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사람들 제정신이 아니구나"
인터넷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냉큼 뱉어내는 한마디였다.
아무리 다른말로 표현하려 해도 딱히 '미친'이라는 말이 아니면
적절한 단어가 뜨올려지지 않는다.
인체의 구조는 뼈와 근육으로 이루어졌다고 분명
학교에서 배운바다. 그런데 과연 그 뼈와 근육만으로 100KM을 뛰어 낼 수 있을까 ?
그런건 학교에서 배운 기억이 없다.
나는 이해 못했고
아니 이해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런일을 벌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쉽게 제정신이 아니거나 또는 미쳐가는 사람쯤으로 가닥을 잡을뿐이였다.
아니면 정말 할일없는 사람들이 행하는 지루하고 따분한 일쯤으로 이해했었다.
아마 그때가 마라톤 하프 코스에 첫 도전을 내민
2007년 11월때의 내가 가진 울트라마라톤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었다.
<원정산행은 내게 있어 고통을 이기게 하는 큰훈련이였다.>
"이사람들...참 대단하다"
무릎 다쳐가며 어렵사리 첫 풀코스를 완주하고 나서
울트라마라톤에 대한 기사를 읽었을때 나의 반응이다.
미친 또는 제정신에서 이제는 대단하다고 여겨질 존경의
단어로 바뀌고 있을참이 바로 첫 풀코스 도전을 끝낸 시점 이였을것이다.
물른 그렇다고 그것이 나에게 해당할 수준이라곤 생각지도 못했고
슬슬 내주위에서도 한명두명 그러한 무모한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을
시기였다.
물른 그때만 하더라도 울트라마라톤은 나에게는 전혀
해당하지 않을 종목이자 가까이 하지 못할 감정일뿐이였다.
풀코스를 처음으로 완주했던
그때가 2008년 9월이였다.
<5월 포항에서..>
"멀쩡할수가 있나?"
포항 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50키로를 무지막지(?)한 속도전으로
뛰어 들어오고서도 내 무릎은 정상적이였다.
그때 내가 결승점에 들어와서 속으로 뱉어낸 한마디다.
불과 1년전만 하더라도 이건 상상못할 일이였다.
풀코스 4시간 50분이라는 아둔한 기록도 모자라
무릎 부상에 한달간 고생했던 추억이 있고 보면
이건 분명 놀랄만한 성과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부상이 없다는건 단순한 완주를 떠나 몸이 그만큼 지탱할
여력이 된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어느정도 몸이 울트라에 대한 준비를 슬슬 해나가고 있을 싯점이
아마도 이때가 아닌가 싶다.
사실 울트라 마라톤에 대한 도전의 의미를 부여해준
대회가 바로 포항울트라마라톤이였다.
순 번 |
성 명 |
성 별 |
지 역 |
소 속 |
비 고 |
수 정 |
247 |
이윤태 |
남성 |
대구 달성군 |
kumf. heavyrun |
신청완료 |
|
246 |
김상환 |
남성 |
광주 서구 치 |
광주철인클럽 |
신청완료 |
|
245 |
이삼규 |
남성 |
부산 동구 초 |
장유마라톤 |
신청완료 |
|
244 |
주신호 |
남성 |
전남 무안군 |
전라남도청/광화문 |
신청완료 |
|
243 |
이순호 |
남성 |
광주 북구 문 |
광주광역시청마라톤동호회 |
신청완료 |
<고민하다 접수 마지막날에 신청했다>
그리고 정확히 한달후
드디어 광주빛고을울트라마라톤대회 100키로 부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겁도 없이 배짱 하나만 가지고 덤벼든 성급한 도전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물른 그 이면에는 손쉬운 자의적 판단도 한몫했다.
향후 도전할 울트라에 대한 LSD의 개념으로
뛰어보자라는 헐랭이 주자의 스스로에 대한 가벼운 도전임을
부인하지 못할바다.
일주일 전부터 단백질에 탄수화물 보충량을 적극 늘렸더니
뱃살이 1인치나 늘었다.
덩달아 몸무게도 제법 부담될 정도다.
하지만 늘어난 체중보다 걱정되는건 무릎이 제법 호전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걱정될 뿐이다.
산행에 미쳐 살다보니 자제해야할 시기에 덜컥 무리한 산행질을
해버린게 원인이다.
과유불급이라 하더니 일주일전에는 좀 쉬어줘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제하지 못한 헐랭이 주자의 어설픈 컨디션 조절이였다.
