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산,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험한 산의 대표 격이다.
운문사에서 올라오는 어떤 등로도
쉬이 볼만한 곳은 없다.
쎄가 쏙 빠질 '혀 깨물' 구간이
한두 군데가 아닌 명불허전의 명소.
<운문사 주차장, 호거대가 보인다>
오늘 갈 곳은 소위 호거대능선과
범봉북릉이라 불리는 곳.
호거대를 시작 범봉이 목적지.
그리고 범봉에서 이어진 북릉을 타고 운문사로 내려 오는
원점회귀의 코스다.
<진달래가 절정이다>
만만찮은 구간임을 이미 알고 있었든 바.
새벽밥 먹고 호기 있게 도착한 산꾼의 독백.
"우와...까마득하네"
아침 음영에 시꺼멓기만 한 범봉의 실루엣.
나직이 읊조리는 결전의 독백이 휘감기는 이곳.
운문사 주차장이다.
"어...방음산이네, 호거대가 아니였어"
절정인 진달래, 춘풍을 즐기며 살방스럽게 오른 봉우리.
호거대가 아닌 방음산이었다.
주차장에서 호거대로 가면 30분
방음산에 올라 호거대까지 1시간 30분.
계획보다 1시간 더 걸은셈
입구에서 들머리 잘못 찾은 결과다.
"어쩌것어, 산에서 이래저래 얽키기 마련이지"
<첫 봉우리 방음산>
그렇게 방음산부터 올랐다.
호거대가 첫 봉우리란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만 까짓 거 좀 더 걸어보자.
길은 좋다.
여기서 호거대까진 30분 정도 걸린다.
<방음산에서 바라본 능선>
우린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바이러스 때문에
죽을 지경에 놓였다.
자영업자도 사업자, 근로자도 모두
IMF 수준의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
오늘 이렇게 즐기며 산행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 하루다.
첩첩산중 일망무제의 조망도 지금 내 마음 속 편안함이
없다면 눈에 들어오겠는가.
<호거대 쇠사슬>
날씨는 바야흐로 전형적인 봄의 기온
옷차림도 겨울옷을 벗고 봄옷으로 입고 나왔다.
산행하기 정말 좋은 시절.
그날, 땀방울도 흘리지 않을 적당한 기온과 바람을
보여준 최고의 날씨였다.
<호거대(장군봉)>
호거대는 장군봉이라 불린다.
이곳 지명에 호랑이와 얽힌 이름이 많은데
호거대 그리고 범봉,
맞은편 복호산 이름까지 모두 호랑이와 관련되어 있다.
그 옛날, 호랑이가 살아 그런 건지
아님 지형이 호랑이를 닮아 그런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장군봉이라 불리는 호거대>
장군봉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오른쪽 봉우리가 방음산.
가야할 길은 아득하니 음영에 가려
시꺼멓기만 하다.
범봉과 운문산 그리고 억산의 깨진바위는
내내 마주하면서 걷게 된다.
<오른쪽 봉우리가 방음산>
장군봉에서 바라보면
맞은편 복호산과 지룡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며
저 멀리 아득하게 솟은 가지산도 아련히 보인다.
"보이는 만큼 보인다" 했는데
20년 산꾼 경력, 어느 봉우리인 지 속속 다 보이지만
그런데 사실 그런 게 굳이 중요하겠는가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지식일 뿐이다.
딱봐도 지리산과 비견될 만한 코스다.
우락부락
등로는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고도를 높힌다.
범봉 도착까지 4시간 걸렸다.
<가야할 능선>
오른쪽에 대비지가 보인다.
대비사라는 절이 있어 대비지골 그리고 대비지라 부른다.
저 왼편 뒤로 장험한 깨진바위 억산도 보인다.
<대비지>
맞은편, 같은 능선인데도 '산(山)' '봉(峰)'으로 이름이 다르다.
같은 능선에 복호산과 지룡산 그리고
내원봉과 삼계봉이 함께 하고 있기에 의아할 수 있지만
"그걸 구분 짖는 기준은 없다."
<아따! 인물 좋다>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면 그게 산 이름이 되고 봉 이름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봉을 합쳐 놓은 곳'을 산이라 하지만
독립적인 봉을 산이라 부르기도 하기에 기준은 딱히 없다.
