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마라톤/마라톤대회 참여기

제3회전주순례길100km울트라마라톤대회

구상나무향기 2015. 10. 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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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억...꿰엑"

 

세 번이나 토악질해댄 몹쓸 놈의 컨디션이었다.

 

출발하기 전 먹는 음식물은 

힘의 원천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때론

발목을 잡고 늘어지게 하는 저주의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그래서 뛰기 전 부담없는 먹거리를 선호하는데

나름 조심했는데도 역시나 토악질을 해대고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다.

 

사실

딱히 뭘 잘 못 먹어 그러기 보다는 컨디션 때문이다.

 

물론 컨디션이 좋아서 뛴 날은 결단코 없을것이다.

컨디션은 늘 핑계다.

 

 

 

<전주 터미널>

 

 

 

전주대회 참여는 처음이다.

 

살고있는 지역에서 먼 탓도 있겠지만, 전라도 인근에서 벌어지는 대회가

그리 많지 않은 탓이기에 남도 여행 하기가 쉽지 않았다.

 

뛰어본바, 코스는 단조롭고 평이하며

풍경미는 다소 절제되어 볼거리 요소가 많은 대회는 아닌듯 하다.


사실 볼거리가 많은 것도 딴은 무의미.

오름과 내림이 없기에 정신 없이 뛰기엔 매우 적절한 코스맵.

 

어차피 대회가 주는 고생스러움은 사실 이 대회 저 대회 똑같다.

 

그건 그날의 내 컨디션과 정신력에 기인하는 결과물이지

대회의 코스하곤 하등의 관련이 없다.

 

 

 

 

 

 

"주자가 너무 없네"

 

벌써 한두 번도 아니고 겪어본 횟수만 수십 차례지만

그래도 주자라도 보이면 이 까만 밤에 외롭지는 않을 터.

 

참여자가 너무 적어 앞 뒤에

결승점 도착할 때까지 주자를 거의 만나질 못했다.

 

시꺼먼 저편 언덕 마루에 걸린

얼씨년스런 달만이 나의 동료였었다.

 

까만 국도변을 내내 혼자서 달려야만 했는데

그날 참여자는 불과 75명이었다.

 

어차피 마라톤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도 보이면 덜 외롭다.

 

 

 

 

 

 

 

몽블랑 트레킹 이후 3개월 만에 참여한 대회다.

몽블랑의 10일간 여행은 나를 상당히 지치게 하였고, 기력 회복에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했었다.

 

중간중간 대회가 있었지만,

대회 참여는 보류를 눌렀고, 결국 인제야 대회장에 출현하 게 된 것이다.

 

몽블랑 트레킹은 정말 힘들었고, 그 후유증은 오래갔었다.

 

 

 

<몽블랑 트레킹 중>

 

 

사실 기력 부족은 핑계다. 몽블랑 다녀온 지 3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기력 타령이겠는가.

 

언제나 그렇지만 핑곗거리는 늘 달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오늘 못 뛸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더워도 너무 더웠던 올 여름 나절.

그래도 기량 유지를 위해 틈틈이 새벽을 이용해 LSD를 실시했었다.

 

한 달 전, 50km를 뛰어내면서 나름 컨디션 조절에 신경을 기울였는데

다행히 기량은 줄어들지 않았다.

 

 

 

 

 

 

지루하디지루한 50km 구간을 통과하니

어둠은 더욱 짙어져 랜턴을 비춰도 제대로 보이질 않을 정도다.

 

짙은 어둠 속에 가려진 달은 제 빛을 상실했고,

어두운 국도 변 가로등은 간혹 켜질 정도다.

 

칠흑같은 어둠 속

 

어차피 혼자.

 

마라톤은 내가 결정 짖는다.

 

수백 명이든 수천 명이든

어차피 혼자고 항상 꼴찌였다.

