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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지리산행기

지리산 당일 종주기

by 구상나무향기 2009.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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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 헉"

숨이 턱까지 몰아치는지 가쁜숨을 연신 몰아쉬는 한사내가 어둠이 걷히기 전의

삼도봉을 향해서 내달리고 있었다.

"안돼 조금만 더 빨리"

뭐가 그리 급한지 이사내는 온신의 힘을 다해서 반야봉을 돌아 삼도봉을 향해서
내달리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 가면 크나큰 기쁨이라도 있는지 말이다.

검정바지와 검정상의을 그리고 45L 배낭을 보기좋게 맨  이사내는 두시간전 노고단에서
출발한 "L"이라는 청년이다. L은 반야봉 들머리인 노루목보다는 그래도 삼도봉에서
보는 일출이 더욱 멋질거라는 생각으로 온힘을 다해서 삼도봉을 향해서 치닫고 있는
중이였다.

노루목에서 부터 이미 일출의 기미는 있었고 붉은 소혀같이 드리우는 일출의
징조가 거의 다되어 가고 있을 즈음이였다

그래서 L은 이번에야 말로 지리산의 장쾌한 일출을 지켜보기 위해서 바쁘게
산길을 재촉하고 있었든 것이다. 지금껏 많은 횟수의 지리산 일출을 시도했지만
단한번도 제대로된 일출을 보지못했든만큼 이번에도 조상의 탓으로만 돌리기가
싫었든 것이다.

"분명 노루목에서 보았든 일출의 기미는 장관이였어"

그랬다. 노루목에서 영신봉 자락 뒷편으로 붉게 타오르는 일출의 징조는 아주
보기좋은 그야말로 삼대의 덕을 쌓아야 볼수있다는 지리일출의 제대로된 장면
같아 보였기 때문이였다.

어두운 지리산




잘하면 이번에야 말로 몇년묵은 소원을 풀게된것 같은 즐거움에 산길을 내달리는
L의 발걸음은 힘든만큼 흥분되고 있었다.

묘향대 갈림길을 지나쳐 드디어 삼도봉 봉우리에 도착할때....드디어...드디어

"젠장"

L의 푸념은 공허하게 지리산 불무장등 어느 구석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반야봉에서 이어지는 피아골까지의 장쾌무비한 불무장등 뒤로 펼쳐지는
일출은 이미 시작되었고 L이 바라본 풍경이란 쏫아오른 붉게 타는 태양의
이글거림이였다. 마치 L을 조롱하듯이 태양은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붉게 타고 있었다

일출 순간의 포착은 이미 틀려먹었다. 역시 이번에도 조상의 음덕이 모자란
자신의 팔자쯤으로 돌려야할것 같다. L은 이미 이러한 모습에는 익숙한듯 쉽게
체념한다. 어차피 지리산의 일출은 365일 계속 반복하는거 아니겠는가 자신만 부지런
하면 언제든 멋진 모습의 일출은 볼수있는 것이다.

"또 다음이다"

그래도 일출후 붉게 묻어나는 반야봉의 비경은 그런대로 지금이 아니면 보기힘든
장면인지라 그런 장면이라도 느껴보았으니 위안을 삼아야 할것 같다.
삼도봉에서 떡과 과일로 잠시 요기를 취하고는 L은 아무런 미련없이 다시
지리산 숲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이사내 어디로 가고 있는것일까 ?

토끼봉에서 바라본 지리산의 풍경




"우와 이사람들 제정신이야"

몇년전 L은 인터넷 공간에 올려진 수많은 산행기를 검색하든중 지리산 당일종주에 대한
산행기를 보면서 이런말을 내던지곤 했었다.

물른 그때만 하더라도 L은 지리산 종주한번 못했든 햇병아리 수준에 불과했든터라
지리산 당일종주에 대한 기록은 L에게 있어 거의 기적같은 수준의 체력과 의지력
이였다..

"아니고 난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겠네"

그들의 기록속에는 8시간이니 13시간이니 하면서 적혀있는 지리산에서 날라다닌 그들의
무용담같은 기록은 L에게 있어서는 거의 환상 그이상의 수준이였기 때문이였다.
그에 한몫 더해서 지리왕복종주는 거의 다블로 미친사람들만이 할수 있는 그런 경이적
체력의 소요자라 생각했었다.

L은 아직 8시간 이상의 산행을 해본적이 없었다. 8시간만 하더라도 그동안
해왔든 산행의 최고 기록이였다. 그런데 지리당일 종주라니 아니 그보다 지리종주
자체도 해보지 못했는데 그게 어떤 수준의 산행인지 감조차도 잡히지 않고 있었다.

