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기/지리산행기

부운좌골~세걸산(야영)~세걸산 동릉

by 구상나무향기 2020. 6. 23.
728x90

부운마을 주차.

 

 

 

 

세걸산 야영은 오래전부터 나의 야영 리스트 첫 번째 항목에

위치한 오래된 숙원 목표였었다.

 

"다음에는 세걸산에서 야영을 해야지"

라는 결의를 만복대 야영에서 다짐을 했었다.

 

6월의 어느 한갓진 주말.

역마살 달인은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목표 지향적 감성'을 따르고자 또 배낭을 메었다.

 

 

 

 

고생보따리를 짊어지고.

 

 

부운마을 한편, 도시 촌놈의 방문으로 부산스러움이 일어난다.

 

구름이 떠다니는 곳, 부운마을.

 

그다지 크지 않는 마을 탓인가

사람도 강아지도 보이지 않는 적막강산의 그야말로 한갓진 마을이다.

 

 

 

 

 

날씨는 무더웠다.

 

 

 

부운마을, 세동치와 부운치로 가는 등산로가 이곳에서 이어지는데

소위 부운 좌골과 부운 우골(부운지골)이 있어 서북능선으로 갈 수 있는 등로다.

 

이번 산행은 부운 좌골을 통해 세동치 샘에서 세걸산으로

올라가는 루트.

 

오후 나절, 바쁠 것도 서두를 것도 없는 

느긋한 헐랭이 산꾼.

 

두꺼비 모양새로 좌골로 스며든다.

 

 

 

다리가 나오면 바로 좌측.

 

 

 

부운치 2.2km 이정표가 있는 등산로가 바로 부운 우골(부운지골).

여긴 길이 좋고 험하지 않아 서북능선에 오르기가 손쉽다.

 

그러나 지능지수 99에 가늠하는 헐랭이가

길 좋은 곳을 선택하기란 애초에 틀려 먹었고

 

인생 최고의 테마 '개고생'을 즐기려

부운 좌골로 스며든다.

 

거기가 세동치 샘으로 이어지는 루트.

 

짙은 지리산의 원시림에 막혀

생각하지 못한 개고생은 옵션이었다.

 

"아이고 니미럴"

욕지거리 통곡은 세걸산 아래 골짜기에서 그렇게 울러 퍼졌다.

 

 

 

 

이 입간판 바로 옆길이 부운좌골.

 

 

 

입구에서부터 옛 마을로 추정되는 터가 곳곳에 나온다.

모두 습지로 변해 질퍽거리는 음습한 곳.

 

뱀도 보이고 온갖 종류의 날벌레가 습격한다.

 

마을터는 진흙탕으로 변했고

곳곳에 멧돼지 떼의 발자국이 수북하다.

 

멧돼지들이 진흙탕을 좋아하기에 이곳은 그들이 놀기에 딱 좋은 곳.

사람이 머물 곳은 아닌 듯. 서둘러 엉덩이를 떨 춘다.

 

 

 

 

마을터는 머위가 뒤덮었다.

 

 

 

음습한 곳을 벗어나니 

그제야 산행 재미를 느낄 연녹음의 숲이 드러난다.

 

시간은 햇살 좋을 정오의 시기.

빛은 숲을 뚫고 녹음의 색채를 더욱 돋보이게 채색하고 있었다.

 

역시나 지리산.

이런 원시적인 녹음을 어디서 겪어보겠는가.

 

참으로 행복한 숲의 여정, 지금까지는 말이다.

 

 

 

 

 

똥폼은 무심한 표정이 좋다.

 

 

 

세동치 샘에서 발원된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진다.

어제 내린 비로 불어난 탓.

 

그리 수량이 많은 계곡이 아닌 듯한데

부운 좌골의 계곡은 시원하기만 하다.

 

 

 

 

계곡은 깊었다.

 

 

 

시원하게 지리산 계곡의 물맛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역시나 물맛은 지리산만큼이나 으뜸인 곳이 또 있을까

정말 시원하고 감칠맛이 톡톡 터지는 물맛.

 

나는 지리산만 들면 어디서나 계곡물을 마시는 버릇이 있는데

어디 가나 속 시원한 쾌감을 선사한다.

