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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지리산행기

독바위의 꿈

by 구상나무향기 2009.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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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다. 대나무가 끝없이 자라나 하늘까지 찌르고 있는 죽림속이였다.
사방이 대나무숲이라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어느순간 부터
그안에서 놀고있는 온갖 짐승들을 볼수 있었다.

원앙이 하늘을 날고, 학이 공중에서 춤을 추고 있었고
원숭이가 술에 취해 울고 웃었다.
호랑이가 잠자고 있었으며 말이 달리고 소가 누워 있었다

무언가 ? 대나무 숲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향긋한 향연은 누굴위함인가 ?
그리고 여기는 어디인가 ?

눈을 떴다. 잠시잠깐 독바위 위에서 살며시 눈을 감고 그렇케 단꿈에 잠겨있든 L은
찰나지간 그런 꿈을 꾸었든 것이다.

꿈을 꾸고 있었든 그시각에도 중봉을 아우르며 조개골을 지배하는 독바위의 사위는
쥐죽은듯 고요하기만 하다.

"휴..꿈인가 보다"

비록 시린 날씨였지만 서둘러 산행한 탓에 피곤을 느꼈던 L은 잠시간 그렇케 독바위에서
눈을 붙힌것이다.

꿈이라지만 참으로 요상한 꿈이기도 했다. 도대체 지리산에서 왠 원숭이며
호랑이란 말인가.. 황당하기만 했든 꿈을 그저그런 꿈이려니 여기며 L은 독바위에서
덜깬듯한 자신의 몽중을 잊으려 그제서야 사위를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동부능선 최고 전망대인 이곳 독바위의 위용은 대단하기만 하다. 하봉 중봉을 위로하고
지리산에서도 산중제일의 숨은 비경인 조개골의 지세가 한눈에 드러나 보이는  천혜의
자연경관이 펼쳐지는곳이 바로 독바위다.

지리산 동부능선의 용같이 틀어지는 용태를 볼수있을 뿐만 아니라 웅석봉의 아득한
봉우리 마저도 가깝게 느껴지는 장소인 독바위는 사실 L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가깝게 구름이라도 몰려올때면 그비경은 사뭇 선경이 따로 없을 정도이다. 사방이 탁트인
독바위에서의 조망은 언제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는 묘한 매력이 숨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L은 어름터에서 올라 독바위를 오를때까지만 해도 지리산의 봄이 이토록 시린줄 모르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4월이건만 지리산의 계절은 여전히 겨울에 멈추어져 있었다.
좀더 독바위에서의 조망을 즐기고 싶지만 지리산 동장군의 위세는 그렇케 만만한게
아니였다.

아늑하기만 했든 독바위에서의 그꿈을 간직한체 L은 추위를 빨리 덜추어 내려는듯 서둘러
상내봉을 향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독바위에서 바라본 4월의 풍경



"독바위에 가면 선경이 보여"
오봉리의 민대장은 가끔씩 중얼거리듯 그런말을 했었다.

여느 장사치 못지않게 입심이 대단했든 민대장은 산악인 중에서도 오래된
꾼에 해당하는 관록의 사나이였다.

한때 지리산에서 사냥을 하며 지냈지만 국립공원내에서 수렵이 금지되면서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냥에서 장사꾼으로 전업한 상태였다. 입담에 비해서
그다지 장사 수완이 변변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리산에 대한 일들을
풀어낼때는 그어떤 재담가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소시절 부터 지리산을 넘나들었으니 그가 모르는 지리산의 일은
거의 없을듯한 그런 지리산꾼 중에서도 꾼에 해당하는 대선배 격인셈이다

사냥꾼 시절은 추억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때 그시절 그의 호기서린 비담은
L에게 있어서는 귀가 솔깃한 여느 환타지 소설 보다 더재미있는 무용담 이였는데
어느때인가 그가 독바위에서 가끔씩 선경의 모습을 보았다는 애기를 해준적이 있었다.

상내봉을 내려와 벽송사에 도착했을때 L은 그제서야 오봉리 민대장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오늘은 그의 집에나 가볼까"

L이 독바위에서 꾸었든 꿈속의 장면이 혹시 민대장도 느꼈든 장면이 아닐까
궁금했든 것이다.

추성리로 돌아와 그가 좋아할법한 소주하나와 피래미 회무침 한그릇을
사들고는 민대장이 있는 오봉리로 차량을 몰았다.

