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산행기/지리산행기

조개골~청이당~하봉~치밭목대피소(1박)~심밭골

구상나무향기 2019. 12. 10. 08:09
728x90






조개골, 朝開.

즉 아침이 열리는 골짜기.


이곳은 어느 골짜기 보다 아침이 일찍 시작되는 곳이다.

일출과 더불어 강렬한 빛이 이 골짜기에 스며드는데








<윗새재마을, 나의 애마>





그래서 딴은 조개골에 대한 이름이 유추된다.


하지만

어디나 그렇치만 지리산 지명은 암자나 터에 관련되어 유래된 경우가 많기에


"혹여 조개사라는 절이 있었을까?"


그렇다면 아마도 조개골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슭에 조개사가 있었다는 정황은 없는 모양이다.

지리산하늘 첫동네라는 새재마을.


바닷가 생명체인 조개가 있었을리는 만무할 것이고

딴은 추측이다.










오늘의 여정은

조개골을 지나 청이당에서 하봉으로 오르는 일정.


윗새재 마을을 출발해 조개골 우측의 등로를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시작 40여 분, 등에 땀이 배일 즈음 조개골과 청이당 고개 방향으로

갈리는 분기점인 우량측정탑을 만난다.


10년도 더 되었을 시기, 이곳 이정표에

철모가 걸려 있어 철모삼거리라 여전히 부르고 있지만 

이제 우량탑삼거리라 불러야 할 듯하다.






<계곡이 얼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면 계곡에서 청이당 터과 독바위 직전의 동부 능선으로

붙는 두 가닥의 길이 나오는데


어차피 두 길은 능선에서 만난다.


능선에 붙으니 된서리를 넣은 칼바람이 몰아친다.


"우와 춥다 추워"


그날, 올들어 가장 추운 날이였는데

하필이면 고른 날이 동장군이 악닥구니를 부린 날.










수십 번도 더 온 동부능선.

올 때마다 새롭고 반갑다.


20년차 지리산 산꾼.

큰 바위는 기억에 안 나는데 되려 자그만한 길목에 놓여진 바위는 추억이 뚜렷하다.


"저 바위를 딛고 다닌지 벌써 20년 이라니"


인걸은 간데 없고 어저버 태평연월이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다.





<청이당터>




청이당 터는 청이당 고개(일명 쑥밭재) 바로 아래에 위치하는데,

예전 이곳에 ‘청이당’이란 당집이 있었다고 한다.


뒤로는 지리산 동부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앞에는 맑은 청이당 계곡수가 흐르는 등 배산임수의 명당자리이자 야영터.








청이당은 옛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도 등장하는데,

함양 쪽에서 천왕봉을 오를 때,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다.


이곳에 쉬었다가 하봉을 거쳐 천왕봉에 올랐다고 적고 있는데

또한 남쪽의 진주, 덕산장과 북쪽의 마천장을 오가던 상인들이 이곳에서 하룻밤 묵고 가기도 했다.


청이당 고개는 덕산과 마천을 최단거리로 이어주는 고개로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간 곳.

잠시 쉬곤 좌측으로 난 하봉 옛길로 접어든다.







<마암>





칼바람이 몰아치는 동부 능선.


능선으로 붙으면 칼바람에 얼어 버릴 듯싶어

사면 길인 하봉 옛길을 택한 것.


하봉 옛길, 청이당 터에서 하봉으로 이어지는 사면 길인데

길은 유순하고 험하지 않다.


청이당 터에서 한 시간쯤 걸으면

능선 직전 마암 가는 길이 좌측으로 보인다.




<마암>




좌측 길로 2~3분 들어서면 큰 암벽이 나타나는데 바로 마암(馬巖).


이전에는 마립대로 불리기도 했는데,

암벽상단에 마암(馬巖)이란 각자가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


암벽 앞에는 너른 공터가 있고 샘도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목기를 만들던 ‘말바우 산막’이 있었다고 하는데

말바우는 ‘말바위’ 즉 마암(馬巖)을 의미한다.




