대 있는 후목장 언덕에서 잠깐 쉬어간다.


휴식시간,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부터 용지봉 5km 구간은

곡소리나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남해고속도로를 통과하는 터널>



까치 먹일려고 남겨둔

홍시가 몇개 남아 슬쩍 서리좀 해봤다.


그리 달콤하진 않아

이내곧 후회하고 말았다.


"까치나 먹게 놔둘껄"




<냉정고개>



국립공원이나 유명한 산이 더 험한 건 아니다.


동네 뒷산이라도 되려 정비되지 않고

자연의 길 그대로인 게 대부분.


오르막과 내리막의 급경사는 낙엽으로 두텁게 쌓여

더욱 어려운 고행의 길이 된다.


용지봉 올라가는데 "쎄가 만발로 빠질" 지경이다.







<아이고 내 팔자야>




용지봉이야

그야말로 '내 동네 뒷산'격이다.


얼마나 많이 오른 봉우리 인지 나도 수를 못 센다.


대암산과 비음산 그리고 정병산

참으로 많이도 다닌 나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명산들이다.









언덕에서 바라본 그날 지나온 능선의 모습.

시작 봉우리는 카메라 앵글에서 보이지도 않는다.


벌써 아득하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은 정말 실감 나는

명언.


대략 용지봉에 오르면

15km 정도.


절반 남은셈이다.





<지나온 길>




드디어 용지봉이다.

거친 오름을 극복하고 간신히 올랐다.


쉰내 나는 용지봉 오름질에

"역방향이 오히려 더 쉽겠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례 능선을 타고 난 후 생각이 달라졌다.

거기 내리막에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이다.





<용지봉 정상>




정상에 도착하니 싸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저 멀리 걸어갈 길.

그리고 걸어온 길의 행적이 뚜렷이 남는다.


지금껏 해온 고행의 길, "이만했으면 충분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남의 길은 더욱더 가열한 고행의 길이었다.


우린 늘 지금의 현실에 암울해 하지만

남은 앞날의 난감한 사태는 잘 모른다.


딱 그날이 그랬다.






<용지봉 정상, 용제봉이라고 적혀 있다>





시계를 보니 낭패감이 일어난다.

"벌써 이리 되었네"


오후 1시가 다 되어 도착한 용지봉이었다.


아침에 좀 더 일찍 시작했어야 했는데

해가 서산에 기울기 시작하면 숲은 급격하 게 어두워지기 마련.


때는 동지다.


숲에서 렌턴도 없이 어둠속에서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가야할 길, 저멀리 뽀족한 봉우리가 정병산>




렌턴도 챙기지 못한 나의 실책.


진례 능선 전체가 낙엽이 워낙 두텁게 쌓여

렌턴이 있더라도 어두워진 숲속의 길을 찾기란 대략난감.


낮에도 희미한데 밤에는 오죽했으랴

서둘러 하산하는 게 가장 상책이었다.


나는 비음산에서부터 정병산 갈림길까지 뛰고 또 뛰었다.






<진례 능선이 아득하다>




대암산에 올라 진례 벌판을 바라보니


오늘 걸어온 길

그리고 가야할 길이 선명하다.


"늦었다 서둘자"


이때부터 나의 머리 속은 이 명제로 가득했었다.




<시작과 종점>




'윤활막염'


오른쪽 어깨죽지가 심하게 아파

병원에 갔더니 윤활막염이란 진찰을 받았다.


대충 알아보니

과사용으로 인한 염증이란다.


마라톤 12년

산행 20년

수영 10년


뱃살 듬직한 실루엣, 보면 믿기지는 않겠지만

나의 운동 경력은 제법 된다.


염증도 생길만 하다. 염증은 쉬면 낫는다고 하는데

그걸 쉬지 못하고 나는 또 오늘 이 장거리 산행을 하고 있으니


몸뚱아리에게 늘 미안하다.








