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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일반산행기

용지봉~정병산 왕복, 33km

by 구상나무향기 2020.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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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계곡 주차장, 5시30분 출발

 

 

 

즉흥적이었다.

 

갑자기 생각난 장거리 훈련의 발상.

선거날을 이용, 장거리 훈련을 하겠다는 계획은 뜬금없이 일어난 역마살의 발동이었다.

 

 

 

주차장에서 우측 오르막

 

 

 

용지봉~정병산 왕복한 전례는 2번.

 

2017년 2월, 12시간 26분

2018년 3월, 11시간 40분

 

두 번 모두 완주했지만 때는 날씨가 조금 시원했을 이른 봄이었다. 

 

선거날, 4월 15일.

 

조금 더운감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계절적으론 최적이라고 여겼고

더 더우면 훈련은 힘들듯하여 새벽밥 먹고 배낭을 메었다.

 

 

 

싱그러운 4월, 저 능선을 타고 올랐다.

 

 

 

 

역마살의 즉흥적 발동이었기에 사실 컨디션에 대한 준비 따위는 없었다.

 

대게 날짜를 정해 장거리 훈련을 할 요령이면 나름의

컨디션 조절을 하기도 하지만

 

그날, 막무가내로 들이댄 용지봉~정병산 왕복 산행.

기초체력을 자신하며 그렇게 용지봉에 선다.

 

 

 

 

용지봉의 정자

 

 

 

 

이곳에 서면 저 멀리 정병산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 뒤로 천주산은 꼭짓점으로만 조망되는 정말 먼 풍경.

저 정병산을 찍고 다시 돌아오면 된다.

 

사실 체력도 체력이지만 무엇보다 중요시되는 건 정신력.

 

돌아올 때, 나른한 정신력과 몸뚱이의 아우성에

중간에서 탈출할까 고민도 했었다.

 

악착같은 집념은

어디에서 샘솟는지 고비마다 의지를 다졌다.

 

 

 

 

저 우측 꼭짓점이 정병산

 

 

 

신정봉을 지나 대암산 그리고 비음산까지는

수훨하 게 지나간다.

 

대암산은 진달래로 유명한 산.

하지만 이미 다 지고 녹음의 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대암산에서 바라보는 싱그러운 녹음은

용지봉까지 물들였다. 바야흐로 최고의 시기다.

 

 

 

 

용지봉과 대암산 중간, 신정봉

 

 

대암산에서 비음산까지

아래로 뚝 떨어져 비음산까지 오름을 이어가야 한다.

 

이 구간, 갈 때 올 때 다 힘든 곳.

오르막이 제일 심한 구간이다. 갈 땐 몰라도 돌아올 땐 꽤나 지루한 곳이다.

 

 

 

 

 

 

비음산, 왕복 산행 시 의지의 깃대가 되는 곳이다.

이곳이 거의 중앙이기에 정신적으로 고비가 된다.

 

비음산에서 정병산까지는 6.3km.

2시간이 더 걸리는 먼 거리다.

 

하지만 비음산을 통과하면 가야 할 길

절반을 통과했다는 의미이기에 심리적으로 꽤 큰 의지가 된다.

 

 

 

비음산 갈림길, 정병산까지는 6.3km

 

 

노티재 갈림길.

 

이곳에서 진례 능선을 타고 진례까지 갈 수 있다.

거리는 약 10km 남짓. 작년 동지 때 나는 이 능선을 타고 진례까지 가는 진례 환종주를 했었다.

 

동네 뒷산 취급했다간 큰 코 다치는 빡신 산행의 길.

 

오늘은 정병산으로 치닫는다.

비음산에서 노티재 갈림길까진 다소 평지 구간.

 

하지만 여기서부터 정병산까지는

계단길을 오르며 긴 오르막을 즐겨야 한다.

 

 

 

 

노티재 갈림길

 

 

 

코로나 때문에 모든 대회는 취소나 연기가 되어버린 작금의 상황.

 

 

사실 지금 시기면 대회에 열중할 때다.

세종 대회를 치르고 한밭벌 대회에 맞춰 기량을 나눌 시기에

뭔 훈련이나 하고 있겠는가

 

역마살 달인의 에너지 소비가 마뜩잖을 지금.

 

이 지루하고도 한심한 산행을 하고 있는 건 전적으로 

코로나 '나비 효과'다.

 

 

 

 

 

 

 

정병산 도착.

 

 

 

장유계곡에서 출발한 지 5시간 40분 만에 정병산에 선다.

16km을 조금 넘어선 거리.

 

여기서 용지봉은 미세먼지와 오후 나절의 빛무리에 갇혀

아주 희미한 꼭짓점으로만 보일 뿐. 시력 나쁘면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이제 저 희미한 꼭짓점을 밟기 위해

다시 힘을 써야 한다.

 

위기는 나태함과 지루함에서 비롯되는 바

 

어디에서 힘을 얻겠는가 그건 전적으로 

정신력에서 비롯된 악착같은 '의지의 발로'다.

 

 

 

 

 

 

정병산까지의 기록

 

 

 

이미 두 번의 경험이 있지만

현실의 무료함과 고립감은 예전의 경험치와는 하등의 관련이 없었다.