 

단언컨대 지리산 물만 마시고 살아도 병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짐승이 물 마시는 법.

 

 

 

고도가 오르자 숲은 더욱 짙어지고 등로는 희미해져

시야는 길 찾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 이게 지리산이지"

 

'있는 척'하는 길들이 이리비틀 저리비틀 꼬아대며

더욱 짙은 숲으로 나를 데려간다.

 

그 '있는 척'하는 길들은 죄다 짐승 길이다.

 

 

 

 

 

 

부운 좌골의 모습. 길은 매우 희미하고 거의 없다고 할 정도다.

 

 

 

"니미럴 쓰벌, 이게 길이야"

 

온갖 욕지거리는 그날 세걸산 아래 골짜기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길은 없고 독한 산죽밭으로 맵이 이어져 있는 게 아닌가.

 

"길이 아닌데" 짐짓 멈춤 했지만

맵을 믿기로 했다.

 

희미한 등로, 뺑 돌아 다른 곳으로 이어져 있는 듯 하지만

정작 오룩스 맵은 산죽밭 짐승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멧돼지 산행.

 

망할 오르막, 그것도 산죽밭으로 치고 올라야 하는 격정의 순간.

 

돌아버린 산꾼, 혼이 비정상이다.

 

 

 

 

저 루트는 등산로가 아니고 그냥 산죽밭.

 

 

 

맵의 선이 그어져 있지만 사실 거긴 그냥 산죽밭이었다.

 

험하디 험한 비탈길의 산죽밭,

무거운 박 짐을 짊어지고 산죽을 헤집고 미끄러져 가며 욕을 해대며 올라야 했었다.

 

"내가 멧돼지여 사람이여?"

순간 드는 의문 부호의 각성의 순간, 그때 나는 짐승이었다.

 

"니 산죽밭 치고 올라봤나.. 안 해봤으면 말을 마라"

 

 

 

아이고 니미럴

 

 

 

격정의 1시간, 빽빽한 산죽밭을 벗어나니 숨 쉴 공간이 그제야 나온다.

 

사실 부운 좌골은 길 자체가 없다고 보면 된다.

오룩스 맵이 없다면 희미한 등로를 따라 직관에 따라 헤집고 가야 할 골짜기다.

 

소위 빨치산급 산행의 골짜기. 예전에 많이 해봐서 알지만

절대 할게 못된다.

 

부운 좌골은 부운지골로 불리는 우골과는 차원이 다른 등로다.

오룩스 맵이 없다면 세동치 샘 방향 잡기도 힘든 골짜기.

 

마을 사람들이나 산꾼들이나

딱히 이곳을 통해 세동치로 갈 '목적 지향'이 없을 골짜기라 더욱 그런 듯하다.

 

"뭐 지리산 골짝이 다 그렇지"

 

 

 

 

드디어 세동치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세동치 샘.

 

세동치 샘은 습지다.

 

해발 1,200m 정도에 위치한 습지인데,

내린 비로 인해 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었고 주위로 사초와 애기괭이눈 같은

습지 식물들이 잔뜩 자라고 있는 청정 오지의 샘.

 

 

 

습지의 식물

 

 

예전 태극종주할 때, 물이 없어 바래봉에서 정령치까지 참고 걸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능선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이 샘이 있었다는 걸 그땐 몰랐다.

 

이제 고인이 되신 조은산님과 함께

목마름을 참고 꾸역꾸역 이 길을 걸었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이 샘을 알았다면 진즉에 물맛을 보았을 것인데 말이다.

 

사실 그 이후로도 이 샘터에 올 일은 없어 

이 세동치 샘의 물맛은 요원하기만 했었다.

 

 

 

 

 

세동치 샘은 습지다.

 

 

야영을 위해 물병 가득 물을 담는다.

 

오늘, 세걸산 정상에서 야영하기 위해

이 험한 골짜기로 오른 이유다.

 

세동치 샘에서 정상까진 300m 남짓.

물을 잔뜩 지고 올랐기에 다음날 산행 끝마칠 때까지 물은 넉넉했었다.

 

 

 

 

헐랭이 산꾼.

 

 

 

무엇보다 물맛은 지리산에선 임걸령, 곰샘 다음으로 이곳이

최고인 듯하다.

