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마을의 늦여름>
지리산 오봉리.
나에겐 각별한 추억과 정서가 담긴 곳이다.
1998년쯤으로 기억된다.
그때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 카페에서 모임이 추진 되었는데
산청 주상리에 있는 세검정가든이었다.
그 모임을 주관했던 분이 늘푸른산악회 고 민영길님이었고
그분이 우릴 데리고 간 곳이 바로 독바위였다.
그게 나에겐 첫 지리산 산행이었다.
*그후 난 지리산만 130번을 올랐다.
근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지만 나에겐 엊그제 같은 추억을
품고 있는 오봉리이자 독바위의 정취다.
<엄청 변한 오봉 마을>
오봉 마을,
그때만 해도 차가 다니기 힘들 정도로 상당한 오지였었다.
수풀이 우거지고 마가목 열매는 곳곳에 붉게 물들어 있었으며
겨우살이는 참나무 등걸에 손만 내밀면 딸 수 있을 정도로 수북했었다.
야생 반달곰이 마가목 열매를 따 먹은 흔적까지 고스란히 간직된
정말 오지 중 오지, 독바위 가는 길이었다.
그 이후 참으로 많이도 이 길을 다녔을 것이다.
나에겐 참으로 소중한 추억이 깃든 곳
바로 지리산 오봉리다.
<15년 된 박 배낭, 10년 된 깔판>
밍그적 밍그적
오봉리 유일한 주차장, 홀연히 나타난 사내들의 움직임에
영동민박 주인장이자 오봉리 이장님이신 강신구 어른이 출현 하신다.
"어데서 왔소?"
"부산에서 왔는데예"
"나 여거 이장이여"
"아이고 그렇습니까 고생이 많네예"
은근히 자신이 운영 중인 민박을 홍보하신다.
"영동민박 운영도 하고 있어"
"이런 산수 경치 좋은 곳에 민박이라니 꼭 들러보겠습니다"
"여기 주차장이 내가 맹근 곳이여 고맙게 생각해"
"당근이지예"
사람 좋은 웃음에 포스가 작렬이신
오봉리 강이장님.
<오봉리 강이장님>
저 박 배낭은 15년 된 배낭이다.
오케이아웃도어에서 자체 개발한 제품인데 배낭 자체만 해도 묵직한 게 단점이다.
하지만 매우 튼튼해서 지금도 어디하나 뜯어지고 찢긴 곳이 없고
수납할 공간이 많고 헤드 부분을 떼어내면 별도 소형 가방이 된다.
나는 몸에 맞아서 그런지 난 이 낡은 배낭을 버리지 못하고
아직 사용 중이다.
저 깔판은 10년 되었고 침낭도 10년 되었다.
오봉리에서 사립재 올라가는 구간은
이제 정글이 다 되었다.
20년 전 올랐을 때의 모습과는 아예 달라졌는데
드문드문 이 구간을 올라봤지만, 해마다 수풀이 더욱 우거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번에 올라갈 때 식겁했었다.
사람 몸이 지나다니지 못할 정도로 산죽이 밀림처럼 우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죽 겨우 뚫고 올라왔다>
산죽이 사람 키보다 높았고, 밀도가 높아 산죽을 밀고 나가기가 버거울 정도였는데
등산로는 산죽에 뒤덮혀 전체 2/3 정도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또한 생태계도 달라져 극상림은 우거지고 우거져
하늘은 보이지도 않고 빛은 겨우 들어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지리산 최고의 원시림이었다.
<숲은 매우 우거졌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탓에 시간은 매우 느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뭔 걱정인가
야영을 하고자 이미 집을 배낭 속에 넣고 다니는데 해가 지면 그대로 집을 만들면 그만.
달팽이가 노숙을 걱정하겠는가.
한갓진 시간을 즐기며 오늘 내가 이곳에 와 있는 순간의 행복만을
음미할 뿐이다.
산꾼의 호사,
산꾼의 행복이 따로 있는가
그저 산에만 있음 호사요 행복이다.
<사립재에서 오봉 방향을 알리는 표식>
사립재 올라가는 언덕마루의 식생은
이 구간 중 유일하게 초본 식물들이 자라는 각축장이다.
