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에서 가장 험한 골짜기는 어디일까?"
비단 산야의 구석구석 모두를 다 둘러봤다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거친 암벽과 굴곡진 육봉, 산꾼의 심장을 고동치 게 만드는 곳.
바로 운문산 자락이라 말하고 싶다.
운문산 인근 범봉과 가지산 북릉의 거친 능선.
운문산 일대 자락에 솟은 거대한 암벽과 암릉의 압박감은
영남알프스 중 가장 으뜸이다.
앞전 범봉북릉을 타면서 운문산 자락에 솟아 오른 능선에 대한
호기심이 제법 많이 발동했었다.
언젠가 한 번 찾아 가리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지인의 요청에 냅다 발걸음을 돌린다.
사실 가지북릉을 타리라 계획했다 이미 전 주에 가지산을 올랐기에
머릿속 염원 코스, 운문북릉 루트에 대한 기대감으로 코스를 정해 버린 것.
"저긴 출입금지 구역이잖아"
동료의 걱정 어린 눈빛에 일체 동요 없이 그대로 계곡을 가로질러 쏜살같이 나아간다.
사리암 계곡 일대는 출입금지 구역.
하지만 초소가 있다 해도 감시자는 없다.
물론 감시자가 있어 막는다 하더라도 운문북릉을 타기 위한 루트는 군데군데 존재한다.
사실 문수선원에서 오르기로 했다가 주차할 곳이 마뜩잖아 사리암 주차장까지 오게 된 것.
자세한 설명까지 할 수 없지만
사리암 계곡에서 배넘이재 가는 길, 우측에 리본이 붙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문수선원에서
올라오는 능선과 만나는 지능선 자락이다.
이 지능선은 두 자락인데 모두 사리암 계곡까지 내려가지만
하나는 사리암 계곡
하나는 심심이학심이골합수점으로 떨어진다.
어느 능선으로 붙어도 문수선원에서 올라오는 능선과 합쳐지게 된다.
우린 그중 계곡에서 올라가는 능선을 타고 올랐다.
시작부터 끝까지 오르막의 연속.
굴곡의 높이만 다를 뿐 이곳에선 편한 능선길은 없다.
운문북릉, 가지북릉, 범봉북릉
모두 북쪽으로 난 능선이라 붙여진 이름.
역시나 아침부터 오후 늦시간까지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 자락.
흔히 북사면이라 말하는 추운 곳, 바로 북릉이다.
문수선원에서 올라오는 능선과 거의 만나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위에서 누군가가 내려온다. 등산객이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이른 아침 시간에 뜬금없이 나타난 등산객. 약초꾼이었나 싶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성이 아닌가.
아니 혼자서 이 시간에 여기 왜 있는 거야?
만일 이 여성이 이 시간에 여기까지 왔다면
아마도 새벽같이 렌턴 비추고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난 시간, 그 시간이 오전 8시였기 때문.
이미 운문북릉의 시작 초입에 있었던 우리를 생각하면 이분은 이미 운문북릉을 다 타고 내려왔다는 뜻.
"상양 마을에서 시작했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헉~
상양 마을이라니 바로 맞은편 얼음골에 있는 마을.
그러니까 이미 상양 마을에서 운문산을 올라 이 운문북릉의 기나긴 능선을 다 타고 내려왔다는 사실.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가지북릉을 타고 가지산에서 올라 다시 상양 마을로 내려가요"
이 운문북릉을 타고 내려가 가지북릉으로 올라 돌아간다는 사실.
즉 하산 완료해 다시 거친 가지북릉을 타고 오른다는 거.
여성의 몸과 강단으로 이 일을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동료와 함께 내내 이 여성에 대한 대단함, 체력과 의지력에 대한 찬사를
했더랬다.
새벽에 렌턴 비추고 산행하기도 벅찬데
하물며 사람이 거의 다니질 않는 이런 험한 골짜기에 혼자서 거친 산행을 즐기다니
"혹시 귀신 아닐까"
우린 이런 생각까지 했더랬다.
궁금한 여성의 정체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엄지 척'을 외치는 대단한 여성이었다.
헬기장에서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쉬어 본다.
손에 잡힐 듯 운문산 자락은 봉긋하 게 솟았고
금세 다가갈 듯 지척으로 다가온다.
머리 위, 독수리바위가 고압적으로 다가오는 곳.
이곳에서부터 풍경은 압권이다.
독수리바위 전망대에서 본 위쪽 소머리바위 아래 큰 바위가 하마바위다.
길이 없는 듯 하지만 저쪽에도 길은 열려있다.
이쪽 능선 자락은 한눈에 봐도 험하고 거칠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
쉽게 도전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딱 좋은 곳.
지리산 못지않는 거친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기에 산행을 만만찮게 생각해서는 안될 곳이다.
독수리바위.
운문북릉에서 가장 큰 바위.
당장이라도 독수리가 되어 날갯짓을 할 것 같은 모양새는 아니다.
멀리서 보면 독수리 인지 몰라도 되려 가까이서 보면 독수리의 부리를 닮았다.
이 바위는 어느 곳에서 보더라도
웅장한 몸집을 자랑하는 거대한 바위.
중앙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서 봐도 독보적으로 우람한 체격을 자랑하는 바위다.
운문북릉에서 가장 큰 하이라이트이자 최고의 조망대.
운문북릉과 중앙능선은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르기가 벅찬 루트.
천 길 단애 끝에 서 산야의 아스라한 풍경을 조망하기 좋은 곳.
딱 이곳들이다.
3시간 40여분 만에 도착한 운문산.