몇년전만 하더라도 L은 그저 주말에 시간나면 어쩌다 산에 한번씩 올라가는 붉은조끼에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신어야만 산에가는 복장인냥 생각했든 그저그런 일반수준의
등산객에 불과한 초보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내가 말이야.."하면서 시작하는 산행에 대한 무용담은 하산주에서는
빼놓을수 없는 자랑거리요 또한 입담거리 일것이다. L은 이러한 자리에서
그들이 경쟁적으로 토해내듯 떠들어대는 반쪽짜리 무용담을 듣기를
즐겨했었다. 마치 자기자신도 그렇케 하기라도 하는듯한 흥분감도
적절하게 섞어가며 말이다...

그러나 어느때인가 이런 애기꺼리들에 대해 어느정도 식상할 정도의
수준에 있을때 L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다가온 것이다.

L이 부산산사람들의 조은산(이기홍)고문님을 만나게 된건 몇해전 봄이였다.
웅석봉을 함께 하면서 지리산의 장쾌무비한 능선을 바라보며 고문님은 그때 태극종주에
대한 시나리오를 L에게 들여주었었다 .

"진정한 종주는 말이야..웅석봉까지 오는것이야"

그리고 6월경 태극종주를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L은 선뜻 오캐이 사인을
보내고 말았다. 그게 뭐하는건지 또 어떤 수준인지로 모르고 선뜻 하겠다고 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대책없는 답변이였다. 그러나 무작정은 아니였다.

그때부터 L의 체력준비는 시작되었다. 헬스장에 다녔고 그리고 주말마다 산에 올랐고
또한 지리산을 틈나면 찾아가 산행을 하는등 여러가지 준비를 했었다.

그리고 그렇케 준비했든  3개월후  보기좋게 3박4일동안 지리산을 누볐고  태극종주를
성공했었다. 지리종주 한번도 해보지 못한 녀석이 태극종주부터 했으니 사실 황당하기도 했든 사건이였다.

어두운지리산




그후 몇번의 지리종주후 L은 드디어 그몇년전 산행기를 통해서 "미친.."운운했든 바로
지리당일종주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든 것이다.

토끼봉에 올라 반야봉을 바라보며 그리고 저멀리 바래봉에서 펼쳐지는 서북능선의
우람하고 장쾌한 선을 바라보는 L의 머리속에는 몇년전 자기가 멋모르고 행했든
그 지루하고 힘들었든 태극종주때의 모습을 뜨올리고 있었다.

무식한 배낭에 말도 안되는 큰침낭을 얻어놓고 헉 헉대며 그렇케 그때도 이토끼봉을
넘었을 자신을 생각하면 L의 입가에는 살며시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후 지리산을 타면서 수도없이 토끼봉을 넘었었다. 그러나 오늘만큼 피곤했든적은
없었든것 같았다. 배낭을 뒤로하고 다리를 뻗고 앉으니 자신도 모르게 쉬이 잠이든다.

살을 에는듯한 추위도 잠시잠깐만 참아보기로 한다. 눈꺼플의 무게보다 지리산 동장군의 위력이

아직은 덜한 탓일까...

휴식치고는 참 달콤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그런지 피곤이 몰려왔고 잠시잠깐 그렇게
토끼봉에서 10분간 잠을 보충한 시간은 첫사랑과 행하는 첫키스 만큼이나 달콤한
것이였다.

지리산의 초겨울은 매서웠다. 귓볼을 후벼파고 볼살을 찢을듯 그정도로 사나웠다
바야흐로 어느듯 지리산에도 삭풍이 부는 겨울이 다가왔음을 알수 있었다.

서릿발이 아직도 건재하고 바위틈의 고드름이 싱싱한걸 보면 적어도 영하의 기온이
위로 올라간건 아닌것 같다. 연하천을 향해서 구비구비 돌아가는 지리능선길에서
보아온 고드름들은 오늘 지리산의 기온이 어느정도 인지를 잘알려주고 있었다

연하천에 도착했을때는 오전 9시가 조금 늦은 시간이였다.  작년에도
똑같이 지리산종주를 했는데 그때는 연하천을 오후 4시경에 도착했었다. 발걸음 느린
여성일행들이 많아서 그런 연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천천히 지리산을 느끼기 위함
종주길이였기 때문에 시간 구애는 그다지 받지 않았다.