참취와 모싯대 그리고 오리방풀이나 곰취와 참나물 등이 지천으로 자라는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사립재의 식생>
여긴 아직 산죽이 침범하지 않고 있었다.
그중 참취 잎과 참나물 잎을 다소 떼어내 저녁 먹거리로
갈무리해봤다.
여기서 곰샘까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상내봉은 올라서서 오른쪽.
새봉은 왼쪽이다.
<사립재 식생>
곰샘 이름의 유래는 간단하다.
바로 이곳이 곰의 서식지였기 때문이다.
곰샘은 내가 직접 '지리99-지리산아흔아홉골' 사이트에 소개하면서 굳어진 이름인데
20년 전, 늘푸른산악회(고 민영길님) 회원들이 독바위 산행 할 때
알려준 석간수 샘터다
등산로에서 수풀에 가려져 바위가 있는지 조차도
심지어 그 바위 아래에 이렇게 물이 흐르는지 조차도 알 수 없었는데 그분들은 용케도
찾아낸 것이다.
그후 이 샘터는 온라인에 크게 소개되어 이젠 수많은 등산객들의 목을 축여 주는
명소가 되었다.
11월 갈수기 때도 이곳엔 물이 흐를 정도라 사철 마르지 않으면서도
수질과 맛은 가히 지리산에서도 최고의 수준이란 평가다.
<내가 지은 이름 곰샘>
사진보다 물은 더욱 많다.
위 바위와 아래 바위 모두 물이 흐르고 조금 더 내려가면 물흐름이 좋다.
사철 어느 때 올라도 물 확보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20년 전, 이 부근 근처에서 야생 반달가슴곰이 카메라에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고, 샘터 주위에 곰취가 많이 자라고 있어 이름을 곰샘이라 지었는데,
이 이름이 그대로 사용된 것이다.
내가 지은 이름이 공식화 된 곳이라 나름
나에겐 뿌듯한 장소다.
그리고 처음 이곳을 알려준
지금은 계시지 않는 민영길님이 그립기만 하다.
어느듯 세월은 흘러
이젠 내가 그때 민영길님의 나이가 되어 버렸다.
<짐승이 물 마시는 방법>
야영을 위해
물을 물병 가득 담고 여분으로 더 담았더니
안 그래도 무거운 배낭이 더 묵직해졌다.
곰샘에서 새봉까진 오르막이다.
한발 한발 천천히 내디뎌 겨우 새봉에 올랐다.
<드디어 새봉 도착>
이곳에 선 경우가 족히 6~7회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낮이 익은 장소 새봉이다.
어느 순간인가
늘 독야청청 푸르든 구상나무는 기후변화 때문인지 말라 고사해 버렸다.
새봉에서 늘 한결같이 반겨주든 멋진 나무였는데
이젠 이 정도 고도에선 구상나무가 버티지 못하는듯싶다.
지구온난화는 지리산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새봉에서 바라본 상내봉, 정면에 말라버린 구상나무>
지구온난화가 새봉에 영향을 주든지 말든지
어째거나 저째거나 난 새봉에 간신히 도착했었다.
무거운 배낭을 훌훌 벗어 던질 때의 그때 그 기분은 날아갈 듯하다.
그리고 도착했다는 안도감.
산행한 지 5시간.
오후 6시쯤에 도착했었다.
<새봉 야영터>
새봉은 군데군데 야영할 곳이 더러 있는데
너럭바위 쪽에 2군데가 있고
새봉에도 2동 정도는 칠 공간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너럭바위 있는 쪽을 추천.
그 이유는 너럭바위에서 일출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너럭바위에서 보는 풍경도 매우 환상적이다.
새봉에서 너럭바위까진 불과 2분 거리다.
이제 이곳에서 밤을 새우면 될 일.
조촐한 식사를 한 뒤
새벽녘 텐트에서 나와 밤하늘을 바라다보니
도심에선 볼 수 없는 별들이 총총하게 드러난다.
이 낭만과 분위기는 역시나 산중 야영이 아니라면
누구나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산중 야영할 때 꼭 새벽녘 숲속 기온을 느껴보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야영은
숲의 밤을 즐기는게 포인트다.
날씨가 좋았고 바람도 불지 않았으며
습기도 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춥지도 않았다.
쾌적하고 뽀송한 하룻밤을 보냈더니 몸도 개운하다.
