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산행기/지리산행기

조개골 심설산행

구상나무향기 2015. 12. 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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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열리는 골짜기, 그래서 조개골이다.(朝開골)

 

사진을 보더라도 일출과 동시에 따스런

햇살이 골짝 가득 전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조계사라는 절이 있었다하여 조개골이란 말도 있다.

 

 

 

 

<윗새재, 저 뒤 능선에 설화가 피었다>

 

 

 

윗새재, 불과 1달 전에도 이곳을 방문했었다.

 

늦가을, 단풍이 끝난 싯점이었는데

윗새재에서 출발해 써리봉 능선 어느쯤에서 야영하고 내려왔었다.

 

웬만해선 같은 코스를 이어서 하진 않는데

한달 후, 또다시 내가 이곳에 서게 될 줄 몰랐다.

 

 

 

 

<의례적 똥폼>

 

 

 

조은산님이 러브콜을 하셨는데,

눈 산행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던 나에게 있어 낭보였었다.

 

애초 계획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조개골로 스며든 건

 

거리와 시간에 비례한 적절한 코스 선정이었다.

 

결국, 능선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꼬리를 내려야만 했는데

눈 깊이가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조개골 초입>

 

 

 

초입은 겨울 산행을 즐기기 딱 좋은 상태였었다.

 

발목 정도로만 유지된 적설의 깊이가

눈 산행하기엔 적당한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능선 근처, 눈꽃이 화사하게 피어있어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눈꽃이 지기 전, 얼른 그 서늘한 '겨울의 서정' 밑에

서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밟지 않았다.>

 

 

예상외로 조개골은 첫눈 온 상태 이후 아무도

밟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리산꾼들의 넘나듦이 이 조개골을 빗겨가다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는 몰랐다.

 

 

 

<야호! 신났다>

 

 

 

조개골에 대한 경험은

개인적으로 상당하다.

 

오름과 내림을 합치면 아마 족히 10여 차례는 될 터이다.

그만큼 지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도

 

등산로를 찾아가는 발길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있었다.

 

 

 

 

 

눈이 등산로의 흔적 모든 걸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GPS나 오룩스 맵이 있어 그나마

경험치를 동원해서 찾아가는 거지 시각으로선 절대 찾지 못할 등산로다.

 

어설픈 초보가 덤벼들 겨울 지리산이 아니다.

 

 

 

<겨울 계곡, 물 마시는 법>

 

 

방향이 어디인지?

어디가 등산로인지 구분은 안된다.

 

이 길에 대한 경험이 제법 있다고 자신했지만,

오룩스 맵에 의존해

수시로 확인하면서 길을 찾아야만 했었다.

 

길은 어느듯 발목을 넘어 종아리까지 빠지고 있었다.

 

 

 

<길은 사라졌다>

 

 

조개골은 계곡을 세 번 건너는데

첫 번 건널 때가 가장 위험하다. 계곡이 넓기 때문이다.

 

겨울 초입에 있는 지리산 계곡은

아직 얼어붙기 전이라 저렇게 아슬하게 미끄럼을 무릅쓰고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조은산님이 엉덩방아를 찧고선 스틱을 부러뜨리고

말았다.

 


 

 

 

 

두 번째 계곡을 건너기 위해 내리서고 있는 장면이다.

 

여기서부터 눈은 거의 종아리를 지나

무릅까지 다을 정도로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는데

 

그에 비례해 체력 소모 또한

더욱 빠르게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오룩스 맵의 궤적을 보면 알겠지만

등산로를 제대로 밟지 못하고  비뚤비뚤 틀어진 모양새다.

 

오룩스맵이라도 있으니

저렇게 방향을 보고 찾아간 거지

 

이나마라도 없다면 감각에 의존해 찾아가야 한다.

 

사실 조개골은 길이 매우 뚜렷해 등산로 찾기가 쉬운 골짝이지만

눈이 온 겨울엔 그대로 소멸해 버린다.

 

 

 

 

 

누구나 자신의 이상, 노스텔지어를 찾는다.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가야 할까?

 

이렇게 험한 눈길을 헤쳐가야 하는 곳에 있을까?

 

노스텔지어에 가야 손수건이 있는 것인가

아님 내가 손수건을 들고 노스텔지어를 찾아야 하는 것인가?

 

 

 

 

 

<눈길을 헤쳐가는건 매우 힘겹다>

 

 

순간 순간 바람이 몰아칠 땐 온도도 순식간에

떨어져 내린다.

 

산행중 장갑과 혹한에 대비한 트라우저 장갑을 따로 가지고 다니는데

 

치밭목 민대장이 이르길

"순간 기온이 떨어지면 장갑 꺼낼 틈도 없이 손이 얼어버린다"

 

이 말을 실감하게 되는건

겪어보면 안다. 정말 바람불 땐 식겁 한다.

 

영화 투모로우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곳!

바로 겨울의 지리산이다.

