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마라톤/마라톤대회 참여기

제9회순천만울트라마라톤대회(101.5km)

구상나무향기 2015. 11. 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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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나 많은 사람이

가는 방향으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따라가는 행동'

 

이걸 추종성(followership)이라 한다.

 

'맹목적인 추종성'의 형태는 특히나 울트라마라톤에서 비일비재로 발생하는

촌극 중 하나다.

 

흔히 알바라하는데, 알바라 함은

'주로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헤매 헛일을 소모함'을

나타내는 마라톤이나 등산에서 사용하는 은어다.

 

 

 

 

 

 

마라톤에서 추종성, 즉 알바는 리더 그룹을 맹목적으로 따른대서

기인하는 게 대부분이다.

 

100km의 먼 여정을 뛰다 보면 자칫 코스맵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뛰는데만 정신이 팔려 방향 표식을 보지 못하고

뒷 주자가 맹목적으로 앞 주자를 따라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1명. 2명 뭉치다 보면 그룹으로 형성된다.

 

그런데

만일 선두 주자가 길을 잘못 들었다면 어떻게 될까?

 

그 그룹 전체가 모두 어긋난 길을 따라 뛰게 되는 것이다.

 

뒤따라 간 억울한 주자라해도

소모된 시간과 거리는 보상되지 않는다. 고스란이 주자의 몫인 것이다.

 

선두 주자를 원망한들 이미 소용없는 일이다.

 

 

 

 

 

 

그래서 울트라마라톤을 뛸 땐, 앞 주자가 간다고 해서 무작정 뒤따라가서는

안되는 게 상식이다.

 

애매해서 서로 헷갈려 한다면 코스맵을 확인하고, 똑바로 된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선두가 뛰어간다고 무작정 맞겠지하고 뒤따라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어..분명 저 직진이 맞는데"

 

혼자 내내 고개를 갸우뚱 그리고 있었지만,

직직의 길은 끊긴 상태.

 

우왕좌앙, 일련의 그룹을 형성한 사람들이

다른 길로 이미 접어들고 있었다.

 

특히나 "이 방향이 맞아요 이리로 오세요"하는 앞선 주자의 말에

그 그룹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선두 주자는

주로의 길을 몰랐던 사람이었다.

 

결국, 그 길은 애먼 길이었는데

5km, 약 1시간 이상을 지체하는 에둘러 가는 먼 길이었다.

 

대략 20명가량 되는 사람들이

소위 알바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른바 추종성이 빚어낸 촌극이었다.

 

 

 

<뺑뺑 돌았다~~>

 

 

 

본인 역시 4번이나 참가한 대회에서 길을 몰랐다니 참으로 어쩌구니가 없었지만

 

심지어 그 대회에 9번이나 참가한 주자 역시

앞에서 뛰니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따라 뛰었다고 하니

 

팔로우쉽 즉 추종성이 무서운 이유다.

 

이런 알바를 겪게되면

무엇보다 심리가 무너진다. 마라톤에서는 체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게 바로 의지력이다.

 

알바를 하게 되면 심리상태가 무너지는데 그 의지력 저하를

극복하는게 가장 급선무다.

 

 

 

<어설픈 런너>

 

 

 

"뛰자 뛰자 또 뛰자"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 한탄하고 누구를 원망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 역시 길을 들어서기 전에

미리 확인을 해야 했지만 추종성에 눈이 멀어 앞 그룹을 뒤따른 게 화근이었다.

 

꼴찌로 늘 결승점에 도착하는 어설픈 런너이기에

1시간 이상의 시간 소모는 이미 탈락을 의미하는 것과 같았다.

 

만회 하려면

오로지 뛰고 또 뛰는 거 외에는 어떠한 해법도 없었다.

 

 

 

 

 

 

그날 날씨가 매우 추웠다.

예상은 했지만, 새벽 나절 기온은 거의 겨울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4번의 순천만 도전이지만 여전히 길에 대한 기억은 떨어지고 있었다.

 

"뭔 고갯길이 이리도 많냐"

순천만 대회는 오르막 내리막이 쉼 없이 이어지는 고난의 대회다.

 

골반과 발등이 뜬금없이 아픈 바람에

내리막에서조차 제대로 뛰질 못했었다.

 

 

 

 

 

 

 

60km에서 70km 사이 잠이 쏟아져 식겁했었다.

아차 했으면 옆 배수로로 떨어질 뻔 했는데

 

갈지자 행보로 70km까지 가까스로 소화하고 났더니

그제야 조금 정신이 차려진다.

 

상사호의 어슴프레한 푸른 기운을 느끼며

90km까지는 내내 상사호의 둘레길을 걷는 구간이다.

 

이 상사호 둘레길은 얕은 언덕 길이 많아

뛰고 걷고를 내내 반복하면서 쉼없이 발걸음을 재촉했었다.

 

 

 


 

나는 지금까지 전례로 볼 때,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회복되는 후반 체력형이다.

 

하지만 이번 순천만 대회에선

저번 전주에서 같은 막판 질주 본능은 느껴보지 못했다.

 

힘이 없었다.

 

불과 일주일 전 지리산 야영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심했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초반 알바가 뼈아팠다.

 

 

 

 

 

그래도 어기적어기적

최선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

 

어느새 돋아난 일출에

따사로운 햇볕이 감도니 주자에게도 힘이 돋아난다.

 

드디어 90km 구간을 통과했다.

 

노랗고 빨갛게 익어가는

주렁주렁 달린 감들을 바라보며 가을 나절의 뜀박질이

이리도 행복했었나 여기며 즐거움 달림을 이어간 구간이라 하겠다.

 

 

 

 

 

 

어떤 대회든 마지막 구간은 늘 지루하고 힘들다.

직선의 지루함 그리고 지친 심신에서 오는 무력감.

 

사실 뛸 힘은 없었다.

그렇다고 아프지도 않았고 오히려 신체는 편안한 상태였었다.

 

그렇게 아팠던

골반과 발등의 통증도 어느새 사그라져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멀고 먼 여정의 종착지!

 

언제나 그렇지만

이 순간 만은 난 최고가 되고 환희로 벅차오른다.

 

초반, 포기할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나약한 나 자신을 다그쳐 결승점을 찍었다.

 

그게 마라톤이다.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 그때의 체력과 정신력만이 결코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승부는 그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극복하는 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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