 

그저 묵묵히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남의 다리 떼어내 붙이고 뛸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전주 시장>

 

 

"어서 가세요, 저는 포기할렵니다"

 

85km, 지친 동료가 결국 포기 선언을 하고

도중 중지한 지점이었다.

 

40km 이후부터 악착같이 페이스메이커로 끌고 왔는데, 보람이 없게 되었다.

마라톤은 늘 그렇다.

 

남이 억지로 끌고 간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다.

안될 때는 판단이 빨라야 한다.

 

 

 

 

 

 

그런데 시간이 문제였다.

85km 지점에서 제한시간은 정확히 2시간 남았었다.

 

15km를 2시간만에 뛰어 들어가기란 사실상 무리수다.

 

평소에야 문제 없을 시간대지만

체력이 바닥난 울트라마라톤에서의 후반부 질주는 지구력이 버텨주지 않으면

탈진이나 아차하면 부상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전력질주를 하지 않으면 그 시간안에 들어가기란 힘들기에

부상과 탈진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그때부터 정신없이 뛰었을 것이다.

앞만 보고 씩씩거리며 전력질주를 시도했는데,

 

이는 예전 광주대회 때, 그리고 포항대회 등 서너 번 경험이있기에

어느 정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물론 후반 질주가 실패한 예도 있었다.

탈진해서 겨우 몸을 이끌고 제한시간을 훌쩍 넘겨 결승점을 찍은 일도 있었다.

 

나름의 경험을 살려

신중하게 뛰고 또 뛰었다.

 

생각보다 쉬운 달림은 아니다. 극도로 지쳐있을 상황에서

행하는 전력질주는 신체에 다소 무리를 가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장코치>

 

 

이런 경우를 대비해 배낭 속에 초코바 2개를 갈무리했는데

정말 좋은 요깃거리가 되어주었다.

 

95km 지점에서 허기가 곧잘 오는데 이때 먹어주지 않으면

탈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오는 허기는 그냥 굶주림이 아니다.

 

별거 아닌 초코바 하나에 승패가 좌우된다.

그래서 준비는 언제나 중요하다.

 

 

 

 

 

 

"이제 5km 남았습니다. 힘내세요..."

 

자원봉사자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본다.

 

95km, 15:18

 

엄청나게 뛴 결과물이었다.

10km를 뛰어오는데 1시간 18분이 소요된 셈인데, 이건 초반 컨디션 좋을 때 페이스였다.

 

쉽게 뛰는 사람에게 있어서야 별 어렵지도 않은 일이 겠지만

나에겐 버거운 달림의 시간이었다.

 

 

 

 

 

 

 

남은 시간은 불과 42분

이제 5km가 남았다.

 

걷는다면 제한시간 초과로 실격이다.

무조건 뛰어야 한다.

 

초코바 하나를 입에 물고 남은 한 모금의 물을 마지막으로

배낭 속 먹거리를 모두 비웠다.

 

이젠 자원봉사자도 없다. 무조건 앞만 보고 뛸 시간이었고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뛰자 뛰자 또 뛰자"

 

 

 

 

 

 

"헉...헉..헉"

 

한참을 뛰다가 지쳐서 잠시 걸었더니

하천 변을 산책하던 아주머니가 말을 건넨다.

 

"어디까지 가세요"

"전주 운동장까지 갑니다"

"무슨 대회 하는 건가요?"

"울트라마라톤이요"

"그게 뭔데요?"

"100km 뛰는 겁니다 밤새도록 말이죠"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뒤를 잇는다.

"아이고..뭐 덜라고 그리 뛰당가요? 징하게 거시기허네"

 

대부분의 반응과 비슷했다.

노닥거릴 시간이 없어 짧은 답변을 뒤로하고 서둘러 앞서 뛰었다.

 

100km를 뛴다면 대게의 사람들은

위의 반응을 보인다.