천천히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즐기는 산행에서 급히가는 급행열차마냥 무작정 내달리는
산행의 차이는 역시 시간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보게 한잔하게"

옆에서 인심만큼 뱃살도 넉넉한 중년의 아저씨가 L에게 커피를 건네준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마침 커피한잔이 그리웠든 L에게 있어서는 비싼 술한잔을 받은 그이상의
값어치가 있을 커피였다. 무뚝뚝하게 생긴 중년의 아저씨는 말과 얼굴의
조화가 잘이해되지 않을 분위기의 사나이 였는데 보통 입담가가 아니였다

고맙게 얻어마신 커피였지만 입담좋은 그중년의 사나이의 말을 모두
받아주자니 적잖은 곤역이 아닐수 없었다. 이쯤되니 커피 한잔이
독약인냥 생각될 정도였다.

"같이 가세...뭐하러 급히가나"

중년의 사내에게 당일로 천왕봉까지 가야하는 급한걸음이라는 애기는
해주지 않았다. 이사람 필경 오지랍이 넓을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런 애기를 듣게 될것임은 자명한 사실일것 같았다.

"산은 즐겨야지.. 천천히 가면서 풍경도 보고 가야 산행 아닌가"

모르는바가 아니다. 그래서 L은 겨울에 당일종주를 택한것이다.
여느때라면 1박 이상의 지리종주를 택했을것이다. L은 야생화와
풍경사진을 즐겨 찍는 스타일인지라 사실 급히가는 스타일의 산행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황량한 겨울 지리산에 야생화가 있을턱은 없을것이다. 그래서 바삐가는
산행을 지금쯤 계획했는데 이런 속사정을 모를 이중년의 사내에게
아마도 잔소리 몇번 정도는 들을것 같기 때문이다.

"저 일행이 있어 먼저 가보겠습니다"

대충 있지도 않을 일행의 핑게를 대며 중년의 입담으로 부터 해방된 L은
연하천 주변의 주목 숲속으로 급히 빨려들고 있었다.

벽소령이 보인다.




"아직도 저기네"

사실 그랬다. 벽소령은 뻔히 보인다. 연하천에서 벽소령대피소까지 넘어가면서
아마도 이러한 애기를 안해본 사람은 없을법하다.

뻔히 보히면서도 거리는 잘좁혀지지 않는곳이 있다면 바로 연하천에서 벽소령구간이다
벽소령은 구간구간 잠시 모습을 보여준다. 금방이라도 도착할듯 그렇케 손이라도
잡힐듯 하다. 그러나 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도 지도상에 있는 시간만큼 그대로
할해하게 만드는 구간이다.

눈에 보인다고 해서 쉽게 다가가지 않음이다. 금방이라도 도착할듯 하나 벽소령은
그리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마치 성공이 금방이라도 잡힐듯 잡힐듯

하면서도 또한 뻔히 보이면서도 쉽게 잡아쥐지 않음과 같지 않을까..

"L"은 이미 서너번 벽소령을 지난 경험이 있지만 역시 올때마다 그런 기분이 드는건
어쩔수 없는 모양이다. 그나마 연하천으로 넘어가는 무식한 명선봉과 덕평봉의 답답한
숲속보다는 아기자기한 형제봉도 있고 또한 천년을 넘게 산다는 주목과 그리고 고사목
의 풍경은 지리산의 제멋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지루하지만 볼거리도 많은
구간이다..



또한 저멀리 아늑히 드러나는 지리산의 산그리매는 벽소령으로 넘어가는 이길목에서
아주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동안 답답했든 숲속에서 탁트인 지리산의
모습을 바라보니 기분까지도 L은 좋아진다.

왁자찌껄...조용한 벽소령 산장 앞뜰에 비해서 취사장은 한마디로 돗태기 시장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연하천에서 보았을 그런 입담좋은 중년의 사내가 여기에도 또 있었다.

물른 훈훈한 사람들이 모인 즐거운 입담이기에 그소음은 즐거움이
되고 있었다. 추위를 피해서 많은 산꾼들이 취사장으로 몰려 복잡했지만 훈훈했다.

어느듯 시간은 12시을 향해서 가고 있었으며 L은 12시가 되기전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한것이다.

잠시동안 식사를 준비한다. 여유있는 식사시간을 가질수 있는 사항이 아닌지라
대충 가져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행동식의 할애가 많았지 제대로된
식사는 이번에는 챙겨오지 않은탓이다. 역시 바쁠때는 식사시간도 줄여야 한다.

세석평전은 붉기만 하다.







