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계곡 들머리>
작년 2월 중순경 나는 이 용지봉~정병산 구간을 왕복했었다.
그때 당시 걸린 시간은 12시간 26분 거리는 32km.
올해 3월 17일, 다시 도전한 이번 산행에서
11시간 40분이 소요되었고 거리는 33km였다.
마지막에 길을 잘 못 들어 거리가 다소 늘어난 거 외에는
작년과 코스는 같았지만 시간은 근 1시간을 단축시킨 나름의 쾌거였다.
<가뭄이 끝난 장유계곡>
작년, 장유계곡은 바짝 말라있었다.
내가 장유에 이사온 이래로 장유계곡은 단 한 번도 말라 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나름 수량을 유지하는 청정계곡이었다.
*장유계곡은 반디불이 날라다니는 정말 깨끗한 계곡.
역대급 가뭄을 겪은 작년,
이제서야 비 다운 비가 내려 장유계곡에 물이 가득이다.
장유에 살면서 나는 어느듯 장유인이 다 되었다.
산과 계곡, 그리고 들과 강이 펼쳐지는 이 장유가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장유계곡 주차장, 우측과 좌측 모두 들머리>
초입부터 진달래가 한창.
너무나도 추웠던 올 겨울, 진달래를 보니 "세상에나"라는 독백이 절로 난다.
그동안 봄을 잊고 살았기에
이 진달래가 너무 반가운 탓이다.
혹한 가뭄에 혹한 겨울.
"봄이 올 수 있을까?"했을 정도의 몹쓸 추위가 몰아닥친 지난 세월.
하지만 시계는 돌고 돌아 어느덧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만고의 법칙'을 쓸데없이 다시 깨달은 진달래 견문록이다.
<진달래>
하지만 역시나 동장군은 3월 중순을 훌쩍 지난 이별 시기에도
심술을 부린다.
바닥엔 온통 서리 투성이.
지난밤, 몹시 추웠던 탓에 숲은 냉기만이 가득했고
중턱을 넘어서니 봄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겨울의 서정 속이다.
<숲은 서리가 가득했다>
복장은 가볍게 했었다.
그래도 한낮의 기온은 봄의 기온으로 성큼 오른다는 구라청의 예보가 있었기에 말이다.
장거리 훈련 하기엔 적당한 기온이었다.
서면 춥고
걸으면 훈훈한 아침의 숲.
한낮엔 따뜻했기에 산행하기엔 최적의 기온이었다.
<어설픈 산꾼>
용지봉에 선다.
장유에 살면서 나만큼 많이 이 용지봉에 오른 사람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의 짝사랑 용지봉이다.
사실 한 달 전쯤 나는 용지봉을 지나 천주산까지(약 30km) 갈려고 했었다.
하지만 중간에서 stop을 외치는 자아의 아우성 탓에 포기하고 말았는데
후회막급.
결국 오늘 다시 도전한 것이다.
끝내지 못한 도전은 다시 해야 적성이 풀리는 몹쓸 오기의 발로다.
<용제봉으로 읽고 용지봉으로 쓴다. 용제봉은 옛지명>
앞전 시도했던 훈련
22.94km, 9시간 10분.
장유계곡~용지봉~정병산~용강리.
그날 천주산은 고사하고
그밑에 굴현고개 조차도 못가고 stop.
역시나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생기면
안달이 난다.
<2/24, 앞전 훈련>
"휴~~정말 아득하네"
매번 이곳에 서면 정병산은 하나의 점으로 여길 정도로
아득하기만 여겨진다.
"저기서 다시 돌아와야 하다니"라는
의미없는 자책을 하지만
벌써 2번의 도전, 자책이 아니라 이젠 의지로 바뀐지 오래다.
역시 마음의 다짐이 절반의 성공이라는 격언은
마라톤 하면서 익힌 습관이자 버릇이다.
<용지봉에서 바라본 정병산>
신정봉.
신정봉과 용지봉 사이에
진례로 이어지는 길고 긴 능선이 있음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 많이 넘어갔던 신정봉에 이런 숨은 능선이 있을줄이야
원점회귀 하기엔 적절한 코스다.
용지봉~신정봉 능선을 타면
진례에서 멋진 코스가 될듯.
신정봉에 있는 돌탑이다.
나름 기단을 세운 멋진 탑.
공든 탑이니 무너질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나가기에 바쁜 '그날의 산꾼.'
머리 속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저 탑을 세운 사람의
머리 속엔 무슨 생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각자의 방향은 다른법.
맞은편 우뚝 솟은 능선이
장복산에서 이어지는 안민고개까지 능선.
바로 아래가 창원 공단이다.
대암산 정상.
이곳에 물 한 병과 오렌지 하나를 숨겨 두었다.
돌아올 때 요긴한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
총 3리터를 준비했고,
돌아갈 때를 대비해 1리터를 대암산에 놓아 둔 것.
이 능선에는 약수터가 없기에
나름 무거운 짐을 덜기 위한 꼼수였다.
<용지봉에서 2.7km>
여기서부터는 정신없이 산행에 매진했었다.
신체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컨디션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었고
날씨도 기온도 매우 좋았다.
앞전 가뭄이 지속되어 먼지가 풀풀 날리던 등산로는
최근 내린 비로 충분히 촉촉해져 있어 걷기엔 최적.
그날은 정신력만 있으면 충분히
"도전! 성공"이라는 기대감이 가득이었고 또 매우 즐겼던 산행의 시간이었다.
<위험하지 않는 우회구간>
드디어 비음산.
여기서부터 정병산까지 6.3km의 지루한 길을 보여주는 인내심의 구간.
하지만 길이 좋기에 걷기엔
아주 매력 만점의 코스이기도 하다.