 

지금은 지금이고 그때는 그때다.

관리하지 못한 정신력과 체력은 추억을 되뇌지만 현실은 고통이다.

 

"비음산까지만 가보자"

 

비음산만 넘으면 절반을 넘기는 구간이라 심리적으로 무료함이 다소는

줄어든다.

 

무료함이 몰려들지만  배낭 속 먹거리를 먹어가며

중간중간 의지를 북돋아 본다.

 

 

 

정병산에서 바라본 용지봉, 희미해서 보이지도 않는다.

 

 

 

 

다시 돌아온 노티재 갈림길

비음산까지 2.8km 남았다.

 

"힘을 내자 힘"

정병산에서 여기까지가 아마도 가장 무료했던 시기가 아니였나 싶다.

 

오후 나절, 따뜻한 햇살에 심신이 많이 힘들었을 구간.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의지를 불태운다.

 

"도대체 나는 왜이리 맨날 개고생을 사서 하는 거야?"

이런 의문이 드는 순간이었다.

 

 

 

 

 

 

 

지친 심신을 달래며 어렵사리 비음산을 통과.

그제야 저 앞, 대암산이 보인다.

 

대암산 여불떼기에 붙어있는 봉긋한 봉우리, 바로 용지봉.

 

이곳에서 뚝 떨어져 한껏 치고 올라야 되는 제법 난이도가

높은 구간이다.

 

어설픈 산꾼, 시험에 들게하는 막바지 구간.

 

 

 

정면 대암산, 높은 고도를 치고 올라야 된다. 왼쪽 봉우리가 용지봉.

 

 

 

대암산에서 용지봉까지는 끊임없는 오르막 구간이기에

막판 에너지를 다 쏟아 부어야 된다.

 

하지만 막상 용지봉에 도착했을 때, 기운은 되려 생생했었다.

 

 올 땐, 내리막이라 편했지만 오를 땐 곤역이다.

 그것도 심신이 지친 상태, 고역을 가중시키는 오르막의 험로다.

 

 

 

 

 

대암산에 도착하니 한숨이 절로 난다.

 

 

한발 한발 생각없이 오름짓을 하니 어느덧 대암산.

 

대암산에서 바라 보는 늦나절의 용지봉은

스산하면서도 조용하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늦은 오후 시간.

자켓을 입었다가 오름짓에 다시 벗었다.

 

이 시간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인사를 나눈다.

 

 

 

정면 신정봉, 그 뒤에 용지봉

 

 

 

"쉬었다 가세요"

 

신정봉에 도착했을 무렵.

어떤 아저씨의 호의 어린 정담이 온다.

 

"쉴 정신이 아니랍니다."

"정신이 없을수록 쉬어가야지요"

 

정병산에서 왕복 산행 중이란 걸 이야기해 주니

감탄사를 연발 내뱉는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한 건가?"

사실 내 울트라 런너들에게 있어 이 정도 훈련은 그리 과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늘 꼴찌로 완주하는 어설픈 마라토너다.

 

사실 해보면 별것도 아니다.

 

 

 

 

다시 돌아와서 본 풍경, 저 뒤 봉우리가 정병산

 

 

 

드디어 용지봉 도착, 여기까지 27.8km

10시간 35분이 걸렸다.

 

이제 장유계곡으로 내려가면 되는 시간.

어둑어둑 사위는 점차 땅거미가 내리 앉고 있었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하루에 두 번 오른 용지봉,

화려했던 진달래는 모두 지고 이제 녹음으로 물들었다.

 

 

용제봉은 옛지명. 지금은 용지봉이라 부른다.

http://changwon.grandculture.net/Contents?local=changwon&dataType=01&contents_id=GC02200025

 

 

 

 

 

용제봉이라 읽고 용지봉이라 쓴다.

 

 

 

마지막 이정표다.

이제 2.8km만 가면 이 고역의 행위는 끝이 난다.

 

장유계곡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구간인데

멧돼지도 만나고 날씨 좋을 때는 뱀도 자주 출몰하는 구간.

 

어둑해져 가는 숲속, 그래도 아직 등산객이 남았다.

 

 

 

 

 

 

드디어 장유계곡 주차장에 도착.

11시간 56분이라는 기록으로 마무리한다.

 

제작년보다 16분 늦었다.

 

기량은 늘지도 줄지도 않고 평이한 그자리.

나는 오늘 많이 늦을거라 우려했는데 그건 기우였다.

 

 

 

 

 

 

왜 이런 고역을 사서 하는지는 몰라도

어쨌던 해냈다는 뿌듯함은 내면의 자신감으로 귀결된다.

 

팔자가 역마살이라 집안에 가만히있는꼴을 못본다.

 

 

 

 

 

바야흐로 최고 절정의 계절.

코로나 사태 때문에 모든 대회가 취소되어 에너지 풀 곳이 없어

나름의 해소책으로 장거리 산행을 했지만

 

숲은 좋았다. 역녹음의 색과 화려한 야생화들 그리고 나른한 기온이

가져다 주는 행복감은

 

우리가 왜 숲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알려주는 대목.

 

떠나자 너무 좋을 시기다.

 

 

 

철쭉이 이제 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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