"휴~ 세석이다"


나즈막하게 외치는 L의 목소리에서 그동안 지나쳐온 구간이 얼마나 지루했는지
단편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눈앞에 익숙한 세석평전의 붉은평원이 드러날때 L은 그제서야 짧으나마
휴식을 취할수 있었다. 쉬지 않고 달려온 벽소령에서의 구간이였다.

벽소령에서 선비샘 그리고 세석구간 까지는 참으로 지루했든 구간이였다
특색도 없는 구간을 장시간 걸어가는건 사실 매우 지루한 행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산행이란 그런거 아니겠는가


벽소령을 뒤로하고 숲속길로 접어드는 구간에서의 산행은 또다시
지루함과 또한 자기자신과의 끊임없는 의지력과 싸워야만 했었다.
조금만 쉬어가자고 조르는 나자신의 자아와도 싸워야만 했으며
시나브로 통증을 호소해 오는 나의 신체의 일부들과도 싸워야만 했든 시간들이였다.


결코 남이 대신해줄수 없는게 산행이다. 산행이란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이요 그리고 도전일것이다. 내다리를 떼어내 다른 사람 다리를 붙히고 갈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다리가 부러지고 무릅이 깨어져도 그건 내가 해야할 일이다.
내죄업을 마치 걷는것으로 모두 해결해야할듯 그렇케 걸어가야 하는게 산행인것이다

천왕봉을 휘감는 구름




"이놈아 그리 힘든걸 왜 하냐"

어머니는 늘상 그랬다. 바리바리 온갖 물건을 짊어지고는 산에 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시곤 언제나 그런 말투로 말씀하셨다.

"그냥 가지요"

그리고 돌아가는 답변은 언제나 그렇치만 무뚝뚝하고 영양가 없는 말투로 던져지는
짧은 답이였다.

어머니는 늘상 걱정하신것 같다. 행여 당신의 아들이 그렇케 산에가서 다쳐 오지나
않을지 아님 추운 겨울 그렇케 고생이나 하지는 않을지 항상 걱정하셨다.

그리고 자고 있을때 그렇케 말도 없이 내다리를 주무르고 계셨든적도 있었다.
젊은놈이 산에가서 산토끼마냥 뛰댕기고 생긴 아픔을 어머니는 그마저도 자기의
아픔으로 생각하신것이다.

지금의 아내에게 그걸 바란다는건 힘들것이다. 아마 이혼장 서너개는 잡아쥐고
산에가야 할것이다.

"지리산은 꼭 어머니같네"

촛대봉에 올라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L이 중얼거리는 말이다.
그랬다. 산에간다고 걱정해주시는 유일한 분 그런분이 계시다면 바로 어머니일것이다

L의 머리속에는 몇해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잔상이 천왕봉의 그림자마냥 그렇케
드리워져 있었다. 촛대봉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는건 L만이
가지는 느낌일지도 몰라도 그는 적어도 지리산이 어머니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L은 제석봉을 지나며 천왕봉을 지날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렌턴을 비쳐가는 길이라
천왕봉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구분이 안되지만 한두번 다닌 천왕봉이 아닐진데

천왕봉은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날반겨주었다.

어머니를 만나러가는듯 그렇케 천왕봉은  항상 편안한 곳이였고 또 언제나 그자리에
태산같은 위엄으로 그리고 어머니같은 자애로운 모습으로 언제나 그곳.. 그곳에 가면
있는게 바로 천왕봉이다.

연하선경을 지나며 장터목산장에 도착했을때 노고단에서 나즉히 외쳤든 종주 성공에
대한 의문부호는 거의 풀려가고 있었다.

"해낼수 있을까 ?
"
이물음은 삼도봉을 돌아 토끼봉을 오르고 연하천을 돌아내려갈때 이미 의문에서 긍정적
부호로 바뀌어져 있었다.

"할수있다"

세석을 지날때는 이미 확신이 되어 있었고 저멀리 천왕봉이 보일때는 그건 기쁨으로 변해져 있었다

할수있을까라는 의문부호에서 나도 해냈다라는 즐거움의 느낌표로 바뀌었을때는 도전에
대한 즐거움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모를것이다.

13시간..지리당일종주의 시간이였다. L은 오늘 한일에 대해서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것이다
자신이 한일에 대한 뿌뜻함은 결코 그어떤 성취감에 비해서 뒤지지는 않을것이다.

그날 지리산에는 눈이왔었다. 펄펄 함박눈이 내리는날 그렇케 당일종주에 대한 염원을
푼 L은 그제서야 편안한 휴식을 취할수 있었다. 자신의 자아와
그리고 자신의 신체에게도 그제서야 휴식을 취할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눈과 함께 그렇케 지리산은 하얗케 물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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