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품은 산(含月山.함월산), 신라 때 세운 천년 고찰 기림사 뒤편
평평하고 넓직하 게 솟은 봉우리가 바로 함월산이다.
함월산, 골굴사와 기림사 같은 경주에서도 유서 깊은 천년사찰을 품은 명산.
추령을 사이에 두고 경주국립공원 토함산지구에 속한다.
신라 신문왕이 올랐다는 호국행차길(소위 왕의 길)이 기림사에서 용연폭포를 지나
수렛재를 통해 맞은편 모차골까지 이어진다.
왕의길은 동해의 용이 되어 죽어서도 신라를 지키고자 한 문무왕의 장례 길이며, 그의 아들 신문왕이
부왕을 추모하기 위해 대왕암으로 행차하던 길이기도 하다.
왕의 길은 호젓한 산길이라 사부 자기 걷기에 아주 좋다.
기림사에서 작은함월산을 통해 호미지맥으로 가고자 한다면
기림사 옆 감로암을 거쳐야 하는데
기림사 입구에서 우측 계곡으로 난 길로 들어서면 된다.
바로 이 골짜기가 도통골.
왕의 길과 용연폭포는 사실 관심에 없었고
호미지맥을 따라 함월산을 한 바퀴 그려 보리란 생각이었다.
"오늘 좀 걸어볼까"
걷기의 몰아일체, 아무런 생각 없이 걷고 또 걸어보는 게
그 재미가 아니겠는가.
호젓한 숲의 길을 넋 놓고 걷다 보면 그게 바로 힐링.
초순에 내연지맥
이번 주엔 호미지맥을 통해 걷고자 하는 욕망을 해소시키려 역마살 달인은
오늘 또 배낭을 메었다.
"이쪽은 등산로가 없는데요"
다소 늦은 시각, 기림사 수목장을 지나고 있으니
마침 막 장례를 치르고 내려오는 스님이 일러 주신다.
합장만 하곤 아무런 소리 없이 스쳐 지나간다.
"저 스님은 등산은 안 하나 보네"
이곳에서 이어진 등산로가 반질반질하게 나져 있기 때문이다.
하기사 기림사 인근 산자락엔 이정표가 전혀 없다.
별도의 시그널도 없기 때문에
등산로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꾼들만 알 뿐
스님들 조차 "이곳에 등산로가 있나?" 할 수준이다.
능선에 올라도 마찬가지. 호미지맥과 기림사 및 다른 곳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엔
어떠한 이정표도 없다.
인근 포항의 동대산과 내연산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갈림길의 내연지맥엔
아주 친절하게도 이정표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것과는 완전 정반대의 풍경.
수목장을 지나 능선에 접어드니
오르막은 점차 고도를 높인다.
그러다 어느덧 올라온 함월산(?)
"엥.. 함월산이 왜 여기서 나와"
함월산은 기림사 좌측 편 높은 봉우리인데 뜬금없이 이곳에 함월산 정상석이 떡 나타나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이곳은 작은함월산으로 표기하고 있고
지도엔 함월산 498 표지석으로 구분해놨다.
여긴 함월산이 아니다.
진짜 함월산은 맞은편 평평하게 이어진 봉우리다.
함월산은 584m.
이곳보다 고도 86m가량 차이가 난다.
호미지맥에서 기림사로 가는 길은 다소 찾기가 까다롭다.
갈림길엔 어떠한 이정표나 시그널이 없기에
대략의 감으로 찾아들어야 한다.
어설픈 지도만 보고서는 아차 하면 어먼 곳으로 빠져들기 딱 좋은 곳.
호미지맥에서 작은함월산과 기림사로 갈려면
능선에서 두 번의 갈림길을 통과해야 된다.
능선에 도착하니 그제야 호미지맥과 연결된다.
우측으로 가면 성황재로 가는 호미지맥.
좌틀해야 함월산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부터는 시경계가 뚜렷하다.
좌측은 경주.
우측은 포항이다.
호미지맥의 길은 뚜렷하고 짙으며
수풀은 우거져 햇볕이 들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다.
다만 길에 대한 정비는 되어 있지 않으며
역시나 이정표는 없다.
곳곳에 사태 지역이 있어 걷기에 조심해야 할 구간도 더러 있어
집중해야 할 코스다.
특정 구간은 산사태로 매우 위험한 곳이다.
"이상한데 왜 자꾸 떨어지지"
방향은 아래로 향하면서
보이질 않아야 할 함월산이 우측에 보이는 게 아닌가.
그제야
지도를 보니 갈림길이 있었나 본데 거기서 좌측으로 틀어 버린 듯하다.
부지불식간에 나타난 갈림길.
그리고 샛길로 빠져버린 계획.