<비음산 갈림길>
정병산 가면서 뒤돌아 본 길.
이렇게 길은 구불구불거린다.
오르고 내리고 정신없이 솟아 오른 봉우리와
고갯 마루의 길들로 이루어진 코스가 바로 용지봉~정병산.
<뒤돌아 본 능선, 갈 때는 다시 올라야 될 길이다>
저 소나무 옹이를
'부엉이방구'라고 하더라
저렇게 주로 조각에 많이 활용된다.
<누군가가 멋지게 조각한 부엉이방구 솟대>
비음산~정병산 구간은 6.3km
가까운듯 하지만 정말 멀다.
산행에만 몰입했던 시간.
정병산 오르는 계단에서 멀고도 먼 용지봉을 바라보며
오늘 돌아갈 시간만 내내 계산했었다.
그만큼 체력과 정신력은 매우 좋았다.
<말뚝의 거리만 보면 멀게 느껴진다>
경남 창원의 진산 정병산.
남해고속도로 마산 진입 직전에 보이는 매력적인 산.
바로 정병산이다.
헐랭이 산꾼에겐 반환 지점이자
다시 시작해야 할 시작 지점.
<헐랭이 산꾼>
장유계곡 출발 7시15분,
정병산 도착 12시 46분
거리 16km, 총 5시간 30분.
작년보다 무려 1시간이나 빨랐는데
'나름의 쾌거'에 어깨가 으쓱이다.
<정병산에서 바라보는 천주산과 남해고속도로>
나른한 오후 나절
이제 나는 저 우락부락한 송곳 같은 능선들을 다시 되집고 가야한다.
처다만 봐도 아찔한 굴곡 진 능선.
못 갈 이유도 못 갈 핑계도 없었다.
가자 가자 다시 가 보자.
주남저수지와 진영 벌판.
이제 활기찬 봄이 시작될 것이다.
정병산에 올라야만 볼 수 있는
경남의 진풍경이기도 하다.
진영.진례의 거대한 벌판을 즐기고 싶다면
정병산에 오르자
정병산 좌우로 좌측: 창원 시가지, 우측: 진영.진례가
드러난다.
비음산을 갓 지난 싯점.
14시 35분경.
산행 7시간 20분을 넘기고 있을 때다.
그래도 지치지 않는 관록의 산꾼 모습이 느껴진다.
<세월이 갈수룩 더 어설퍼지는 산꾼>
지루한 비음산에서 대암산으로 이어지는 길.
오르막은 이 헐랭이 산꾼을 가만두지 않고 괴롭히지만
고통의 지루함 따윈 없다.
작년보다 수훨하 게 이어지는 산행의 고비.
허벅지의 압박보단 되려 종아리 근육통이 느껴진다는 건
힘의 분산이 적절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오르막이 힘들지 않았다는 뜻.
오늘 최고의 고비 대암산에 다시 오르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대암산 오르막이 아득하다>
대암산에서 용지봉을 바라보면 안도가 느껴지는데
이 지루한 산행의 종착점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도도 잠시였다.
신정봉 가는 길목에서 멧돼지 한마리를 목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비음산에서 용지봉까지는 계속 오르막>
작년에는 해가 짧은 2월이였는데
그때 용지봉에 오르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뉘역뉘역 떨어지는 서산 너머의 태양을 바라보며
용지봉에 오를 수 있었다.
<지는 해>
저 멀리 정병산이 어느듯 한 꼭지점이 되어 버린듯
멀어져 버렸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더니
사람 걸음이 이리 무섭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저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렸을까?
그런데 '생각을 생각'해보니 그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아침에도 나는 이곳에서 저기를 바라봤다>
다시 돌아온 용지봉.(옛지명 용제봉)
앞전에는 어둠 때문에 안전을 생각해 장유사에서 임도로
장유계곡까지 하산했었다.
이번에는 올라온 방향으로 오롯이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해는 아직 서산에 걸려있었기에 빛은 충분.
13시 경 출발한 정병산
17시 30분에 용지봉 도착.
정병산에서 용지봉까지 5시간 30분 걸렸다.
*참고로 용지봉에 정병산 갈 때는 4시간 소요.
저 능선이 내가 가장 선호하는 용지봉 올라오는 능선 길이다.
장유계곡에서 1시간30분이면 도착.
길은 참으로 서정적이고 아늑하다.
시작부터 오르막이라는 단점만 빼고는.
빛은 더욱더 소멸되어 이젠 어둑어둑 해져 가는 숲이다.
푸드덕 날아가는 산새의 소리,
이름 모를 날짐승의 움직임에 신경이 곧두 서긴 하지만
해 질 녘 이어지는 산행의 재미는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모를 나름의 진미다.
그리고 충분히 내가 원했던 그림이 그려지는
그날의 여정이었기에 매우 행복했었다.
<끝날 무렵, 어둑해진 숲>
드디어 도착.
거리 33km, 11시간 40분.
작년보다 1시간이나 빨랐다.
취소되었다는 세종울트라마라톤대회가 다시
재개된다는 말에 부랴부랴 장거리 훈련을 이쯤에서 실시한 것이다.
4월7일 세종대회를 목표로
최종 컨디션 조절에 들어가고자 실시한 훈련.
이 산행은 세종대회를 위한 하나의 움직임에 불과한다.
기쁨은 세종대회 완주에서 찾을 것이다.
사실 더 갈 수 있었다.
컨디션은 그날 최고조였고 나는 33km에서 걷기를 멈춘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했었다.
훈련은 어려운 걸 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반복하면서 극복할 줄 알아야 실전이 편해진다.
다음은 거리를 더욱 더 늘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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