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죽겠네 죽겠어"
2017년 8월, 불국사에서 감포까지 왕복했을 때
나는 넋을 빼놓고
이 극악하고도 한심한 토함산 오르막 길을 올랐었다.
더워도 너무 더웠든 지난날,
나는 무던히도 저 길을 왕복했던 전력이 있었다.
<석굴암 오름길>
장거리 훈련을 하고 싶을 때, 코스 선정은 어디로 해야 하나
늘 고민이 깊다.
지도를 놓아두고 이래저래 판단해 보지만
무엇보다 안전하고 조촐한 길을 찾아내기란 쉽지가 않다.
장거리를 뛰려면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
장유에서 뛰고 도는 코스는 이미 많이 뛰어본 바
새로운 길에 대한 갈망은 늘 있기 마련이다.
최근 진영~밀양을 오고 가는 길을 연구도 해봤는 데
생각보다 차량 왕래가 많고 길이 좁아 포기하고
몇 해 전 뛰어본 불국사~감포가 뜨올라 다시 찾아갔다.
하지만 뛰기 전 갈등은 엄청했었다.
갈 때, 불국사 -> 석굴암 갈림길(5km)
올 때, 한수원 -> 석굴암 갈림길(8km)의
무지막지한 오르막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돌아올 땐
경사도도 더 가파르고 거리도 3km나 더 멀다.
무엇보다 지쳐있을 때의 사정이니 고행은 더 가증될 수 밖에 없음이다.
이미 겪어봤기 때문에
알고있었다.
그러나 훈련은 훈련. 실전보다 더 과하게 해야 실전에서
좀 더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석굴암 감포 갈림길>
불국사에서 시작한 오르막은 석굴암과 감포가는 갈림길이
깃점이 된다.
감포 방향으로 틀면
심한 내리막이 기다리는데
한참을 쉬지도 않고 뛰어 내려가니 바로 한국수력원자력이다.
여기서부터 양북까지는 외줄 도로.
최근 새로운 도로가 생겨 옛도로는 차량이 적어 뛰기엔 한갓지다.
<한국수력원자력, 갈 때 13km 지점. 올 때 42km 지점>
돌아올 때 여기서 석굴암 갈림길까지 오르막을 오르지 않고
불국사 방면으로 가도 될듯하지만 실상 거기로 가면 안 된다.
바로 토함산 터널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아차 터널로 들어가는 순간 그건 자살행위다. 매캐한 매연과
엄청난 소음을 견뎌야 하기에 터널로 지나가는 건 멍청한 짓.
길이도 4.3km 엄청나 게 길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토함산의 길고 긴 오르막을 닥치고 올라야 한다.
이는 어떤 대회의 오르막 난이도보다 더 높은 코스다.
도마령, 도덕재, 피반령 등등
각 대회의 오르막에 비하면 여기가 한 수 위다.
<한수원에서 불국사 방면은 토함산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쉬지 않고 뛰었더니
어느새 양북면 대왕온천이다.
여기까지가 정확히 18km,
가장 몰입해서 뛴 구간.
기림사나 골굴사의 유명 사찰도
이 도로 근처에 있다.
양북면의 한갓지고 전원적인 마을들이나
정겨운 시골 풍취가 가장 잘 드러나는 코스다.
여름에 뛰어도 좋고
봄에 뛰어도 좋을 코스다.
<양북면 대왕온천. 여기가 18km>
양북면에서 감포까지는 오르막과 평지가 교차되면서
지루한 길을 형성한다.
느닷없이 삭풍이 불기도 했지만
등허리에 흘러내린 땀방울만 식혀줄 뿐 사무침은 없다.
춘래불사춘, 이제 봄이다.
<감포 해안가, 25km 지점>
감포에선
자전거 길 정비가 잘 되어있어
그 길만 따라가도 안전하게 달릴 수가 있다.
구부정하 게 허리를 숙이고
거침 숨 몰아쉬며 헐랭이 런너의 한심한 짓거리는 멈춰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30km 지점을 통과하는 싯점부터
신체적 무기력감은 최고조로 달할 것이다.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감은사지, 30km 지점>
역시 오늘 훈련의 깃점인 30km을 통과하니
정신적 무력감이 문뜩 유혹을 하지만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방도는 없다.
나는 소위 '배수의 진' 코스를 좋아한다.
여긴 경주의 시골 한복판.
택시도 없고 지원해줄 어떤 조력자도 없다.
그렇기에
그 시간만 극복하면 내가 온 길, 다시 가게 되어있다.
비도 오고 바람도 거세게 불었지만
그런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감포에서 양북까지 가장 지루한 길>
50km라고 하지만
100km 대회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거리다.
이정도에서 포기니 힘드니 하는 심적 부담은 사실 사치다.
이런건 즐겁게 여기며 뛰어내야 정작 대회에선 편해진다.
그래서 훈련은 중요하다.
또 훈련은 힘들어야 한다. 편하게 하면 실전이 어려워진다.
돌아올 때, 폰 만지는 것도 귀찮아
오로지 뛰는 데만 집중했었다.
감은사지에서 양북까지의 길고 긴 일직선의 도로는
삭풍과 비가 한데 어울려 이 헐랭이 런너를 내내 괴롭혔었다.
하지만 "이정도 쯤이야"라며 호기있는 걸음으로
50km 지점에 도착, 7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한수원에서 석굴암 갈림길 8km의 오르막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잡아 먹게 만든 것이다.
석굴암 갈림길 지점이 정확히 50km 지점.
<다시 돌아온 석굴암 갈림길 여기가 50km>
여기서 불국사 주차장까지는 정확히 5km.
그래서 오늘 총 거리가 55km인 것이다.
일단 50km는 완주했고
남은 거리 5km을 더 소화해야 하는 구간이다.
길은 내리막
천천히 쉬지 않고 내리막 구간을 뛰어 내려왔더니 30분만에 도착했었다.
(올라갈 땐 1시간이 더 걸렸다.)
<불국사>
불국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는 뉘역 뉘역 서산으로 지고 있을 시점.
뜬금없이 포근해 땀을 제법 흘렸더니
탈수가 걸려버렸다. 물을 얼마나 마셔댔는지 모를 정도다.
벌써 정제소금을 챙겨야 할 시즌이 되었나 보다.
<불국사 주차장>
1월 장유에서 50km
2월 경주에서 55km
3월에는 산행으로 장거리 훈련을 계획 중이다.
4월 세종울트라마라톤대회를 첫 대회로 꼽은 만큼 이 대회에서
별 탈 없이 완주하기를 기원한다.
<도착>
고기 먹으면 힘이 좀 날꺼나
<인월 흑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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