한발 한발 걸었더니
어느덧 방음산은 시야 끝에 걸린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이건 정말 명언이다.
'대한민국 국토의 70%는 산지'라는
명제를 이곳에 서면 뚜렷히 느낄 수 있다.
그야 말로 첩첩산중, 산그리매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첩첩산중, 호거대와 방음산이 아득하다>
춘풍 좋은 호시절
바이러스가 오든 말든
역마살 걸린 산꾼은 오늘도 산중 어느 구석에 서있을 뿐이다.
그게 할 일이고
그게 어찌 보면 숙명이 아닐지 싶다.
편하게 방구석에서 쉬기나 하고 있지
이게 뭔 고생인 지 모를 일이다.
"이놈의 팔자"
<아따! 아재 늠름하네>
범봉 가기 전, 벅차게 오른 서래봉이다.
峰
峯
같은 '봉'을 뜻하는 한자다.
'山'이 머리에 있는지 아님 옆에 있는지의 차이
의미는 없지만 한자는 조금 차이가 난다.
<서래봉>
서래봉을 지나면서부터 봉우리의 격은 확 차이가 난다.
아스라했던 범봉이 이제 손에 잡힐 듯 다가오지만
숨은 턱에 차고 허리는 뻐근하고 종아리는 아린다.
"도대체 왜이리 높냐"
오른쪽 삼지봉, 더 오른쪽은 깨진바위 억산,
왼쪽 범봉
그 중간 골짜기가 못안폭포가 있는 못안골.
젠장 난이도로 보면 지리산보다 높은듯 하다.
굴렁쇠바위다.
등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다 보면 능선에서 조망되는데
줌으로 길게 찍어본 것이다.
이 굴렁쇠바위로 내려가도 운문사로 갈 수 있다.
저 낀 바위가 매우 특색이 있는데
마치 지리산 노장대에 낀 바위와 흡사하다.
저 모습을 보고 굴렁쇠바위라 이름 지은 게 아닌가 싶다.
<굴렁쇠바위>
드디어 삼지봉과 범봉이 눈앞에 펼쳐진다.
못안골의 위용도 아득하다.
범봉 아래로 이어진 능선,
오늘 내가 가야할 범봉북릉이다.
폭포는 수원이 없어 빠짝 말라
폭포의 지세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삼지봉과 범봉
그리고 못안골
<오른쪽 삼지봉, 왼편 범봉>
범봉 아래
못안골의 못안폭포는 이미 말랐다.
최상층부라 수원이 없어 폭포의 지세를 느껴보려면
비 온 후나 가능할 듯싶다.
<범봉 아래 못안폭포, 빠짝 말랐다>
삼지봉 아래,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한참을 쉬었다.
드문드문 산꾼들이 지나 가긴 했지만
고요하고 적막한 시간.
따뜻한 오수, 산꾼의 망중한을
즐긴 나른한 오후였다.
삼지봉에서 범봉은 가깝다.
범봉(962m)이 삼지봉(904m)보다 약간 더 높은데
일련의 사람들이 범봉 정상에서 점심상을 펼치고 있기에
정상석을 찍진 못했다.
살며시 범봉 아래 범봉북릉으로 스며든다.
<범봉북릉에서 바라본 호거대능선>
범봉북릉.
이름 그대로 범봉에서 이어진 북쪽 능선이다.
가지산, 운문산도 운문사 방향은 모두 북릉이라 칭하는 데
가지북릉
운문북릉
범봉북릉
이쪽 방향이 북쪽이라 그런 듯.
범봉 아래 이어진 범봉북릉의 길은
뚜렷하며 험하진 않다.
흔한 밧줄 구간도 없다.
<범봉북릉의 길>
북릉에서 못안골로 빠지는 갈림길이
군데군데 있지만 말라버린
폭포 구경은 의미가 없을 듯하여 그대로 능선으로만 치닫는다.
금수탕?
갈림길이 나와 오룩스맵을 살피니
금수탕이란 곳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샘터가 있으면 금수샘이지 탕이 뭔가?
상당한 의문이었다.
거리도 가깝기에 찾아봤다.