 

"대단합니다." "힘내세요 화이팅"이란 말보다는

"뭐 때문에 그걸 뛰세요?"라는 반응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실

 

나도 왜 뛰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게 또 대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늘 하는 일일 뿐이다.

 

 

 

<마라톤은 묵묵히 뛰기만 하면 된다>

 

 

 

인대 통증은 감지되지 않았다.

아마도 넋놓고 뛰고 있는 현실에 그 통증마저 감춰진게 아닌지 싶다만

 

뛰고 나서도 후유증이 없는걸 보아서

그다지 무리한 달림은 아니였나 보다.

 

 

 

<주로 코스도>

 

 

"다리 3개를 지나 좌측으로 가면 됩니다."

아까 말을 걸었던 그 아주머니가 알려준 다리 갯수였다.

 

그런데 이미 3개를 지났는데도

전주운동장이 보이질 않는다.

 

"젠장 주로를 잘 못 들었나"

뛰면서 내내 걱정했었다. 시간은 5분을 채 남질 않았기에 여기서

길을 잘 못 들었다면 낭패다.

 

그때, 마침 주로 안내자의 모습이

저멀리서 반가히 보이고 있는게 아닌가.

 

어느듯 이 극한 달림의 종착지가 눈에 보이는

순간이었다.

 

감격하게 전주운동장을 휘감아 돌아더니

그제서야 결승점이다.

 

 

 

<저런 길을 밤새워 뛴다>

 

 

대회 공식 기록은

15:58:03

공식 마지막 주자였다.

 

사실 내 시계는 15:59:12를 기록했는데

제한시간 1분 또는 2분 남겨놓고 들어온 경우가 제법있다.

 

건 타임으로 실시하는 울트라마라톤이기에

나는 늘 맨 앞에서 출발한다.(총을 쏘면 출발하기에 앞과 뒤 출발시간이 같다)

 

그래야 1분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잘뛰어서 앞에 서 있는게 결코 아니다.

 

 

 

 

 

 

16시간이라는 긴 시간도 모자라

늘 1분에 쫒겨 결승점에 도착하는 헐랭이 뜀 꾼이기에

 

도착하는 순간은 늘 감격의 연속이다.

누구보다 더 감동하고 또 환희에 들뜨는지 모를 일이다.

 

실격의 순간을 뒤집고

극적으로 완주했을 때의 기쁨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포기할 때 하더라도

일단 최선은 다해보자

 

그러나

 

포기는 때론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때도 있다.

 

그래야

남은 시간을 더욱 쓰임새있게 쓸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안되는 걸 끙끙대며 억지로 끌고 갈 필요는 없다.

 

'안되는 건 안되는거다.'

 

멈춘다고 실패한게 아니다.

다시 뛰면 되는게 마라톤이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또한 마라톤 정신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비단 마라톤 정신으로 치열하게 살아갈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전력 질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어보자.

 

남들이 안되다고 해도

포기부터 하지는 말자 이말이다.

 

 

 

 

 

 

 

 

참, 사람들은 내 사진 보고 덩치가 꽤 커 보인다고 한다.

사이즈가 105는 될 거라고 다들 지레짐작하는데

 

사실 나 95사이즈 입는다. 

허리는 31이지만 허벅지 굵기 때문에 32를 입어 바지가 늘 헐렁하다.

 

처음 만난 사람들의 이구동성 한마디는 다 이거였다.

 

"우와...보기보다 날씬하시네요"

 

내가 도대체 왜 크게 보이는지 나로서도 모르겠다.

 

어때 사진 보니 내 덩치가 커 보이남?

 

 

 

<나 95 입는다고...>

 

 

각 구간별 시간

 

1:12 10km   

               1:25

2:37 20km

               1:32

4:09 30km

               1:38

5:47 40km

               1:41

7:28 50km

               2:03

9:31 60km

               1:49

11:19 70km

               1:46

13:05 80km

               1:44

14:39 90km

               1:19

15:58 1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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