 

온 몸속 전율이 일어날 정도의 청량감을 선사한다.

 

세동치 샘은 서북능선 자락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더운 날, 지치고 힘든 산꾼의 격정 어린 목마름을 해갈해줄 수 있는 최고의 샘터다.

 

 

 

 

세동치 샘

 

 

샘에서 능선은 가깝다.

이 잎갈나무가 버티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 바로 샘터다.

 

해발 1,200m에 청정의 샘이 존재하리란 생각은 미처 못할 것이다.

습지가 있다니 놀랍다.

 

 

 

잎갈나무가 있는 샘 들머리

 

 

 

서북능선의 짙은 등산로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지금까지 짐승 길 따라 올라왔는데

이런 고속도로 신작로라니

 

터벅터벅 오르니 그제야 세걸산 정상에 선다.

 

 

 

세걸산 정상.

 

 

세걸산은 서북능선(덕두산~성삼재),  절반 즈음에 위치한 봉우리(1,216m)다.

 

서북능선, 인월 덕두산에서 시작해, 바래봉, 세걸산, 만복대, 고리봉의 날 선

봉우리를 거쳐 성삼재가 끝인 능선인데 길이는 약 22km 정도 된다.

 

시간은 대략 10시간 남짓.

 

3번 정도 종주를 한 기억이 있는데, 하나 같이 개고생의 추억.

특히나 추운 겨울날엔 할게 못된다. 능선 칼바람이 장난 아니다.

 

 

 

 

정상 표지목은 숲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세걸산 정상에서 본 반야봉은

흰구름을 이고 있다.

 

 

야영터에서 본 반야봉, 노고단은 구름에 가렸다.

 

 

우측으로 서북능선 가는 길.

저 멀리 만복대가 아득하다.

 

 

야영터에서 본 만복대 가는길.

 

 

내일 내려갈 세걸산 동릉의 모습.

그리고 뒤편으로 지리산 주능이 희미하게 보인다.

 

 

세걸산 동릉

 

 

집을 짓고 

야영의 낭만을 부려 보아도 아직 해가 떠있다.

 

구름 때문에 일몰과 다음날 일출까지 모두 허사가 되었지만

날씨는 포근했고 비도 오지 않았으며

새벽, 하늘에 별은 총총하기만 했었다.

 

최근에 본 최고의 별 풍경이었지 싶다.

 

저런 많은 별을 본지가 언제인가

인도네시아 카와이젠 화산 등반 때 은하수를 보고서는 내내 감탄을 했었다.

 

 

 

 

장비 욕심이 거의 없는 산꾼의 오래된 텐트. 이제 새걸로 바꾼다.

 

 

 

술을 즐기지 않는 성향이라

밥만 먹고 일찍 잠만 자는 참말로 참한 산꾼이다.

 

여러 사람이 뭉쳐서 하는 산행은 그다지 지향적이지 않아

홀로 아님 1명 정도의 동행과 야영을 즐긴다.

 

오붓하고 조용한 산중의 시간.

 

사실 시끌벅적하고 난잡한 야영을 할 바에 집에 있는게 낫다는 가치관이다.

 

"산에서는 조용하자 "

 

각자의 주관이니 그러려니 하자.

 

 

 

 

 

구름에 휘감긴 지리산. 아침이 밝았다.

 

 

일출은 구름에 가려져 알 수 없을 정도.

 

출발하기 직전까지 세걸산 정상은 짙은 구름이 휘감고 있었기에

조망은 거의 없었다.

 

텐트를 걷고 출발하니 그제야 동릉이 살짝 보일 정도였었다.

 

 

 

구름에 휘감긴 세걸산 정상, 저기 앞이 동릉 입구

 

 

 

세걸산 정상에서 약간 앞으로 가면 바위가 보인다.

그 아래가 바로 동릉 입구.

 

온갖 나무와 잡풀로 우거져 길은 보이질 않지만

밑을 잘보면 뚜렷한 등로가 보인다. 초반엔 급 내리막

 

세걸산 동릉은 길이 뚜렷하지만

그렇다고 짙을 정도는 아니기에 정신만 잘 차리자.

 

길 잃고 헤맬 정도는 아니다.

 

 

 

구름 걷힌 세걸산 동릉.