<암벽에서 떨어진 바위>




마암엔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2007년경 이곳에서 두 명의 사상자가 났는데

야영 중 암벽에서 떨어진 바위 때문에 생긴 참사였다.


막걸리 한 사발로 그들을 위로하고

서둘러 점심상을 차린다.





<석간수>




석간수는

겨울이었지만 맑고 풍부했었다.


이곳의 물을 떠 식수나 식용수로 활용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동장군의 위세가 거센 바깥과 달리

이곳은 따뜻하기만 하다.





<산중 라면은 늘 옳다>





마암에 누군가 글을 쓴 흔적이다.


널버러진 도구나 불을 지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지금도 기도처로 활용되고 있는 모양새다.









마암을 둘러보고 삼거리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우측 등로를 따라 하봉으로 향한다.


10여 분 걸으니 하봉 능선의 안부인 영랑대에 도달한다. 윗새재를 출발한 지 3시간 만.


능선에 붙으니

역시나 칼바람이 거세게 몰아친다.






<능선에 붙으니 눈이 쌓였다>






저멀리 치밭목대피소가 아스라히 보이는

능선의 조망.


어느듯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의 고사목들이

줄줄이 이어지는데


기후변화는 성큼 우리곁에 다가와 이렇게 리얼한 참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구상나무는 이미

거의 사라지고 있는 중이고 그렇게 기세 좋게 세를 불리던 '지리산바이러스' 산죽도

지리산 곳곳에서 말라 죽어가고 있다.









하봉의 무덤.


누가 언제 왜 이곳에 무덤을 만들었을까?


올 때마다 궁금했는데

예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송두리째 기억상실이다.





<하봉 무덤>



영랑대와 하봉을 지나면 좌측으로

치밭목대피소가 아스라히 보이는데


이곳에 서면 좌.우측 어디를 보더라도 풍경 만큼은 보장 받는다.


지리산꾼이면 유독 이곳 능선을

좋아하는 데 가보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둘기봉과 치밭목대피소>



국골이 선명하다.


국골은

좌측 초암 능선과 우측 두류봉 능선 사이에 있는 험한 골짜기인데


최상층부에 이르면


두류봉으로 오르는 낱끝산막골과

초암 능선으로 붙는 선골로 나뉜다.






<정중앙이 국골, 좌측 초암 능선 / 우측 두류봉 능선>




영랑대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비로소 오늘의 목적지

하봉이다.


해발 1754m.


이곳에 서면 초암 능선에 가려진 칠선계곡이 더욱 선명하 게 드러나는데

그 서슬 퍼른 지세에 산꾼의 간담이 서늘해 지는 곳이기도 하다.





<파노라마>







천왕봉과 중봉, 

꿈속의 풍경인냥 장엄한 실루엣으로 다가오는 곳, 하봉이다.


이제 이곳도 겨울왕국으로 면모할 것이다.





<하봉에서 본 천왕봉과 중봉>





하봉 헬기장에서 야영을 몇 번 해본 경험이 있었는데

이곳 아래에 하봉 샘이 있기에 야영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터도 좋다.

하지만 최근엔 국립공원의 야영 단속이 심해 이곳은 야영지로 삼기엔

부적절하다.





<중봉이 보이는 하봉 헬기장>




하봉 헬기장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조개골.


사실 이곳은 단속 외통수 지역이다.

왜냐하면 갈림길이 없기에 치밭목대피소로 갈려면 부득히 외길인 이곳을 이용해야 하는데


길목에 버티고 있음 딱 걸리게 되어있다.


시간 맞춰 치밭목 샘에서 지키고만 있어도 걸리는

딱 외통수 지역. 눈치 잘 살피고 다녀야 된다.







<조개골은 아래쪽 방향>




눈이 오고 난 다음, 아무도 이 길을 걷지를 않았나보다.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을 헤치고


눈에 덮힌 희미한 길을

어렵사리 찾아 내려가니 예전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사태가 난 지역을 만난다.


조개골로 갈려면 사태 지역을 그대로 내려 가도 되고

치밭목대피소로 갈려면 건너야 된다.






