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뭔 계곡이 이리도 넓어"
영남알프스 산중에 이리 큰 계곡이
있을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칡밭골 내려올 때 만난 계곡은 사뭇 웅장했었다.
<표충사 주차장>
향로산.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산중 곳곳은 쓰러진 나무와 떨어진 낙엽으로
길 찾는데 제법 애를 써야 했는데
며칠 전 쏟아진 빗줄기에 계곡은 찰랑거리고
폭포는 쏟아져 일대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으니
때맞춘 적절한 입추의 산행이었다.
<들머리 풍경>
들머리는 표충사 가기 전
우측 시멘트 도로.
옛고개라 하는 곳으로 올라가는 다소
희미한 산길이다.
오룩스맵에 의존할 정도로
떨어진 낙엽은 길을 완전 묻어 버렸는데
오룩스맵이 없었다면
길은 오리무중. 아마도 감각으로 치고 올라야 했을 난감한 산행이었다.
<맞은편 매바위>
희미한 길을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
다시 길을 만났지만
잔돌밭을 지나니 길은 사라진다.
"아니 뭔 길이 이러냐"
다행스럽게 참나무 숲이라 험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
산죽과 잡목, 암벽으로 어울러진 지리산이라면
이미 혼이 나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긴 향로산의 어느 자락.
길은 보였다 말았다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힌다.
태풍이 낙엽을 훑어내 등산로를 다 덮어버렸기에
길은 아주 희미했었다.
<엄청 큰 굴참나무>
행여 능이가 있나 눈 크게 뜨고 살폈지만
버섯 따위는 보이질 않는다.
입구에서 버섯 따러 온 주민을 만났는데
"향로산 올가는 길 맞아요?"
하고 물었더니
"저짝으로 가시오"라는 퉁명스러운 답변이 돌아온다.
버섯 산지에 등산객이
반가울 리는 없을 터.
하지만 작은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버섯이 보일 리가 없다.
<간신히 도착한 옛고개>
입구에서 옛고개까지 2시간 30분이나 소요되었는데
1시간이면 오를 거리를 제법 뉘적거린 건
길 찾느라고 헤매 돌은 탓이었다.
의외로 습하고 후덥했던 날씨탓에
땀방울 제법 흘렸다.
<옛고개에서 향로산 방향>
향로산, 향로를 닮은 산이다.
어디서 바라 보면 향로를 닮아 그리
이름 지은 거라 하는데 당최 향로답게 생기진 않았다.
숲에선 숲이 보이지 않고 나무만 보이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멀리서 봐야 숲이 보이고 향로도 보이질 않겠는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하는데
우린 늘 손가락 끝만 바라 본다.
<향로산>
향로를 닮았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향로산에 서면
수미봉을 위시한 사자평이 아스라하 게 드러나는 천혜의 풍경을 선사한다.
맞은편 홍룡폭포와 층층폭포의 우렁찬 모습이
뚜렷하 게 보였는데
태풍 영향으로 물살이 거세져
멀리서도 폭포의 위세가 실감났었다.
<저멀리 보이는 사자평 고원>
정확히 3시간만에 도착한 향로산.
산안개가 짙게 드리워 어두웠지만
저멀리 신불산과 간월산의 실루엣은 짐작된다.
오늘, 그 두 봉우리엔 억새를 보러온
수많은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 향로산은
하산 종료할 때까지 단 한명의 등산객도 만나질 않았었다.
재약산과 천황산 역시
억새로 유명한 사자평 고원이 있기에 유명세가 남다르다.
하지만 이웃한 이 향로산은 볼거리가
없는 딴은 밋밋한 산.
향로산은 단풍이나 억새 같은 볼거리 요소가 거의 없는
오로지 산행에만 몰두하는 땀방울 전용 산행지다.
<가야할 길, 저 뒤로 희미한 신불산 간월산 능선>
한가한 산행의 시간.
라면도 끓여 먹고 천천히 쉬었다 엉덩이를 떨친다.
잡으러 오는 사람도
급한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산행은 한갓짐을 넘어 태평스럽다.
아직 오후 나절 햇볕은 무덥기만 했는데
밤낮의 시간엔 사뭇 춥다.
<산중 라면은 정말 맛이 좋다>
향로산에서 약간 벗어나면
백마산 갈림길이 나온다.
재약봉 방향으로 쭈욱 나가면
왼편으로 하산하는 길은 모두 표충사로 떨어지는 길들이다.
<백마산>
칡밭골, 학암폭포로 떨어지는 골짜기다.
표충사까지 5km.
제법 멀다.
사부 자기 걸어도 2시간 이상은 소요되는 제법 먼 여정의 길.
길은 제법 부드럽고 순하다.
급 내리막이 있는 것도 아니고
편안한 길을 보여준다.
칡밭골로 내려오면
본격적으로 계곡을 만나게 되는데
비가 없을 시기엔 건천으로 보이는 골짜기.
태풍 후,
지리산 깊은 산중에 온듯 물소리가 우렁차다.
<계곡에 물이 우렁차다>
군데군데 길이 끊겨
역시나 길 찾는데 제법 신경이 쓰였다.
물이 등산로를 아예 쓸어버려
흡사 숲 속에 빗자루질을 한듯한 모양새다.
거기에 낙엽까지 덥혀
길은 오리무중이었다.
<계곡이 깊었다>
그래도 길은 매우 유순하다.
힘들지도 험하지도 않은 여유있는 하산 길.
학암폭포 근처에선 물소리가 엄청났었다.
등산로에선 학암폭포로 내려서진 못하고
작전 도로에서 올라야 하는데 그땐 그걸 몰랐다.
지금 이런 물줄기라면
아마도 장관이었을 것인데 그걸 못보다니 아쉽다.
<오래된 고목>
이윽코 작전 도로를 만난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왼편에 학암폭포 들머리가 나오는데
도로에서 약 100m 정도 올라야 한다.
이 작전 도로를 따라가면
아침에 올랐던 바로 그 들머리다.
하지만
"임도는 사람 갈 길이 아니다"
라는 철학으로 표충사로 내려서는 등산로로 한껏 내달린다.
<이곳 아래 우측 들머리가 표충사>
우측 산길로 약 20여분을 내리 꼽으면
바로 표충사 뒷편 신작로다.
범람한 등산로 탓에 등산화와 양발을 벗고
물놀이를 즐기며 향로산 산행을 마무리한 그날의 산행이었다.
지은 죄가 너무 많아
참회 시간이 길듯하여 표충사 들러보는 건 생략했다.
<표충사 등산로>
전체적인 지도.
휴식시간 1시간 30분 포함
전체 7시간 50분 정도 걸렸다.
거리는 1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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