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마라톤/마라톤대회 참여기

제4회세종울트라마라톤대회(100km)

구상나무향기 2015. 4. 1. 16:25
728x90

 

 

 

"젠장 이번 대회엔 전부 고수들만 나왔나?"

 

 

어슴푸레한 새벽녘.

금강이 굽이치는, 끝도 없어 보이는 길을 걷고 또 뛰는

헐랭이 뜀 꾼 하나가 나즉히 읇조린 독백이다.

 

앞을 봐도

그리고 뒤를 봐도

 

주자는 아무도 안 보인다.

 

오롯이 홀로 불빛을 반짝이며,

오늘 이 '고단한 행위'의 놀음만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조치원역>

 

 

이 정도 시간대면 대게 한두 명씩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어느 정도 긴장감을 유지시켜 줄 상대자들이 있는 게 보통인데

 

그날은 95킬로 지점까지 갔어도 이렇다 할 주자를 만나지 못했었다.

 

아마 50킬로 지점을 통과한 다음 ,

꽤나 주저롭게 걸었던 시간 때문일 것이다.

 

마라톤은 잠시라도 방심하면, 주자들을 놓치는 건 한순간이다.

 

 

 

 

 

 

60km~80km 사이에선 어김없이 졸음이 밀려왔었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

취보를 하면서 간신히 버티며 걷고 또 걸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졸음에 겨우면 뛰기란 버겁다.

 

눈은 거의 감다시피 해 앞만 보고 걸을 뿐이었다.

그러다 구덩이로 떨어질뻔 한 횟수만 서너번.

깜짝 깜짝 놀래지만, 그렇다고 졸음이 달아나진 않는다.

 

극한 졸음을 극복할 방법은 오로지 한가지.

참는거 외에는 방법이 없다.

 

 

 

 

 

나 자신을 독려하며

"참고 참고 또 참고 그리고 또 한번 참아라"를 외치고 또 외칠뿐이다.

 

잘뛰는 사람들은 도대체 졸음도 안느끼고 뛰는건지

정말 의문이다.

 

늘 이 헐랭이 주자를 괴롭히는 건 바로 졸음과의 전쟁이다.

 

고카페인 음료도 마셔보고 커피도 마셔보고

별짓(?)을 다해봐도 졸음은 어김없이 덫을 놓고 날 기다린다.

 

언제나 딱 그 시간대 그리고 그 거리대다.

마의 70킬로가 가장 혹한 시간인데

 

이때가 되면 거리도 안 줄어들고 졸음에 겨운 신체는

내내 통증과 메스꺼움 그리고 무력감을 동시에 방출시킨다.

 

포기의 마음이 울컥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180명 도전>

 

 

 

80킬로까지 지루하리 마치 지루했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젠 배고픔이 엄습한다.

 

세종대회는 무지원대회고

어떠한 지원도 없는 서바이벌을 지향하는 배고픈 대회다.

 

배낭 속 먹거리를 꺼내 오물거리니

한풀 허기짐이 사라지지만

 

곧 허기짐은 다시 엄습하리라

 

배고픔은 언제나 80킬로 이후부터 최고조로 달한다.

 

경험상 이때 제대로 먹지 못하면 탈진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늘 이때를 대비한 비상식을 배낭 속에 챙긴다.

 

이 때 배고픔은 여느 배고픔의 수준 그 이상이다.

단순한 배고픔이 아니라는 것이다.

 

 

 

 

 

 

 

87킬로 지점에 오렌지와 사과 하나를

떨춰놓고 왔었는데, 이는 돌아갈 때를 대비한 비상식이었다.

 

왕복 주로이기 때문에 무거움을 줄이고자

미리 주로에 숨겨놓은 것이다.

 

정말 잘한 일이었다.

사과와 오렌지는 나를 끝까지 뛰게 해준 멋진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나 같은 헐랭이 뜀꾼을 고수들과 비교하면 절대 안 된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간 가랑이 찢어진다는 격언을 늘 상기해야 한다.

 

나는 뱁새도 아니고 더더구나 황새도 아니다.

나는 나일뿐이다.

 

 

 

 

 

 

나 같은 하수들은 전략을 항상 준비해야 하는데,

그 나름의 준비가 사전에 비상식을 다람쥐 마냥 숨겨 놓은 행위였다.

 

물론

계획성 있는 시간 안배는 기본이다.

 

무작정 뛰는 게 아니다. 그 계획된 틀 속에서 뛰어야 하고 부족하면 더 힘을 내야 한다.

계획성 있게 소화 못 하면 결국 탈락이다.

 

잘 뛰는 사람이야 쏜살같이 뛰면 그만이지만

헐랭이 뜀꾼은 각 거리대와 시간대를 잘 소화해내야 한다.

 

 

 

 

 

 

 

80킬로 이후부터 내내 뛰고 또 뛰었다.

졸음이 가시니 활력은 점차로 회복되어 후반부터  힘차 게 뛸 수 있었다.

 

이게 바로 마라톤의 묘미다.

당장 죽을 것 같아도 그게 죽는게 아니고,

당장 쓰러질 것 같아도 그게 쓰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잠시간 신체가 휴식을 갈망할 때가 있을지라도

그 순간만 참으면 되는 것이다.

 

그게 마라톤이고 나아가 울트라마라톤의 묘미다.

 

80킬로 이후부터는

쉬지 않고 시계를 보며 걷고 또 뛰었다.

 

정말 먼 100킬로다.

 

그렇게 뛰고 걸었건만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드디어 완주>

 

 

 

90킬로 지점을 통과하니 남은 거리가 참으로 멀고도 멀다.

 

어느 대회던 남은 10킬로는 지루함의 극치를 이룬다.

신체의 안위가 사실 최고조로 지쳐있기 때문이다.

 

근육통은 온 몸을 잠식하지만, 절뚝이며 다리를 질질 끌고서라도

이 거리를 소화해내야 한다. 이젠 이 고통만 참으면 완주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항상 그랬다. 한번이라도 편히 결승점을 통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어렵고 힘들고

그리고 가슴 아픈 일이야 어찌 없을 것인가?

 

난 그걸 뛰면서 다 털어낸다.

 

그래서 내가 오늘도 뛰는 이유다.

뛰면, 치유되고 그리고 회복되기 때문이다.

 

고통이야 왜 없고

힘듬이야 왜 없겠는가

 

다들 지 멋에 사는거다.

 

 

 

 

 

<완주 똥폼>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