<사태 지역>




이곳에 유독 큰  참나무들이 많은데

지리산 산행 하면서 만난 거목 중 하나다.


조개골에서 치밭목대피소 삼거리 직전에도 엄청 난 거목의 참나무가 자라고

도장골에서도 이와 비슷한 둘레의 참나무가 자란다.









잎으로 보면 갈참나무가 아닌가 싶다만

이름이야 중요하겠는가


그저 신령스럽기만 하다.








드디어 치밭목대피소 샘터에 도착.


그날 산행을 마무리한다.

대략 윗새재 마을에서 출발한지 7시간 30분이 걸렸다.





<꽁꽁 얼어 붙은 샘터>




방을 배정받으니 그날 입실자는 단 두 명

우리 일행이 전부였는데


산불 경방 기간이라 천왕봉으로 가는 길이

모두 통제되었기 때문에 찾는 사람이 없어서다.


취사장과 침실 모두 우리가 전세 낸듯한 즐거움을 가진다.









2017년 새로 지은 치밭목대피소.

그전 이곳에서 자다 추워 잠을 못 잔 경우도 있었다.


얼마나 춥든지.

난방이 전혀 안 되는 곳이기에 한 겨울엔 정말 식겁하는 곳이였다.






<전세낸 취사장>




새로 정비된 치밭목대피소.


지금은 번호 마다 열선이 있어 히터를 넣어준다.

그러나 뜨끈할 정도는 아니고 보온만 될 정도.


방한복을 입고 모포를 덮고 누우면

춥지는 않다.









밤새 폭풍한설이 몰아친 밤이었다.

어찌나 바람이 심하게 불어대든지 건물이 다 들썩거릴 정도였다.


어느 순간 일출이 돋아나는 시간,

눈을 떠 바깥으로 나가니 바람은 한점 없고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차분한 날씨다.










치밭목대피소에 서면 앞마당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데

그 장면이 아깝지 않을 명장면.


약간 숲에 가리워 있지만

보기엔 손색이 없다.






<일출에 물든 대피소>




치밭목대피소, 나는 이곳 추억이 유독 많다.


추워서 혼난 적도 서너 번

울적한 날, 혼자 사부 자기 조개골로 올라 자고 간 적도 있었고

비에 흠뻑 젖어 겨우 들어와 다음 날 두류봉으로 하산하다 식겁했던 날도 있었다.


하룻밤을 유하지 않았더라도

이곳에서 새긴 추억과 낭만은 셀 수가 없다.





<예전 치밭목대피소>



새롭게 잘 정비된 치밭목대피소에서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고 하산한다.


오래되었거나

새로 만들었거나 어쨌든 치밭목대피소는 언제가 거기에 있는 건 똑같다.


지리산이 어디에 가겠나

늘 그자리에 있는 지리산.


사람만이 바뀔뿐이다.





<대피소 앞마당 일출>






무제치기 폭포가 지리산에서 가장 큰 폭포가 아닐까 여겼다


높이 보다는 넓이가 꽤나 넓은 폭포.


그런데 불일폭포가 지리산에서 가장 커다고 한다.












겨울에 더 보기 좋은 무제치기 폭포다.


사실 수량이 부족해 그리 우렁찬 느낌의 폭포는 아니지만


빙벽이 꽁꽁 얼은 모습의 무제치기 폭포는

이 겨울, 지리산의 대표 풍경이기도 하다.




<무제치기 폭포>





치밭목대피소에서 심밭골로 윗새재까지는

2시간 가량이 걸린다.


그리 험한 곳이 아니기에 사부 자기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드디어 1박 2일의 소중한 추억을 갈무리하고

지리산 산행의 낭만을 마무리 짓는다.










칠정삼거리 문산선지국의 맛은

지금껏 내가 먹어본 최고의 선지국밥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매가매 생각나면 꼭 들러서 먹고 가자

산행의 피로를 확 풀어줄 최고의 맛집이다.







코스는 다음과 같다.

윗새재마을~우량측정탑~동부능선~청이당터~하봉옛길~하봉~치밭목대피소~심밭골~윗새재마을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