누가 그랬든가
"자세가 안되어 있다"
딱 맞는 말이다.
목요일까지 무릎이 온전치 못해 냉찜질에 파스까지 동원하며
컨디션 조절에 최선을 다했지만 사실 대회 출전일까지도 무릎은
나아지지 않았다.
다만
어디서 배운건 있어가지고 부지런히 칼국수와 삼겹살로
탄수화물과 단백질 보충은 쉬지 않았다. 그덕택에 뱃살은 빵실해져만 가고 있었다.
광주는 더웠다.
내리쬐는 햇살만큼이나 해내야 하겠다는 의지 또한 강렬했으나
내 다리와 심장이 과연 내 의지 만큼이나 견뎌줄지는 모를일이다.
주최장소인 쌍암공원에
삼삼오오 모여든 전국의 울트라꾼들이 각자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불가사의 하다라는 말외에는 설명이 안되는 수준의
실력꾼들도 서너명 보인다.
긴장은 일주일전 부터 되고 있었지만 대회 당일 더욱더 심해진듯 하다.
속도 불편하고 빈뇨가 잦다 그리고 괜시리 무릎도 아픈것 같고
대회에 대한 부담감이 그대로 신체적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어떻케 해든 극복하고 완주하자!
마음은 이렇치만 과연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를일이다.
흥분도 잠시 어느듯 출발의 신호가 울리고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된다. 불편했던 속은 어느듯 진정되고 무릎 또한 엄살 마냥
특별한 징후를 보이질 않는다.
<지도만 봐도 어지럽다>
도심지를 벗어나
방태산를 넘어 오르막을 치고 올라
21키로 지점의 마을을 지날때까지 모든게 순조로왔다.
몇번 만류했지만 기어이 친형이 몸소 차를 몰고 나왔다.
서울에서 내려오기도 버거웠을텐데 동생을 위해 기꺼이 차를 몰고
광주의 늦은 시골 국도까지 나선것이다.
그후 형님과 동행하며 끝까지 주로를 함께 했었다.
첫 도전에 완주의 힘이 아마도 여기에서 많이 작용했을것임은 분명하다.
역시 마라톤은 혼자 하는게 아니다.
30키로 지점에서 떡과 물을 보충하곤 황급히 앞주자의 뒤를 따른다.
이때부터 뒷주자와 앞주자와의 간격이 심하게 벌어지기 시작한다.
캄캄한 산길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온갖 풀벌레 소리
날아드는 반딧물 그리고 새소리만 들릴뿐이다.
내 숨소리 조차도 시끄럽게 느껴질 정도의 고요함과 적막감이다.
바야흐로 자신과의 지루한 싸움이 시작된것이다.
뜻하지 않는 복병을 만난건 40키로 지점을 갓 지났을때 부터였을 것이다.
발등이 아프기 시작한것이다.
통증도 제법 심했다.
발가락 부터 전해진 통증은 발등을 타고 발목을 아리게 하고 있었는데
이는 대회직전 바꿔 갈아낀 젤깔창 때문이 아닐지 싶었다.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는법
이 험한 숲속 산길 어디에서 깔창을 바꿔 신는다 말인가
통증을 입안으로 삼키며 감내할 수 밖에 없다.
참자...참다보면 되겠지...
내자신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걸고 또 걸어본다...
제기랄 그렇다고 아픈게 가시지는 않는다. 아픈건 아픈거다.
고개를 두개나 넘어야 50키로 지점에 도착할 수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어떤분의 지적이 있고 나서야
조금더 속도를 내며 뛰어 보았다. 제한시간에 맞춰야 된다는
생각에 정신을 집중하니 아픈지도 모르고 뛰었다.
고개의 오름질은 심했다.
겨우 한고개를 넘으니 또 오르막이다.
그렇다고 오르막이 힘들지는 않다.
평지 보다 오르막이 오히려 더 쉬울 정도인데
오르면 내리막이 있으니 지루한 평지 보다야 나을바다.
겨우 겨우 50키로 지점인 솔재 정상에 도착하니 정확하게 제한시간인
7시간 20분만이였다.
박수가 요란하다. 딱 턱걸이로 도착한것이다.
<50km 1cp에서..턱걸이로 도착했다.>
국밥 한그릇을 먹으면서 내내 이런 생각을 했었다.
지금도 죽겠는데 앞으로 남은 50키로를 어떻케 간다 말인가 ..
40키로 이후 발등의 통증은 이 레이스를 더이상 끌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갈등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무거운 엉덩이를 떨추고 일어서니 그런대로 또 뛸만하다.