"아니 자네가 여기 왠일이야"

수염이 덥수록한  민대장이 이른 저녁상을 차리고 있는 폼이
영락없는 홀애비  행색이다.

해가 지는지 돋았는지 모를 지리산에 갇힌 오봉리인지라 여느곳보다
밤은 빨리 찾아오고 있었다.

아득한 동부능선


피래미 회가든 봉지와 소주병을 흔드니 민대장의 입고리가 귀에 까지
걸리며 환하게 미소를 지어낸다. 손님보다 물건이 더 반가운게다.

산속에 들어와 벌써 몇십년인가 ..이제 외로움도 달관할때가 되었을법도
하지만 그래도 그는 산중에 찾아오는 손님을 제일 귀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것도 오늘같이 소주한병과 회 한접시를 사가지고 오는 사람은
특히나 유별나게 좋아하는 사람이다.

"오늘 독바위에 갔다왔어요"

독바위에 올라 잠시 꿈을 꾸었든 애기도 해주었다,
민대장의 소주잔이 탁자를 친다..

"캬아~ 독바위....그기에 왜 갔노.."

"산행하러 갔지요 "

"니는 맨날 그만 가나"

"허..이번 코스를 따르자니 역시나 독바위네요"

"자네나 나나 독바위 참 좋아한데이..'

오봉리에서 독바위 가는길도 사실 민대장이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민대장은 동부능선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든 사람이다.

멧돼지를 찾아 때론 노루를 쫒고 때론 산야초를 찾으러 산토끼 마냥
그렇케 지리산 구석 구석을 찾아다닌 그가 모르는 지리산의 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을 하는 정도이다.

환갑을 넘은 그는 지리산에서만 벌써 50년 세월이다.

"독바위 그곳은 기가 모여있어"
"누구든 그곳에 가면 말이야 이상한 꿈을 꾸게 되어있지 그곳에서
잠한숨 자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다 니가 꾼 그런꿈을 꾸었을꺼야"
"니가 꿈에서 본 모습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야"

뜬끔없는 무릉도원 이야기에 황당한 이야기인가 싶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민대장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섣불리 딴죽 걸기가
쉽지 않을정도다.

"무릉도원은 불제자가 만들어낸 이야기이고 무릉도원 같은 터에
생긴곳이 바로  독바위 아래에 있는 대원사가 아닐까 싶어"

"무릉도원은 대원사 그자체야 따로 있는게 아니지
무릉도원이 대원사고 대원사가 곧 무릉도원이지"

"나는 꿈을 꾸면 대원사에서 수도하는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내모습을 보게돼"

민대장이 전생에 불제자?
L이 보기엔 그럴법도 하다. 민대장은 고리타분한 관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풀어내는 사람이였고 또한 평생 처자식 없이 홀로
사는 홀애비 신세이니 딴은 그럴법도 하다.

그의 믿지도 못할 말에 L은 그저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종내는
지겨운듯 그의 말을 듣는듯 마는듯 하고 있었다.

민대장이 기우는 술잔에 이미 술병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꾼 독바위에서의 꿈이 혹시나 재미있는 사연을 안겨줄듯
생각해서 찾아온 길이건만 민대장은 이상만 소리만 풀어나가고
있는것이다.

민대장이 말하는 이상향인 바로 무릉도원은 어디인가 ?
육십이 넘도록 지리산에 살았던 그는 무릉도원을 대원사로
지목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그다지 신경쓰고 싶지 않는 L은 화제를 돌려 그의 예전
사냥실력에 대한 무용담으로 슬쩍 돌려놓았다. 그나마 그게
지루하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반달곰을 잡으러 한달동안 반야봉을 뒤졌다는 민대장의 이야기가
결말을 맺을즈음 L의 눈꺼풀은 상당히 감겨져 가고 있었다.

반달곰이 잡였는지 민대장이 잡혔는지 모를 이야기를 자장가삼아
그렇게 L은 잠이 들고 말았다.

이른 아침  L은 증조부 산소가 있는 오봉리 산자락 언저리를 찾아
예를 취하고 곧바로 외고개로 올라 왕등재로 향했다.

동부능선 동왕등재


집앞마당 앞에서 잘가라며 손짓을 하는 민대장은 어제밤 잠을 못이룬듯 했다.
평소 잘자는 사람이 그날은 거의 잠을 못이룬듯 한데
그이유는 아직까지도 모른다.  왜 그때 그렇케 밤을 지세웠을까 ?

