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화창했었다.
2월의 말, 아직 동장군 기세가 여력을 더할 시기지만
따스한 훈풍만이 감도는 산중의 온기였었다.
겨울의 느낌은 없고 완연한 봄의 서정 딱 그 수준.
겉옷은 벗고 땀은 바람에 말리며
간만에 따뜻한 시간을 즐긴 산행이었다. 올해 겨울 다운 날씨가 과연 며칠이었을까?
1월, 지리산 가서 설경을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의 겨울 서정이었으니
지구온난화라는 단어가 슬그머니 뜨올려 지는 건 이젠 지나침이 아니다.
그날, 미세먼지와 박무로 하늘은 다소 흐렸다.
저 멀리 청명한 시야감은 보여주지 않았지만 짙은 덧칠 뒤로 산야의 실루엣은
뚜렷했었다.
장험함이란 표현은 되려 이런 분위기가 더 나아 보인다.
산야의 능선, 마루금을 굵은 연필로 스케치한 듯 보는 것도 딴은 나쁘지 않음이다.
오늘 코스는 운문사 자락.
나는 영남알프스 최고 험지를 꼽으라면 운문산이라고 늘 악다구니를 늘어놓는 데
가히 명불허전의 품격 운문산이다.
운문북릉, 범봉북릉, 호거대 능선, 복호산, 함허산, 천문지골 등 다양한 코스에서
운문산 자락의 서슬퍼런 험함은 군데군데 산꾼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어준다.
다소는 강렬한 산행을 원한다면 이 자락의 능선질을 즐겨보라 권하고 싶다.
복호산 자락과 지룡산 능선 안부의 어마어마한 바위 군락은
딴은 산꾼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고압스런 풍경.
호랑이가 엎드린 산, 복호산(伏虎山).
못에서 용이 승천한 곳, 지룡산(池龍山).
용호가 상박하는 이곳, 따뜻한 봄의 기운이 가득한 어느 날.
북대암으로 올라보았다.
산세가 험하여 이전에는 호랑이가 자주 출몰한 곳이라 주변 산 이름에 범봉(虎峰)도 있고
호거대도 있으며 복호산(伏虎山)도 있다.
운문사 들어가는 범종각 밑 현판에는 호거산 운문사(虎踞山 雲門寺)라고 되어 있으니
이곳에 범이 드나드는 곳이었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운문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북대암으로 오른다. 신원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은 다소 험하고 거칠다고 하여
그 대신 북대암에서 복호산으로 오르기로 한 것.
본인의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아 나름 잔머리를 굴린 코스였음을 시인한다.
북대암으로 오르는 길, 다소 오름이 벅차다.
오늘 거친 산행을 대비. 사전 준비 운동이라 여기고 사부 자기 걸으니 어느덧 북대암.
이곳에서 보는 풍경이 사뭇 멋지기에
예전 북대암 뒤, 바위 터럭에 올라 운문사를 조망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기도 했었다.
북대암의 화장실 뒤편으로 다소 편안한 산길이 이어지지만
어먼 길 좋아하는 산꾼. 그런 데로는 잘 안 가는 청개구리다.
산신각으로 이어진 길은 바위 암벽으로 꼬불친 길.
터럭과 터럭 사이. 비탈진 길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을 즐기며 심장 고동이 힘겨울 즈음
아찔한 풍경으로 덤을 누린다.
길은 거친 숨을 내뿜게 하지만
눈과 심장은 즐겁다.
마루금의 짙은 선명이 이곳에 오르니 적나라하다.
코 앞 호거대 능선과 저 멀리 범봉과 삼지봉 억산까지 뚜렷하다.
아득히 운문산과 가지산의 능선까지
마치 점점이 흩어진 섬을 보는 듯 그렇게 봉우리들이 하늘 가득 솟았다.
북대암 자락에서 보는 풍경이
아마도 가장 웅장하지 않을까 싶다.