늦잠을 잤더니 이미 일출 시간을 넘어
해는 벌써 중천으로 뜨오를 기세다.
일출은 놓쳤지만 아쉽지는 않다.
느긋하고 또 느긋하 게 아침을 지어 먹고서는
야영지를 정리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독바위를 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새봉에서 독바위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산죽이 다 말라 죽었다>
'숲의 바이러스'라고 부를 만큼 치명적인 생태계 교살자인 산죽.
여타 지리산의 풍경과 이곳은 확연한 차이다.
이곳의 산죽들은 전부 말라 죽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의 산죽들은 싱싱하게 숲을 덮고 있는데
유독 이곳의 산죽들만 모두 죽어 버린 신기한 장소다.
역시 숲에선 자연 조절이 가능한가 보다.
그렇게 산죽 때문에 골머리를 겪고 있는데 이렇게 쉽게 조절이 되다니.
새봉에서 독바위 구간까지 산죽 숲이 엄청 넓은데
그 넓은 산죽 숲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지리산에서 산죽은 엄청난 넓이로 확산 일로에 있는
생태계 골치거리다.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더 많은 존재로 알려져있다.
<숲 안쪽까지 산죽은 다 말라 죽었다>
숲 속 곳곳에 달걀버섯이 지천으로 널려있었는데
식용버섯이라 알고 있지만 손대고 싶진 않았다.
예전 잘 못 알고 버섯 먹었다가 아주 식겁을 했기 때문이다.
<달걀버섯>
참으로 오랜만에 올라보는 독바위다.
홀로 서있다 해서 독바위.
생긴 모양이 독아지 모양이라해서 독바위.
어느쪽이 이름의 유래인지 몰라도
독바위에 서면 하봉의 위세와 써레봉 그리고 조개골의 웅장하고도 장험한 풍경을
접할 수있는 동부능선 최고의 비경지다.
지리산꾼이라면 이 독바위에 올라보지 않을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동부능선 최고의 조망지 독바위>
독바위에 오르면 저런 각자가 보인다.
언제 누가 새겼는지는 몰라도
상징적 의미인지
주술적인 의미인지
태양 모양인지 아님 눈인지 몰라도 그림이 새겨져 있다.
근처에 글씨도 보이는데 자세히는 보이지 않는다.
<독바위 각자>
독바위에 서면
하봉과 써레봉 그리고 영리봉과 국골사거리 등 동부능선의 핵심적 봉우리들을
가장 시원하게 조망할 수있기에 이곳이 동부능선 최고의 조망지라 부르는 까닭이다.
저멀리 웅석봉의 달뜨기능선까지도 아스라히 드러나 보인다.
<정면 조개골과 우측 써레봉>
이제 다시 새봉으로 돌아가 배낭을 메고
새재로 향한다.
"우와~~~~~~~~~~~~~~~~~~~~~"
새봉에서 새재까지
악 소리가 절로나는 험로다.
그리고 이곳 산죽도 이미 키가 사람보다 크고 밀림을 형성하고 있어
진행하는데 아주 고생했었다.
이미 여러 번 경험이 있는 코스였지만
이렇게까지 산죽이 키를 덮고 있었는지 몰랐다.
어제 올라온 오봉골도 그렇지만 이곳 새재가는 길도 산죽의 위세가
대단했다.
하늘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산죽은 등산로를 막고 있었다.
<새재골에서>
새재에서 오봉리 임도까지
불과 1KM 남짓한 거리인데도 엄청 험한 코스다.
등산로가 보이지 않기에
대충 감을 보고 산죽밭과 계곡 길을 넘나들면서 헤쳐 나와야 한다.
이미 예전에 경험했건만 역시나
그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내려오면서 그때도 이리 힘들었나 싶었다.
하여튼 새봉에서 이곳 오봉리까지
정말 진상 코스 제대로다.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식생으로 면모해 버렸다.
식겁하고 내려오면 이렇게 임도를 만난다.
임도 따라 20분
쫄래쫄래 내려오면 오봉 마을 원점으로 돌아온다.
어제 우측으로 올라가
오늘 좌측으로 내려온 것이다.
전체 지도는 다음과 같다.
오봉골~싸립재~곰샘~새봉~독바위 왕복~새재~새재골~오봉리
대략 1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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