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산 가자"라는
즉흥적인 제안에 나는 바로 딴지를 걸었다.
"거긴 여러 번 갔어, 다른데 좀 가자"
딴은 내연산에 대한 여러 차례 경험을 이유로 포항 근교의 다른 산을 찾아보자는
격한 '울림의 소리'로 항변하니
코스 변경에 대한 건의가 받아들여졌다.
"니가 알아서 찾아봐"
그럼
"동대산 가자"
동대산은 옥계유원지에 위치한 여름철 계곡 산행과 백패킹의 명소.
주말, 포항과 영덕의 경계를 이루며
개발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은
깊은 계곡이 숨어 있는 동대산(東大山·791.3m)을 찾았다.
동대산 산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곡 산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방골로 올라 물침이골을 거쳐 동대산 정상을 찍고,
수더분한 내연지맥의 산길을 따라가다 경방골로 다시 내려오는 코스
여름, 최고의 계곡 산행 루트다.
큰 비라도 왔다면 계곡물을 건너기 어려워 등산화를 신은채
계곡물에 몸을 담궈야 하는 시원한 코스다.
계곡 산행의 대표 격은 삼척 응봉산 용소골(덕풍계곡)이 제일 유명하다.
등산화를 신고 물길을 건너고 옷을 입은 채로 계곡물에 덤벙 몸을 담그는
"계곡 속으로..."을 외치며 물길과 함께 하는 계곡 트레킹의 명소.
몇 해 전에 용소골을 산행 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 재미를 추억한다.
이 동대산 역시 그 비슷한 재미의 형태다.
40여분 동안
내내 개울을 이리저리 건너는 데 이때 비가 많이 왔거나 하면
등산화를 신고서는 건널 수 없다.
수시로 벗기도 어렵고 그냥 그대로 건너야 하기에 이곳 산행 시 등산화가 젖는 건
감수해야 한다. 물론 비가 많이 왔을 때 말이다.
잠시간 산행하니 평평한 넓은 터에 맑은 징담이 드러난다.
여기가 호박소.
넓은 터에 쉬기 좋다고 여겼는데
아니나 다를까 하산할 때 이미 텐트 여러 동이 형성되고 망중한을 즐기려는
야영족이 이미 선점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여기까지 40여분.
경방골이라고 불리는 계곡과 물침이골의 갈림길.
비룡폭포 길을 통해 내연지맥(바데산)의 능선으로 붙을 수 있는 길과
동대산으로 바로 올라가는 물침이골의 갈림길이다.
동대산으로 오르기 위해 물침이골로 향한다.
아직까지 오르막은 없다. 순순한 계곡 트레킹의 한갓짓 산행.
경방 폭포.
등산로 왼편에 살짝 드러나는 폭포의 줄기.
비라도 시원하 게 왔음 장관을 보여줄 그런 폭포지만
미약한 물줄기라 아쉽다.
이끼가 가득해 태곳적 모습을 간직한 원시적인 폭포다.
계곡길은 상당히 부드럽다.
"이제 오르막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
물침이골은 제법 유순하고 부드러워 동대산 산행은 계곡 산행의
전형을 보여주는 그런 산이다.
사부 자기, 녹음과 물소리 그리고 햇볕을 즐기며
맑은 징담 속에 발을 담그며 쉴 수 있는 그런 동대산이다.
물침이골 최상단부에 위치한 육단폭포.
6개의 폭포가 연달이 쏟아진다고 하는데
사실 좀 침소봉대의 과장이고
폭포라고 표현하기가 좀 민망한 물줄기가 여섯 개 이어진다.
대충 그러려니 하자.
뭐 비룡폭포라고 해도 이름 한 번 '거창'하게 지었구나 싶을 정도다.
다 그런 거다.
점차로 고도로 올리며 산길은
숲으로 변한다.
땀방울이 점차로 산꾼의 등허리를 적실 즈음이다.
드디어 계곡 끝 지점에 도착하고
이제부터 심장 알피엠을 올릴 급격한 오르막 구간.
하지만 물침이골이 깊기에 능선으로 오르는 오름짓 높이가
그리 길지가 않다.
한숨 내숨 들이쉬며 천천히 올라도 30여분이면 능선에 도착한다.
땀방울이 허리를 타고 동글동글 흐를 때쯤
드디어 능선에 선다.
지도를 보면 능선이 두 가닥이다.
물침이골에서 올라와 동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능선은 짧은데 첫째 능선이라 한다)
바데산에서 내연산으로 이어지는 내연지맥의 긴 능선.
두 가닥 능선이 이 협곡을 감싸고 있는 형태.
하나의 능선을 넘으면 맞은편 능선이 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사실 나는 잘 몰랐다.
"어떻게 원점회귀를 했다는 거지"
선답자의 기록 속에서 나름 의아해했는데
알고 보니 동대산 뒤편으로 더 기다란 능선이 있는 게 아닌가.
장마의 후덥한 시기, 능선 터럭은 구름에 가려 을씨년스럽다.
동대산 정상은
골짜기에서 올라온 '첫째 능선'에서 그리 멀지 않다. 불과 30여분 거리.
동해가 보인다고 해 동대산이라고 하는데
온통 잡목에 가려 사방이 막힌 봉우리다.
고 조은산님의 블로거에서 가져온 사진
잡목이 없으면 저렇게 동해 바다가 보인다.
오룩스맵에 따르면 정상에서 물침이골로 내려가는 능선이 있는데
길이 매우 희미해 안전을 위해 포기하고 말았다.
구태여 희미한 길을 갈 이유는 없었다.
뚜렷했으면 아마도 그리로 갔을 터.