단풍색 짙은 어느 날, 이곳을 찾는 다면 최고의 가을색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사진 촬영을 위해 일부러 이곳을 찾기도 한다.
호거대 능선의 장군봉.
달리 호거대라 부르는 곳. 저 위에 올라 지룡산과 복호산을 조망하는 풍경이 딴은 나쁘지 않다.
예전 진달래 피는 호시절. 호거대 능선에서 범봉까지 치달은 추억이 선한데
정말 추천하고 싶은 발 맛 좋은 길들이다.
이제 복호산으로 향한다.
복호산은 신원마을에서 올라오면 거친 암벽을 타고 올라야 하는 악산이다.
북대암이나 신원마을이나 어느 곳에서 올라도
암벽의 길을 거부할 수 없는 다소는 거친 산.
호랑이가 엎드린 곳이라는 복호산.
호랑이 품속으로 가는 길이라 그런지 사뭇 긴장감이 감돈다.
복호산 아래의 마루금이 시원하 게 터졌다.
길 아래 아찔한 낭떠러지 사이로 절묘하 게 산길은 이어진다.
복호산은 북대암에서 오르길 추천하지만
신원마을에서 오르면 차량 주차비와 문화재 입장료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북대암에서 오르면 운문사 매표소를 통과해야 하기에 서민의 주머니가 털린다는 단점이 있으니
이점 주의해야 한다. (주차비 2천 원, 관람료 1인 2천 원)
인원이 대규모라면 관람료 때문이라도 신원마을에서 오르길 권유한다.
아님 이른 아침 시간에 통과하면 된다. (7시 이전)
신원마을에서 오르나
북대암으로 오르나 거친맛은 똑같다.
밧줄 구간이 없는 북대암 코스는 나중 원점회귀 시 거리가 짧다는 점에서
이 코스를 선택한 것.
원점회귀로 신원마을에서 오르는 복호산 코스 선택 시 주차 때문에
운문사에서 걸어갈려면 신원마을까지는 제법 멀다.
하여 오늘은 짧게 굵게 하기 위해 북대암 코스로 잡은 것.
최근 컨디션이 매우 나빠 운동을 많이 하지 못했는 데
불연듯 찾아온 컨디션 저하에 식겁했던 한달이었다.
복호산에서 지룡산까지는 지근이다.
오늘 목표는 내원봉을 지나 사리암까지
지룡산에서 내원봉까지가 땀방울 구간.
내원봉은 이 능선 가장 우뚝 솟은 봉우리 인데 빠짝 처올려야 하는 힘든 구간이다.
봉우리가 자꾸 뒤로 가는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산꾼의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는 난코스다.
지룡산에 대한 전설이 구전되고 있는데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에 대한 이야기.
동굴에 살았다는 지렁이가 미남자로 변해 이 마을의 처녀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바로 견훤이었다고 한다.
태어날 때 부터 남달랐다는 견훤의 탄생사.
또하나 더 있는데 역시나 견훤과 얽힌 이야기.
훗날 왕건과 한판 붙을 때 두 진영 모두 역병에 시달렸는 데
조상이 나타나 지렁이 처방을 알려줘 병사들을 치료 하고 왕건의 부대를 퇴패시킨 곳
바로 이곳이다.
이곳이 바로 지룡산 이름이 붙은 이유다.
그런데 한자에는 지룡산(池龍山)의 '지'는 연못을 뜻하는 한자가 붙었는데
지룡산(地龍山)이 바른말이 아닐까 싶다. 땅의 용, 즉 지렁이를 일컫는 말이다.
여긴 연못이나 저수지가 없기 때문이다.
혹여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엔 있었는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원봉 가는 길, 지룡산성이 있는데
이 지룡산성이 견훤이 축성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지역은 견훤에 관련한 이야기가 있는 만큼
지룡산의 전설은 '카더라' 삼천리로 지금껏 전해 오고 있는 것이다.