 

 

 

 

 

 

눈 깊이가 무릎에 이르면, 걸음걸이는 매우 느려지고

허벅지는 가중된 근육 사용으로 더욱 힘들어지는 시기다.

 

무릎 위를 넘는 적설이라면

거길 넘겠다고 자신하면 절대 안된다.

 

가장 빠른 탈출구를 모색해서

마음 비우고 즉시 실현 해야 한다.

 

조난은 오만과 고집, 어리석은 패기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도 예전 제대로 식겁했던 적이 있어

러셀의 위험함을 몸소 체험한 바가 있다.

 

산 앞에선 늘 겸손해야 한다.

 

 

 

 

<무릎가까운 적설>

 

 

 

조은산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러셀을 하지만 능선까지 올라가는 건 매우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

 

치밭목 산장 방향으로 길을 잡는 걸로 합의한다.

 

이대로 진행은 무리다.

 

치밭목에서 정규 등산로를 이용하는 게 옳은 일이라 판단한 거다.

 

 

 

 

 

 

 

어허~

그또한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조개골 갈림길에서 치밭목 산장까지 역시

길은 소멸 상태였고

 

더욱 깊은 적설로 이젠 허리까지 파묻힐 정도였다.

 

너덜지대를 통과할 때는

너덜이 만들어낸 크래파스로 다리가 푹푹 빠져들어 매우 위험했었다.

 

 

 

<산장 가는길은 더욱 어려웠다>

 

 

 

 

허리까지 잠길 때는 거의 기어야 한다.

 

눈이 휘몰아 쳐 쌓아 놓은 경사길은 피하고

바람이 불어 간 방향으로 잡으면 그나마 가기 편하다.

 

 

 

 

어렵사리 도착한 치밭목 샘터다.

아무도 찾지 않은 양, 발자국도 없이 외롭게 눈으로 쌓여 있었다.

 

무던히도 많이 찾아온 치밭목의 인연인데

나에겐 이런저런 소중한 추억거리가 많이 쌓인

특별한 공간이기도 하다.

 

갈림길에서 치밭목 샘터까진 평소 20분 거리인데

그날 1시간이 넘게 걸렸었다.

 

 

 

<치밭목 샘터>

 

 

"우와 저게 뭡니까"

 

치밭목 대피소에서 중봉으로 오르고자 했던 생각은

입구에서 바로 좌절되고 만다.

 

계단 꼭대기까지 눈으로 잠겨버린

현실에서 어이가 상실해 버렸다.

 

누군가 러셀이라고 해놨으면 다행이지만

여전히 미답의 상태였다.

 

저걸 뚫고 가는건 미친짓 or 자살행위다.

 

 

 

<계단 꼭대기까지 잠겼다>

 

 

고민도 할 것 없이

바로 하산을 결정하고선

 

느긋한 점심시간을 가져본다.

 

지리산에서 하산 시간은 어느 코스로든

10시간 정도가 기본이지만 그날은 7시간 정도로 끝냈다.

 

여기서 더 이상 진행은 무리다.

욕심은 늘 화를 초래한다는 걸 여러번 겪어봤기 때문이다.

 

 

 

<치밭목 산장의 눈더미가 2m 이상 쌓였다>

 

 

치밭목 산장지기 민대장이 이제 이번 달 말로 공단에 위임하고

하산한다고 한다.

 

저분과의 인연이 15년 세월을 넘었는데

참으로 아쉽다.

 

그나마 민대장 있을 때 다니기 편했지 이곳도 공단이 운영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고지식한 법규와 규정으로 답답해질 것이다.

 

 

 

<민대장 포스>

 

 

 

민대장의 따뜻한 마음씨와 잔소리(?)에 잠시

즐거운 점심시간이었다.

 

민대장 후배들이 아쉬운 마음에 그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 올라왔다.

 

일련의 일행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잠시 소란스러웠지만

그 일행 중 나를 알아보는 사람만 두 명이나 된다.

 

저어기 놀랄 다름이다.

어째서 나는 생면부지인데 그들은 나를 알아본다 말인가?

 

조심해서 행동하고 다녀야 할까보다.

 

 

 

<돼지수육이 나왔다>

 

 

 

그들이 올라오면서 다져놓은 러셀 덕분에

내려가는 건 제법 수월했었다.

 

그들도 다음 날 조개골로 하산한다면

우리가 만들어 놓은 러셀길에 다소는 편하게 내려갈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세상사 다 품앗이지 안그런가.

나도 다른 사람의 배려와 희생으로 오늘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거 아닌가.

 

 

 

<무제치기 폭포>

 

 

2015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딴은 다를것도 또 새로울 것도 없는 시간들이다.

 

2016년이 다가 온다고해서 달라질 건 없다.

 

나는 나고

세상은 세상이기에 그런거다.

 

 

 

 

 

 

시간은 흐른다.

한달 전, 내가 이곳에 왔을 때의 모습

 

그리고 지금의 모습.

 

계절의 시간 속,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걸 수 있는 것인가?

 

누가 아는 사람, 답변 좀 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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