정상에서 허기를 채우고 서둘러 엉덩이를 떨춘다.
하산은 직진해 5분 정도 가면 나오는 ‘주차장(3.2㎞)·내연산(4.2㎞)’ 사거리에서
왼쪽 주차장 방향으로 꺾는다.
왼쪽이 바데산 방향이며 포항과 영덕의 경계이자 내연지맥 길이다.
이정표의 ‘주차장’은 영덕군 남정면 쟁암리 쪽이니
그리로 하산 하면 반대 방향이다.
표지목 주차장 방향으로 가다 보면 곧 바데산 이정표가 나온다.
역시나 쟁암리 갈림길에 서니
바데산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4.1km, 1시간 30분이라고 하는데
길이 무척 좋아
사부 자기 걷기 너무 좋은 길이다. 오름도 내림도 없는 평탄한 산책길.
비룡폭포 갈림길까지
거리에 비해 시간은 그리 걸리지 않는다. 길이 너무 좋기 때문.
바데산 오르기 직전까지 길은 아주 좋다.
바데산~동대산~내연산
이 봉우리들의 산군을 내연지맥이라고 하는 건 처음 알았다.
이번 동대산 산행의 계기가 아니었으면 내연지맥이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향로봉 내연산 동대산 바데산을 거쳐 북서진하며 오십천이 바다로 들어가는 영덕군 강구면 강구항에서 42.8km의 산줄기를 마감한다"
출처: https://hansemm.tistory.com/124 [조은산]
내연지맥을 검색하니 고 조은산님의 블로거가
나오는 게 아닌가. 이렇게 또 조은산님의 블로거로 들어가 한참을 추억 놀이한다.
늘 이런 식이다. 언제나 잊혀질러나
역시 자타공인 죽어서도 최고의 산꾼, 조은산이다.
이곳은 첫번째 나오는 비룡폭포 갈림길인데
맞은편 다른 말뚝엔 이곳은 위험하다고 진입금지라 적어놨다.
정상적인 길은 조금 더 가서 바데산 오름 직전에
비룡폭포 갈림길이 또 나온다.
조망터에 이르니
경방골의 험한 골짜기가 산꾼을 압도한다.
어마어마한 산그리매의 풍경 속, 대한민국 국토의 70%가 산지라는
실체를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예전 백암산에 올랐다가 이런 풍경을 보며 감탄을 했었는데
영덕이나 강원도, 어떤 산에 올라도 첩첩산중의 산그리매의 격동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데산에 오를까 매우 고심을 했었다.
바데산은 순수 우리말인데
'바다와 해'를 뜬한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이 이곳에 머물러
그의 호인 바다와 달을 일컬어 바달기, 바들기라 부르다 바데산이 되었다 한다.
동대산에서 오는 길이면 바데산은 제법 높고 험해 보인다.
격한 오름짓을 해볼까? 바로 비룡폭포로 내려갈까? 짐짓 갈등을 했더랬다.
바데산, 눈으로 보면 제법 높아 보인다.
바데산에서 좌측 능선을 타면 다시 옥계교(진교 근처)로 내려오는 원점회귀가 되는데
이럴 경우 2.5km의 칼날 능선을 타야 된다.
"비룡폭포로 내려가자"
늦은 오후, 안전 산행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비룡폭포의 내리막으로 치닫는다.
그런데 사실 경방골의 상단 부분 또한
계곡 산행을 위한 목적이라면 충분히 걸어 봐야 할 비경을 간직한 곳이었다.
"역시 비룡폭포로 내려오기 잘했네"
계곡의 점입가경은 말로 표현 못한다. 동대산이 품은 계곡 비경.
물침이골과 경방골 어느 곳을 가더라도 원시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여름 나절 최고의 계곡 산행지다.
비룡폭포가 있는 경방골의 상단 부.
안 봤으면 후회할 뻔했다.
"역시나 저럴줄 알았어"
아까 오를 때 본 호박소.
저기서 야양하면 딱 좋을 곳인데라고 했는데
역시 내려오니 일련의 젊은 남녀들이 야영 준비를 해놨다.
두런두런 앉아 모기장 텐트를 치고서는 그들끼리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게 아닌가.
두어 명, 아마 호박소 무리들과 동행이리라
머리 꼭대기보다 더 높은 배낭을 짊어진 젊은 청춘들이 씩씩거리며 오르고 있었다.
나의 소싯적 모습이 오버랩된다.
"우리 때는 저런 생각을 아예 못하고 살았지"
알바하고 공부만 했지 저렇게 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살았었기에 말이다.
격세지감,
"라테는 말이야"가 절로 나오는 세대차이다.
경방골의 거친 암벽과 협곡.
산속에 이러한 풍경이 있을지 상상도 못했다.
동대산과 바데산은 불과 6~700m 남짓한 큰 산이 아니기에
이러한 비경의 계곡을 품고 있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못했었다.
산도 그렇치만 사람 또한 그러하다.
겉모습과 달리 그 사람이 품고 있을 길고 긴 아름다운 계곡이 있을 지 누가 알겠는가.
또다시 이어지는 무수한 계곡의 횡단.
물줄기가 가늘어 건너기 편하지만
수량이 많을 시엔 등산화 젖을 각오로 건너야 할 계곡.
이리저리 건너며 시원한 절경을 즐기다보니 어느듯 하산이 끝났다.
11km 남짓
5시간 20분 걸렸다.
이곳 근처엔 이름난 온천이 많다.
시원하 게 온천도 즐기고 동해안 맛집도 즐겨볼 수 있는 곳, 바로 동대산이다.
요즘 국도변에 복숭아가 한창이다.
영덕에 왔으면 복숭아는 덤으로 맛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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