 

 

 

입구에서 큰 더덕을 발견했다.

곳곳에 더덕밭

 

그중 싹대가 커 보이는 몇 개만 채취했다.

욕심은 금물.

 

 

 

 

 

대물 더덕을 발견했다.

 

 

동릉의 산죽밭도 만만찮다.

멀쩡한 얼굴이 나중에 생채기 가득한 몰골로 바뀌었을 정도다.

 

초반 내리막과 동릉 중반까지는 산죽밭이다. 

 

 

 

멀쩡했던 얼굴

 

 

마스크로 중무장을 했는데도

산죽밭을 통과하고 나니 엉망이다.

 

하여튼 지리산 산죽밭 산행은 정말 할게 못된다.

 

세걸산 동릉은 딱히 조망처가 없어

숲의 기운만 즐길 뿐이다.

 

 

 

망할 산죽밭 통과 후

 

 

 

오늘은

세걸산 동릉을 타고 부운마을로 하산하는 루트.

 

어제 오늘 다 합치면 약 8km 정도의 짧은 거리.

하지만 짧고 굵은 강렬한 코스다.

 

 

 

 

 

세걸산 동릉, 중반부 부터는 길이 좋다.

 

 

 

세걸산 동릉을 타면 두 가지 갈림길이 나오는데

처음은 능선 초반 즈음에서 덕동마을로 내려가는 길.

 

그리고 마지막 봉우리에서 부운마을과 반선으로 나뉘는 길이 나온다.

 

덕동마을로 가는 갈림길은 능선에서 나름 뚜렷하다.

하지만 부운마을로 나뉘는 길은 정말 희미해 오룩스 맵이 아니었음 도저히 못 찾을 길.

 

표지기도 달아 놓지 않아

거기가 들머리인지 아닌지 전혀 흔적이 없다.

 

"여긴 도저히 길이 아닌데"

맵에서 들머리라 알려주는 곳 거기는 사면의 급 내리막.

 

부운마을로 내리서는 길은 도대체가 오리무중이었다.

 

왔다 갔다 헤매 돌다 맵에서 벗어난 희미한 길을 찾아 들어가니

그제야 길이 나온다.

 

오룩스 맵, 모든게 만능은 아니기에

대충 오차의 범위를 확인하고 길을 찾아야 한다.

 

 

 

부운마을 들머리는 매우 희미해서 한참을 찾았다.

 

 

 

처음엔 희미했지만 길은 제법 뚜렷해진다.

그러다 마을로 접어드니 길은 희미해진다.

 

정작 마을 근처까지 가니 길은 되려 사라지고

방향만 잡고 내려갈 뿐이다.

 

그래도 길은 맞다. 정신 없이 내리막을 걷고 걸으니

어느듯 마을 근처의 무덤가.

 

 

 

부운마을과 반선 갈림길.

 

 

드디어 하산 완료.

부운마을 딱 입구로 뚫고 나온다.

 

처음 시작할 땐 저기로 나올줄 생각도 못했다.

 

 

 

세걸산 동릉 날머리, 부운마을 입구다.

 

 

전체 등로

8km 남짓. 시간은 의미가 없다.

 

그야말로 짧고 굵은 강렬한 코스.

 

 

 

전체 코스.

 

 

 

시원한 달궁 계곡의 한켠, 달궁의 덕동식당이

내가 가장 많이 찾는 단골 가게다.

 

3년 묵은 김치와 흑돼지 장작구이는 지리산 최애의 맛.

 

달궁의 거친 계곡미를 탐닉하며 흑돼지를 넘기는 정취는 이곳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낭만이다.

 

식당 아래, 계곡에서 멱을 감고 등목을 하니 정신이 번쩍든다.

 

이제 연녹음의 빛과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잘차려진 흑돼지 한상을 탐닉하면 된다.

 

 

 

 

덕동식당의 3년 묵는 김치와 흑돼지 장작구이. 뒤로 달궁 계곡

 

 

이제 또 역마살의 회포를 풀었다.

 

"또 어디로 떠나볼까?"

 

떠날 때 시작할 곳을 찾는 건 이미 버릇이자

나의 서정이 되어버렸다.

 

이제 더운 여름, 계곡으로 가볼까나?

 

 

 

한 더덕 하실라예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