그런데 절벽 아래
널찍한 동굴이 나오는 게 아닌가.
비바람도 너끈히 막을 수준의 동굴.
"우와 이런 곳에 동굴이"
절벽은 거대했고 아래는 낭떠러지
절묘하 게 그 안에 동굴이 형성되었는데 동굴 안쪽에 또 다른 동굴이 있다.
<동굴속 동굴>
그 안쪽 동굴에 사각형의 샘이 있다.
마치 사우나탕을 닮은 샘터.
그래서 탕이라 했는가 보다.
이름은 금수탕
물은 맑아 보여 살짝 뜨서 마셔뵜다.
<금수탕>
이물질은 없어 보이고 벌레는 전혀 없는
깔끔한 상태.
이런 곳에 이런 샘이 있을줄 생각도 못했다.
범봉북릉을 탄다면 꼭 들러보자.
<깔끔한 금수탕>
마셔보니 시원하고 달다.
전형적인 산중 석간수의 맛.
이런 물만 마시고 살면 신선될 수 있을 듯하다.
좁지만 텐트 하나 칠 공간은 나오기에
기도처를 찾는 사람에겐 딱 맞춤 공간이다.
<금수탕 물맛은 매우 좋았다.>
잠시간 시간을 보내고
다시 산행의 시간.
정신없이 아래로 아래로 고도를 낮추며
내려오니
천문지골과 못안골 계곡 합류 지점에 도달한다.
<천문지골 합류 지점>
이곳부터 길은 매우 좋은데
문수선원과 운문사까지 길은 평지와 같다.
거의 다 내려온 분위기.
긴장 속 산행은 드디어 끝을 맺는다.
<문수선원>
천문지골을 벗어나면
또 다른 큰 계곡을 만나는데 이 계곡이 바로 학심이골과 심심이골이 있는
운문천의 상류 계곡인 큰골이다.
이곳에서 잠시 신발을 벗어놓고 탁족을 해도
좋으리라
<운문천의 상류 큰골>
코로나 여파로 운문사를 찾는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했다.
코로나가 문화까지 바꿔 놓은 거.
운문사 참배는 나른한 몸상태라 생략한다.
운문사, 새벽예불 및 참배하러 서너 번 이상 찾은
익숙한 사찰이다.
<운문사>
운문사 인근 식당은 한산하다 못해 썰렁하다시피 했다.
주말이면 붐비던 인파는 싹 사라지고
운문사의 맛집들은
현상유지도 힘든 지경이란 주인장의 넋두리가 울린다.
<솔바람길>
미나리삼겹살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봄의 따스함과 산행의 뿌듯함을 만끽한다.
힘든 시간을 보낸 뒤 즐기는 한 줌 여유의 시간.
겪어 보지 않으면 얼마나 소중한 지 모를
낭만의 시간.
산꾼,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미나리삼겹살>
오늘 코스 살펴보자
운문사주차장~방음산~호거대~서래봉~삼지봉~범봉~범봉북릉~금수탕~문수선원~운문사주차장
거리는 15km
시간은 7시간 40분 남짓.
내려오면서 눈여겨 둔 천문지골중앙능선 + 운문북릉의 산길을
조만간 이어볼 요령이다.
거기 산세도 제법 험로다.
운문산 자락은 어딜 이어도 산세는 거칠고 험하다.
너무 더워지기 전, 다시 운문사를 찾을 수 있을까
"그리 힘든 곳을 왜 가냐"
물어볼지도 모르겠지만
산행은
힘들기 때문에 재미가 있는 것.
내가 힘들면서도 행복한 이유,
나의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은 '그런 곳에도' 걸려있기 때문이다.
땀과 고생, 그리고 행복.
내겐 그 자체가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이다.
<회사에 봄이 가득하다>
'산행기 > 일반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계리~계살피계곡~문복산~학대산~삼계리 (0) | 2020.04.20 |
---|---|
용지봉~정병산 왕복, 33km (0) | 2020.04.16 |
내원사계곡 입구~노전암 원점회귀 (0) | 2020.03.18 |
춘래불사춘, 천태산 산행(천태사~천태산~천태호) (0) | 2020.03.16 |
금강폭포~에베로릿지~단조샘~신불재 (0) | 2020.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