<능선이 꾸불꾸불하다>





대암산에서 비음산까지 어떻게 걸었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한 시간.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몰아일체의 경지로 걸었을 시간이었다.


신체 피로도는 가면 갈수록 축적되고 있었지만

그땐 그런 것도 몰랐다.





<대암산 정상>





어느듯 비음산.


비음산 팔각정 뒤편으로 정병산이 뽀족하다.


비음산에서 정병산까지는

길이 좋아 뛰기에 적합한데


진례 분기점이 나오기까지

신나게 뛰었다.








<비음산 정상 팔각정, 저 뒤 봉우리가 정병산>




어느듯 해는 뉘역뉘역 서산으로 지고 있음을

숲의 빛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어둑어둑 해져 가는 느낌이 새삼 동지라는

절기를 실감케 한다.


장거리 산행은 역시 해가 긴 봄이나 가을에 해야지

겨울엔 할려면 새벽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건 기본 진리다.





<능선 왼편은 창원 도심이 보인다>



오른편은 역시나 진례 벌판이 거창하 게 펼쳐진다.

파노라마로 찍어봤다.


저기 저 시작 지점과

오늘 내려갈 끝 지점이 보인다.


아득하기만 하다.


내려가야 할 길이 사뭇 멀다는 건 시각적으로도 충분히 느낄 시간.


"서둘자"








드디어

분기점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진례 능선.


오후 3시 30분 도착했으니

제법 늦은 시간이었다.


오후 5시쯤 날머리 도착으로 생각했으니

나는 이 능선의 거리와 난이도에 대해서 제법 거만한 생각을 가진게 분명했었다.


사실 이 능선은 내려가는 데만 족히 3시간이 걸리는

긴 능선이었고 난이도는 최상급이었다.


위험도도 만만찮았다.


미끄러운 길,

보이지 않는 희미한 등로,

급경사의 긴 내리막,

그리고 내려가면 또 올라야 되는 지루한 오르막.


허벅지의 텐션이 시시각각

이 헐랭이 산꾼의 발목을 부여 잡고 놓아주지 않았으니


시간은 하릴 없이 흘러만 갔고

시시각각 어두워져 가는 숲에서 내내 정신줄 놓아야만 했었다.





<정병산에서 진례로 가는 분기점>




쉴틈도 쉴 생각도 없이 쉴새없이 오르고 내렸던

이 진례 능선의 10km 구간.


이 응봉산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 20분

해는 이미 지고 있었다.


헐래벌떡 겨우 당도했던 응봉산.


다음 봉우리가 태종산,

사실 거기가 진례 능선의 종착지였지만


나는 응봉산에서 하산을 결정하고

도심지로 뛰어 내려갔다.








이미 해는 지고 숲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더는 숲에 머무는 건 아무리 동네 뒷산이라도

위험천만한 행위.


특히나 낙엽이 두텁게 쌓여 길이 매우 희미한 상태.

여기선 렌턴으로도 길찾기가 어렵다.





<태종산이 어둑하다>




사실 태종산으로 가는 게 거리는 훨씬 더 짧다.


응봉산으로 내려와 도심지를 가로질러가면 3km가 더 나오고

길은 한적한 도로변이라 위험하다.


하지만 무리수보다

안전을 택해 하산, 내려오니 마을 뒷산 공동묘지다.


처녀귀신 몽달귀신과 함께 하산하다 보니

진례나들목.


목적지까지 딱 3km 남았다.









이리저리 도로변을 횡단하면서

겨우 도착하니 33km, 10시간 20분으로 그날 진례환종주를 마무리한다.


사실 더 갈 수 있었다.


오늘 목적지가 여기라서 그만한 것.


더 갈 수 있는 몸뚱아리와

정신력이 있다는 것에 나는 늘 감사하고 행복해 한다.









짜릿했던 진례환종주 33km

다시 도전하고 싶은 멋진 코스다.


도전, 그것은 언제나 나를 살게 해주는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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