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산행기/지리산행기

중산리~장터목~천왕봉~중산리

구상나무향기 2019. 2. 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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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암폭포>




그동안 몇 번을 올라보았을까?

뜬금없이 드는 별 의미도 없을 천왕봉 등정 횟수.


사실 산이 가져다주는 정서는 횟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난 20년 세월,

나는 천왕봉을 오를 때 매 번 감정이 달랐다.








설 연휴의 첫째 날

새벽같이 등산 배낭을 꾸린 헐랭이 산꾼.


목욜, 지리산에 제법 많은 눈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귀를 쫑긋 세우고 눈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던 터라


오늘 내가 새벽밥을 먹고 길을 재촉하는 이유,

오롯이 눈때문이었다.








설마 하니 하루 밤새 그 많은 눈들이 모두 녹아 없어지진 않을 터

분명 내가 늘 보아왔던 은빛 세상이 도래했기를 기대하며


눈덮힌 겨울 서정을 만나리란

기대감으로 새벽잠을 설쳐더랬다.





<내가 생각한 지리산>




하지만 눈은 이미 녹고

땅은 질퍽했으며 눈꽃이나 상고대는 단 한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날의 천왕봉이었다.


"눈 다 어디갔어?"


하릴없는 독백은 지리산 어드매에

공허로운 외침으로 사라져버렸다.





<위와 같은 모델, 현실>





매 번 다 내 마음에 들순 없다. 행복은 내가 하기 나름이지 않겠는가


미세먼지 사라진 시리디 맑은 지리산의 풍경을

원없이 보았기에 딴은 행운이었다.


요새 맑은 날 구경하기가 되려 힘들다.








건조한 겨울,

아마도 역대급으로 가장 매마른 겨울을 보내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지리산의 눈 소식은 부족했고

폭설로 대변하는 천왕봉의 겨울 서정은 옛날 사진으로 대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앞으로도 이럴까?


그야 나도 모른다.

하늘나라선녀들만 아는 일일터.







<장터목 대피소>





물이 부족했는 데

계곡은 꽁꽁 얼어 붙어 어디서 물을 확보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산 중 어느 곳.


고드름으로 잔뜩 얼어 붙은 곳에서

졸졸 물이 녹아 흐르는 데가 있는 것이 아닌가.


눈을 헤집고 올라가 물병에 물을 담아보았다.


겨울 서정의 진미가 제대로 담긴

그야말로 청량감 최고의 '지리산 겨울맛'.


나는 이 물맛이 너무 좋아
겨울만 되면 견딜 수 없다.







연휴라 그런지 산객은 드문드문 보일뿐

늘 번잡스런든 대피소의 활력은 다소 조용해 보였다.


많은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대피소.


장터목에서 아로 새긴 지난 날의 추억은 오래된 수필이 되고

문학이 되고 그리고 역사가 된다.


지리산을 갓 밟았을 때의 청년은 중년이 되었고

이제 그 중년도 노년으로 치닫고 있으니 말이다.








시리도록 맑은 지리산.


그런데 날씨는 훈훈했었다.


영하 20도니 30도니 하면서 무용담을 늘어 놓으며

추위와 맞서며 산행을 했던 시절에 비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구상나무나 가문비나무가 천왕봉 일대에선

기후변화로 모두 절멸해 가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 수많은 고사목을 목도할 수 있었다.


오늘 이 따뜻한 겨울 날씨와

저 고사목의 죽음은 분명 서로 연관되어 있을 터이다.






<천왕봉 계단길>




독야청정 푸른 저 가문비나무.


이제 몇 해가 지나면

이 사진은 추억 속의 장면이 될지도 모른다.


실제 천왕봉 일대의 수많은 가분비나무와 구상나무는

몇 년만에 모두 고사했으니 말이다.






<가문비나무>



기후변화, 거창한 모티브를 글로서 영상으로

접해보지 않더라도


이곳 천왕봉만 올라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우리네 미래가 되어 버렸다.


아래의 고사목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위의 가문비나무처럼 독야청정 푸렀든 시절이 있었다.






<고사한 나무들>






<고사한 나무들>




저 바위를 뒤덮고 있는 수많은 나무들은

언제 고사목으로 변할지 모르는 서글픈 운명에 처해진 존재들이다.


산신령의 뜻.

인간이 어찌할 수 있는 건 없다.




<수많은 구상나무들>




예전에 비해 아예 생각도 못했던 변화가

우리네 삶에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다가 오는 현실이다.


나비효과라고 했든가

저 구상나무들의 죽음이 우리의 미래에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












시야는 탁트여

저 멀리 노고단까지 뚜렷하 게 보여주는

매우 쾌청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었다.


미세먼지로 찌뿌등한 하늘만

보여주든 지리산은 그날 매우 맑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바람은 불지 않았으며

기온은 온화했고 따뜻했다.









천왕봉에 올라서니

사위 조망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어디를 보더라도 눈을 이고있는 꼭대기는 없어 보인다.


눈은 사라지고 동장군의

위세는 이미 상실한 지리산.


소수의 사람들만이 천왕봉에서

오수를 즐기고 있을뿐 참으로 평화스런 시간이었다.








"무엇으로 사는가?"


간혹 질문을 받는다.


그래 무엇으로 사는가? 나 역시 나에게 질문 해도

선뜻 답을 하지 못한다.


내 삶의 부족함과 민망함이 커기에

남을 가르치려 할 수도 없고 더군다나 남을 비판하려 해서도 안 된다.


나는 갑도 아니고

을도 아니다.


거만한 위치에 서 존재의 이유를 드러낼 필요도 없다.










평생 강자였던 적이 없고

권력을 가진 적은 더더욱 없었다.


나약했기에 노력했고

비루했기에 노력했으며

두려웠기에 노력해야만 했었다.


평범한 대한민국의 중년.

내일은 나도 모른다.








7시간 산행 동안 20여분 쉬었고 물만 조금 마셨을뿐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걸었다.


개운한 그날, 내려올 땐 땀에 후즐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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