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세상이야기

에베레스트의 진실

구상나무향기 2010. 4. 2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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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m 高山은 인간을 더 비정하게 만들었소

 

에베레스트의 진실
마이클 코더스 지음|김훈 옮김|민음인|494쪽|1만4400원

이 책은 2004년 봄 시즌 에베레스트봉 등반에 참여했던 한 미국기자의 체험 및 추적기(記)다. 두 사건을 교차 배열하고 있다.

한쪽은 에베레스트에서 실종된 미국인 의사를 추적한다. 자신이 소유하고 이뤄낸 그 모든 것에도 만족하지 못한 69세 노인. 에베레스트에 오른 그는 하산 도중 실종됐다. 기진맥진한 가이드와 셰르파들이 그를 버리고 온 사실이 드러난다. 비정하고 무책임한 행태에서 인명 경시와 상업주의 오염을 고발한다.

다른 한쪽은 비슷한 시점 '미국 코네티컷주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참여한 저자가 겪은 '진실'에 관한 것이다. "등반기간 동안 만 달러 이상에 해당하는 내 텐트들·로프·산소통이 사라졌고, 훗날 그 일부가 다른 팀 대원들의 장비 속에 숨겨 있다가 나왔다. 고용한 셰르파들은 몇천 달러를 받고도 우리 대원들이 도움이 필요했을 때는 내버리고 가버렸다. 일부 산악인들은 해발 6000m가 넘는 곳에서 매일 대마초와 맥주·위스키에 몽롱하게 취해서 지냈다."

민음인 제공
그러면서 자신의 원정대를 이끌었던 리더를 고발한다. 그는 '사기꾼' 같은 존재에다 야비하고 폭력적이다. 등반 내내 돈과 장비, 먹는 음식 문제를 둘러싸고 사사건건 치사하게 다툰다. 그를 통해 에베레스트 등반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인간들에 의해 이뤄지는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저자 자신도 팀원들에게 자신의 인터넷을 빌려주지 않고 그때그때의 내부 불화를 바깥으로 공개하는 글을 올린다.

몇번의 히말라야 원정에 참여한 서평자로서는 솔직히 요령부득한 원정대의 모습이다. 어느 원정대도 불화는 있게 마련이다. 다만 공통된 목표의식, 엄격한 상하관계, 동료애, 자기희생으로 이를 극복해나가는 것이다. 오합지졸처럼 자신의 욕심만을 마구 표출하는 상황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서구인의 개인주의 의식과 원정대의 전문성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또 팁 문제로 다투었던 셰르파를 불신하고, 위험에 처한 고객을 위해 몸을 던져 구하지 않는 것을 비판한다. 하지만 고용된 셰르파의 생명도 똑같이 귀한 것이고 그들도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셰르파의 관점은 없다. 외지 산악인들은 '성취의 욕망'으로 왔지만, 셰르파들은 불가피한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 이들보다 훨씬 더 많이 죽고 있다.

물론 돈과 어느 정도 체력만 있으면 고객을 정상까지 올려다 주는 상업등반대의 폭발적 증가로 에베레스트가 '최고급 레저의 대상'이 됐다는 지적은 일견 맞다. 위성 일기예보, GPS, 험난한 구간의 고정로프와 사다리, 산소통들로 등반의 '진정성'이 점점 퇴색된다.

하지만 에베레스트는 전문산악인의 '독점물'로 계속 남아있어야 할까. 등반은 순수한 행위여야 한다는 전제는 너무 성급하다. 대부분 우리의 행위가 그렇듯, 등반에도 '비즈니스 욕망'이 숨어 있게 마련이다. 그 욕망이 있다고 그렇게 해로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사실 확인을 위해 사건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저널리즘적인' 노력은 돋보인다. 특히 이 책에는 그해 에베레스트에 가 있었던 대구 계명대 원정대의 참사 상황도 나온다. 당시 박무택·장민·백준호씨 등 산악인 3명이 숨졌다.

"로츠너는 정상을 향해 올라갈 때 정상 바로 아래 지점에서 쓰러져 고정로프에 매달려 있는 한국인(박무택) 곁을 지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더운물을 좀 달라'고 부탁했지만 로츠너 본인도 정신력과 체력이 거의 한계에 달했고 그의 셰르파가 '빨리 가라'고 다그치는 바람에 죽어가는 사람 곁을 그냥 지나쳤다.

그 아래에는 한국등반대의 또 다른 대원(장민) 하나가 제2스텝에 걸려 있는 사다리 밑으로 추락해 한쪽 다리가 부러졌다. '그 사람은 눈밭에 누워 있었고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그는 사
람들에게 자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 우리는 그 사람을 보고도 그냥 놔두고 내처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한국 등반대의 세번째 대원(백준호)은 정상에서 하산한 뒤 자기 친구들을 돕기 위해 방향을 돌려 산 위로 올라갔다."

이제 유명 여성산악인이 된 오은선씨도 당시 그 지점을 지나쳐 정상에 올랐다. 이 책의 원제는 '고산 위 범죄'(High crimes)다. 산악인의 행위가 범죄라기보다 8000m 고산 자체가 비정한 것이다.
 
조선일보 3월 16일자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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