믿든 말든
부처님이나 하나님이나 뭐 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고 없다 하면 없는 것이다.
운문사가 아늑하게 자리잡았다.
내원암 가기 전, 전망 좋은 바위에 오르면 저 아스라한 풍경을 접하게 된다.
짙은 박무로 시야는 흐릿하지만
굵은 연필로 그린듯한 마루금은 찐하기만 하다.
호거산 운문사(虎踞山 雲門寺)라고 입구 현판에 적혀있다.
의례 사찰 현판은 품고 있는 산 이름과 함께 적는다.
그런데 호거산?
호거산은 어디에 있는 산이지하고 궁금했는 데
방음산 옆 봉우리가 바로 호거산. 얕은 봉우리다.
방음산과 호거대 사이에 돋아난 봉우리가 호거산 인데
아니 천년고찰 운문사의 네임벨류가 있지 어찌 작은 호거산의 이름을 따온 것일까?
호거산은 운문사에서 약간 빗겨간 곳에 위치한 산.
사실 운문사는 지룡산 아래 자락에 더 가까운 사찰이다.
또한 운문산이라는 거대한 산이 웅장하 게 굽어보는 위치의 사찰.
호거산 운문사라고 하기엔 다소는 품격이 떨어지지 않나 여긴다.
이곳의 지명은 하나 같이 용호상박의 대서사가 펼쳐지는 곳이다.
복호산이나 호거산 그리고 지룡산과 범봉.
용과 호랑이가 싸우는 정중앙에 위치한 사찰이 바로 운문사다.
내원봉 오르기 전, 바라다보이는 풍경이다.
코 앞에 있는 암자가 내원암.
우측 켠 봉우리가 지룡산
뒤 암벽이 붙은 봉우리가 복호산이다.
내원봉에 올라가는 길이 왜이리 힘든지
확실히 컨디션 저하가 유난스럽다.
지난 한달간 지금것 겪어보지 못한 질환을 당했고
이제 치료가 끝난 상황.
컨디션 저하에 저어기 문제가 있어 이제야 산행에 나섰기에
산행이 다소는 힘든 탓이다.
그래도 회복은 빨랐고 한달만에 거친 산야에 몸을 맡길 수 있었으니
그나마 감사할 다름이다.
올라오는 길. 북대암 부처님에게 살며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내려 갈 때 사리암 부처님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내원봉에서 따스한 봄의 기온을 느끼며
황후의 밥과 걸인의 찬으로 허기를 달래니 이또한 행복이리라
이곳에서 사리암봉까지 지척.
거기서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바로 사리암이다.
사리암으로 들어가는 길은 두 갈래.
사실 그때는 몰랐다.
능선에서 두 가닥의 길이 나오는데 그대로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사리암의 계곡까지 내려가며
직진하다 우측으로 틀면 사리암 바로 아래 계단으로 나온다.
하지만 능선에서 우측의 뚜렷한 길을 따라가면 바로 사리암.
거긴 출입통제라고 해놨기에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통과해야 하는 부담은 있으나
거리는 짧다.
그래서 지도는 사리암 바로 아래의 계단 길로 안내한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암.
그래서 법당 안에는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다.
기도빨 좋은 영험한 곳이란 소문에 이곳은 늘 신도들로 넘처난다.
오늘은 특히나 많은 신도들이 코로나를 뚫고 신념을 위해 사리암에 들었다.
법당의 한켠, 나도 이곳에서 108배의 치성을 들여보았다.
사리암주차장에서 운문사까지는 2km 남짓.
사부 자기 걸어도 30분이면 도착한다.
사리암에서 108배와 뉘적거리는 탓에 시간이 제법 늘었다.
10km 남짓, 6시간 20분이 걸린 나름 짧고 굵은 코스.
계절이 이제 좋다.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면 더욱 더 좋을 시절.
떠나자!
봄처녀가 어서 오라며 손짓하는 저 산야의 숲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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