그렇다고 여기 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다.
포기란 단어는 사실 생각해보지 않았다.
<갈때까지 가보자...>
이후 60키로 부터 70키로 구간까지는 정말 지루했다.
평지의 연속인데
사실 평지라 뛰기엔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뛰는 본인의 입장에서는 힘들었다.
걷고 또 걸었다. 아마도
걸은 거리만 30키로에 해당될 정도다.
뛸힘이 나지 않는다.
여명이 밝아 오는 그때까지 컨디션 악화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든 것이다.
이건 훈련 부족에서 나오는 현상임에야 분명할것이다.
아마도 70키로 지점쯤 오고나니 해가 밝았을것이다.
해가 뜨자 좀 힘이 나기 시작한다.
가장 고통스러울 순간들이였다.
이리비틀 저리비틀 술취한 사람마냥 갈지자 행보에
속은 불편하고 정신은 혼미 스럽다.
도대체 왜 내가 이시간에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가 ?
오늘 하고 있는 내 행위가 과연 정당한가?
이러한 자아와의 끊임없는 싸움속에서
포기라는 단어가 슬그머니 머리속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한것도
이때가 가장 강렬했었다.
마의 구간대라 하더니 정말 그랬다.
눈물이 핑돌고 아픔의 순간은 길기만 했다. 진통제 한알에
고통을 모두 잠재울 수는 없었다.
드디어
내가 뛰기 시작한건 80키로 지점 이후 부터였다.
<도대체 이고통의 행위를 왜 하는가 ?>
해가 뜨자 햇볕이 강렬하다.
썬그라스 조차 꺼집어 내기 싫어 그냥 뛰기만 했다.
만사가 귀찮다.
땀은 비오듯 줄줄 흐른다. 땡볕 위로 뛰기가 쉽지가 않다.
80키로 지점을 넘어 오르막을 넘자 드디어 90키로
지점에 도착했다. 아마도 이 10키로 구간에서 조금더 뛰어준게
그나마 레이스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30키로 내내 골골 거리다 어떻케 이런힘이 났는지
참 궁금할 일이다.
장거리 훈련이나 장거리 산행에 대한 면역치를 올리지 않는다면
마냥 턱걸이 수준에 불과하다는걸 이번 대회를 통해 절실히 느낀바다.
하지만 마지막 에너지의 소비도 95키로를 넘으면서 한계치에 도달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가도 가도 그대로다
지도를 보며 혹시 잘못 들지 않았나 몇번이나 살폈지만
내가 가고 있는 길은 틀리지야 않았다.
심리적으로 정말 지루하고 또 지루한 그길이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무릎이나 다른 부위의 통증은 감지되지
않고 있었다.
무릎이 견뎌주고 있는것이였다. 아마 부상이 있었다면 나는
지체없이 포기를 선언했을것이다.
아니 오히려 아파주기를 기대했을지도 모를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다리는 멀쩡하기만 했다.
시내에 접어들어
마지막 1키로를 너무나도 힘겹게 걸었다.
사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광주대회가 울트라 대회중에서는 악명이 자자한 대회라고 한다.
이런 대회를 내가 첫대회로 삼았다니 참 어이가 없다.
하여튼 그때는 어떠한 변명이라도 내가 이고생을 하고 있는것에
대한 합리성과 당위성을 갔다 붙히고만 싶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저래서 힘들었다.
그러나 분명 그건 어설픈 변명일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지켜본다. 아마도 저사람들은 해뜨기 전에
들어갔던 사람들의 모습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낮선 인물의 고통스러운 표정에서 이대회의 대략난감함을
엿봤는지도 모를일이다.
드디어 그 오욕의 순간을 넘기고
힘겹게 1키로를 타박타박 넘어드니
어제 출발했던 바로 쌍암공원 출발장소다. 16시간 만의 긴여행이였다..
도착하니 제한시간 15시간 보다 한시간이나 더 늦었다.
비록 꽃다발도 왕관도 없지만
그래도 완주의 기쁨이야 그에 비할바가 아니다.
타대회보다 1시간이 짧다고 투덜대봐야 별 의미가 없다.
엄연히 제한시간이 있음에야 탓을 해봐야 뭐하겠는가
기록증에 시간외 완주라고 기록된건
앞으로 내가 해결해야할 숙제임이 분명하다.
부단한 노력만이 저 기록증에 내가 원하는 시간대를
적어 넣을 수 있을것이다.
누가 그러더라
마라톤은 바보들이나 하는짓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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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김미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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