뚜렷한 길이 있어 그게 당연히 함월산 가는 길인 줄 알고
걸었는데 알고 보니 도통골로 떨어지는 등로였다.
도통골로 내려서는 초반은 매우 뚜렷했었다.
"길이 좋은데 그대로 내려가자" 할 정도였으니
희미했으면 알바를 했더라도 다시 되돌아 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길은 오룩스 맵에도 나오지 않는 길.
그래서 좀 불안했지만 워낙 길이 뚜렷했기에 이 길을 믿고 그대로 내려서기로 했다.
계곡에 도착하니 길은 사라졌다.
"뭐야 길이 어디 갔어"
온갖 잡목과 사초 그리고 계곡이 막아선 길.
낭패로 다가온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직관의 눈으로 이리저리 길을 살피고
수풀을 헤집고 겨우 찾아드니 표지기가 보이고 길도 보인다.
수풀은 허리까지 차 있어 길을 내기가 버거웠고
온갖 가시덤불과 잡목으로 긴 옷을 입었는데도 생채기 투성이었다.
길은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이리저리 개울을 서너 번 건너면서 이어진다.
이곳에 마을이 존재했는지
터가 군데군데 나타난다.
바로 사동 마을.
지도에 '사동'이라고 표시된 바로 그곳이다.
이젠 사람이 떠난 지 오래되었고 그곳은 세월에 묻혀 수풀과 잡목으로
심지어 길을 가려버릴 정도가 되어 버렸다.
세월의 무상함.
도통골 상류부의 길은 매우 희미해 여름 나절 수풀을 헤집고 걸어 다니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젠장 아까 그대로 돌아갈 걸"
이런 후회를 내려오면서 내내 했었다.
도통골 상류는 제법 넓었다.
개울을 이리저리 서너 차례 건너는 모양새가
저번에 산행했던 동대산 경방골과 매우 닮았다.
시간은 능선에서 함월산을 통해 하산한 것보다
도통골로 내려오는 게 훨씬 더 많이 소요된다. 길이 까탈스럽다.
폐가가 있다고 하지만
이미 모두 쓰러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시절 사람들이 다녔을 법한
희미한 길만이 사람 흔적을 보여주는 도통골이다.
장마철, 폭우로 인해 물이 제법 불었다.
그런데도 개울 건너는 데는 문제가 없을 정도. 아마도 그리 수량이 풍부한 계곡은 아닌 모양이다.
이리저리 첨벙거리며 서너 번 건너뛰면서
길을 찾으면 된다.
무엇보다 옛 마을터의 수북이 자란 풀숲이 문제.
길을 막아 설 정도의 강력한 풀들이 자라고 있었고
풀숲 아래 숨어 있을 당황스러운 생명체들 때문에 신경이 곧두 선 상태다.
뱀은 이런 곳을 좋아하니
스틱을 탁탁 치면서 내내 소리를 내 경계를 내며 걸었다.
이곳이 마을터였음을 알려주는 큰 감나무.
지도상에 독가촌 감나무라 표시된 바로 그 나무다.
마을은 사라지고 감나무만 덩그러니 남았다.
계곡을 벗어나니 더 강한 풀들이 길을 막는다.
"젠장 계곡보다 풀숲 헤치는 게 더 힘드냐"
온갖 잡풀과 억새들 그리고 가시덤불이 합심해 지나가는 길손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게 아닌가.
겨우 겨우 풀숲을 헤치고 벗어나니 뜬금없이 집 한 채가 나오는 게 아닌가.
"집이 아니고 창고네"
풀숲을 헤치고 내려선 언덕, 집으로 보였는데 다가 가니 창고였다.
억새로 무성한 언덕배기, 아직도 풀숲엔 고사리가 무성했는데
봄철, 고사리를 재배하기 위해 만든 창고가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여기까지 차길이 열려있어 이젠 편안한 길이다.
지나온 길에 비하면 이제부터 고속도로 수준.
함월산에서 내려오는 갈림길에 서니
길은 정말 호젓하 게 바뀐다.
모차골과 수렛재는 함월산 방면으로
이곳의 반대편 골짜기다.
바로 신문왕 호국행차길(왕의 길).
왕의 길은 모차골~용연폭포까지 4km 구간.
용연폭포를 지나 기림사까지는 아주 수훨하다
널찍한 임도, 기림사 주차장 0.9km 입간판이 나오는 곳.
거기서 직진하면 기림사 경내.
주차장으로 가면 감로암을 지나 그대로 산문 입구의 주차장으로 나온다.
총 12.4km
6시간 걸렸다.
코스: 기림사 감로암~수목장~작은함월산~호미지맥~사동 갈림길~사동~도통골~기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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