허벅지와 심장은 의외로 조용했고 환상적인 풍경에 가슴은 격정을 떨었다.
헉헉 거리며 열심히 거친 숨을 몰아 쉰 한겨울의 서정.
땀방울이 흐를 즈음에 운문산에 선다.
해발고도만으로 그 산이 품고 있을 거친면을 판단하기란 어렵다.
사실 고산의 고도 치고는 그리 높은 편은 아닌 운문산.
하지만 운문산이 거느리고 있는 능선의 품격은 악산 중 최고의 으뜸이다.
어디를 접근하더라도 운문산은 만만찮은 곳이 아니다.
석골사에서 가지산에서 그리고 운문사에서 올라도 거친 곳.
특히나 운문사에서 올라오는 능선 자락의 험함은 이곳 운문북릉뿐만 아니라
명불허전의 끝판왕은 단연코 천문지골중앙능선이다.
이색적인 이름 '외로운릿지'.
능선 자락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있는 큰 암릉.
짧다. 그래서 외로운릿지라 이름 붙여진 구간.
범봉 가는 길, 이 외로운릿지 바위 끝자락에 중앙 능선이 솟았다.
이름하여 '천문지골중앙능선.'
저 앞 끝 아득한 골짜기가 바로 천문지골,
범봉과 운문산 중앙에 솟았다고 하여 중앙 능선이다.
올라온다면 '매우' 고생길.
내려가도 고생길
어찌 되었던 이 천문지골중앙능선은 정말 꾼 중에 꾼만 선택하길 추천한다.
초보가 붙었다간 아차 하면 119 신세.
허벅지 근육이 부족하거나 강단이 없다면 이곳에서 꼼짝달싹 못할 정도의
수직 직벽과 날 선 오름과 내림의 끝판왕을 겪게 될 것이다.
특히나 이쪽 구간을 오름으로 선택했다면 더욱더 고역이기에
능선에 올라온다 하더라도 내려갈 에너지가 남을 가닥이 없을 터.
그래서 초보는 이 중앙 능선은 절대 피해야 할 곳이다.
단체 산행으로도 피해야 할 곳.
여성 산악인이라도 이곳은 후덜후덜 다리가 떨릴 구간이 많아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후덜후덜 내려가는 길은 거의 수직의 날 선 구간들.
"이 길을 올라왔다면 절단입니다. 내려가길 잘했네요"
이런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를 정도로 이 구간의 경사도는 거의 수직에 가깝다.
겨우 한발 한발 내디뎌 내리 서니 한숨이 절로 난다.
쉬며 돌아보니
엄청난 직벽의 큰 바위가 고압적으로 서 있는 게 아닌가.
바로 저 바위를 타고 내려왔더니
시각적으로 봐도 정말 아찔한 산행 장소다.
우회로는 없다.
그대로 타고 내려와야 하고 반대로는 저 바위를 타고 올라야 봉우리를 넘는다.
군데군데 표지기가 붙어 길 찾기란 어렵지 않지만
길은 어렵다.
한발 한발 조심히 천천히 내려가야 할 중앙 능선의 거친 길.
하지만 풍경은 압도적이다.
폰의 넓은 화각에도 다 다루지 못할 엄청난 산수화가 펼쳐진다.
오전에 올랐던 운문북릉의 길이 적나라하 게 드러나며
코앞에 드러나는 우두암 능선.
그리고 저 멀리 가지산의 품격과 가지북릉의 암벽.
맞은편 범봉과 어우러진 수많은 바위 군락지.
이제 운문사 자락의 복호산과 지룡산
그리고 사리암의 삼계봉까지 끝 간 데 없이 조망되는 천혜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천문지골, 뚝 떨어져 내려오니 표지기도 없는 깊은 계곡이 나타난다.
바로 산 위 꼭대기에서 아스라히 내려다 봤을 때
길고 긴 바로 그 협곡, 바로 천문지골이다.
문수선원에서 이어진 능선이
차단막 역할을 해 골짜기 이름을 나눠 놓았다.
그 능선을 기점으로 나뉘어진 학심이골과 천문지골.
여기서는 학심이골은 보이지 않는다.
천문지골,
범봉과 중앙능선 그리고 운문북릉으로 이어진 수많은 능선을 거느린 천혜의 골짜기다.
천문지골에 떨어져 내려오니
그제야 길은 수더분하 게 바뀐다.
거친 능선 길을 타고 내려왔더니 무릎이 욱신 거릴 정도.
하지만 천문지골의 계곡 길 또한 그리 산객을 달가워 하지 않는 모양새다.
한두 차례 불어 닥친 돌풍이 이곳 등로를 싹 지워버렸다.
그 위에 거친 돌과 너덜만 있을 뿐. 길의 흔적은 보이질 않는다.
거친 길들을 건너고 자갈 길을 걸어 겨우 도착한 문수선원.
이제 하산 종료한 시점이다.
이곳 문수선원에서 이어진 능선을 타려 했다가 사리암 계곡에서 올라
산행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그게 차라리 더 나았다는 후문.
왜냐하면 이 문수선원에서 이어진 능선을 타고 운문북릉을 이었다면 제대로 고생했을 긴 능선이기 때문이다.
다시 사리암 주차장에 도착하니
해는 벌써 서산으로 넘어가고 어둑어둑 해져있었다.
코스: 사리암주차장~사리암계곡 지능선~운문북릉~운문산~천문지골중앙능선~천문지골~문수선원~사리암주차장
대략 13km, 8시간 걸렸다.
점심 먹느라 약 30분 정도 쉬었고 거의 쉬지 않았다.
초보는 절대 불가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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