L은 외고개에서 왕등재 습지에 들러 습지에 서식하는 식물들을 조사하고서는
서둘러 동부능선을 타고 넘어간다.

힘들게 구비구비 동부능선 산자락을 넘어갈쯤 어느듯 저아래에
펼쳐지는 대원사의 모습이 아득하게 조망되는 동왕등재에 도착하고 있었다

"휴"

4월달의 지리산이건만 아직까지도 겨울맛을 보여주고 있었다.
흐르는 땀을 딲을 세도 없이 꽃샘바람은 금방 열기를 식혀주고 있었다.

바위만 있는 동왕등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또다른 맛이다,
천왕봉의 위세가  아늑하고 그아래 펼쳐지는 조개골과 대원사의 정경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의 비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원사가 바로 무릉도원이야"
어젯밤 민대장이 그런말을 했었다.

그말을 듣고보니 동왕등재에서 바라보는 대원사의 정경은 딴은 그럴듯해
보였다. 정말이지 지리산에서도 최고의 명당이지 않는가

동왕등재


민대장은 지리산의 모든 정기가 모여드는 바로 그곳이 무릉도원인데
있다면 딱한군데 바로 대원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어제 독바위에서 꾼 그꿈과도 대원사와 관련이 있을까 ?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L은 밤머리재에 도착하면 꼭
대원사로 가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L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산길은 몇번더 오름과 내림을 보여주더니 어느듯
도토리마냥 쏫아오른 큰봉우리에서 뚝떨어진다. 산길은 어느듯 웅석봉 들머리가 있는
밤머리재로 이어지고 있었다.

밤머리재는 산청 지막과 덕산을 이어주는 큰고개이다. 여기에서 대원사까지는
그다지 먼거리가 아니다.

L의 고향이 이곳인 탓에 그는 일년에 서너번 이상은 밤머리재를 넘어가지만 이번처럼
대원사를 찾기위해 일부러 밤머리재를 오른적은 없었다.

어쩐지 기분부터가 다르다. 평소 대원사를 찾았든 느낌과 또다른 기분이였다.

"안녕히가세요 손님"
큰소리로 외치는 택시 기사의 인사를 듣는둥 마는둥 하면서 서둘러 대원사 앞 계단을
오르고 있는 L이다. 마치 뭔가에 홀린듯하다.

그러나 특별히 그에게 보여주는 감흥은 없었다. 그저그런 대원사였다.
도대체 원숭이며 호랑이며 소며 말은 어디에 있는가..그리고 대나무숲은
또 뭔가 ?

어제 독바위에서 나타났든 꿈속의 사물들을 생각하며 천천히 대원사 곳곳을
찾아다녀 보았지만 그다지 관련성 있는 것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물른 꿈은 꿈이다. 꿈속의 내용이 현실로 나타날리는 없지 않는가...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지며 그렇케 대원사의 대웅전을 돌아 내려오던때였다.

"웅웅웅웅웅"
느닷없이 전화가 울린다. 조용한 산사에 방해가 될까싶어 진동으로 맞춰둔
핸드폰이 사정없이 울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혹시 L 아닌가"

"예...접니다만 누구십니까"

"아..나 저기 오봉리에 사는 민대장 친구일세"

"그런가요..그런데 절 어떻케 아셨는지요 "

"그사람 전화번호부에 있는 사람들은 죄다 걸고 있어"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다. 전화를 왜 합니까"

"민대장 그사람 오늘 저세상으로 갔어..심장마비라고 하네"

"예...에....."

분명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했고 손까지 흔들어주던
민대장이 아니였든가 그런그가 갑자기 심장마비라니....

L은 정신을 수습하고 서둘러 그가 있는 오봉리로 다시 향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건강한 그가 심장마비라니
어젯밤 잠한숨 못자더니 혹시 그일때문은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들고 있었다...그는 무릉도원이라는 말이 나오자
정말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었다..그리고 이제 그기가 어딘지 알고
나니 세상사는 재미가 없어졌다는 애기까정 했었다.

이상향은 없다고 ....이상향은 자기 가슴속에 있는거라며 그렇게 말했었다.....
이상향...이제 이상향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택시를 타고가는 L의 표정은 알듯모를듯 수시각각 바뀌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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