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뜀박질하기 좋은 곳을 찾는다면 딱 한 군데가 떠오른다.
만첩홍도와 벚꽃 그리고 개복숭아의 울긋불긋 향연 속.
그 아래 연록빛 새순이 돋아 천연의 물감을 들인 낭만의 길, 바로 드림로드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이 길을 찾는데
올해가 가장 이쁜 길을 장식하지 않았나 싶다.
벚꽃의 개화가 다소 늦어져 색감이 더욱 다양해진 탓.
때는 코로나-19의 엄중한 시기.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안민고개 가는 길은 모두 봉쇄되었다.
어차피 거리를 맞추려면 안민고개 가기 한참 전에 차량을 주차해야만
50km 거리가 가능하다.
멀찍이 차를 주차하고 아침 일찍 안민고개로 향한다.
드림로드는 편도 10km.
로드 곳곳에 시작부터 종점까지 거리 수가 표시되어있어
얼마큼 뛰었는지 알 수 있다.
왕복 20km인데 이걸 두 바퀴 뛰어야 한다.
'드림로드 40km + 주차한 곳 10km'
이렇게 하면 총 50km의 훈련이 되는 것이다.
드림로드엔 두 군데의 약수터가 있기 때문에
물 공급은 자유롭다.
한두 번 뛰어 본 길이 아니라서 나름 익숙한 길.
형형색색의 드림로드, 지치는 줄도 모르고 뛰었다.
마침 안민고개의 유명한 벚나무들도 일제히 꽃을 피워
바야흐로 최고의 절정인 그날이었다.
만첩홍도의 붉은빛은 선명하다 못해 빗방울이라도
맺힐라치면 붉은 물이 떨어질 듯 선명하기만 하다.
이런저런 상념 속, 뛰다 보니 어느덧 10km
종점에 도착했다.
이 종점을 한 번 더 와야 된다.
두 번 왕복해야 40km가 되기 때문. 드림로드는 편도가 정확히 10km.
도착지에서 출발점 안민고개를 보면 아득하다. 시력 약한 사람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10km가 이렇게 먼데 50km은 얼마나 멀고
100km은 도대체 얼마나 먼 거리일까?
머릿속 상념, 내가 겪어보지 않으면 그건 긴장이 되고 불안이 되어
공포가 될 수 있다.
뭐든 겪어 보면 사실 "별 거 아니다"
몸과 정신이야 좀 힘들 수도 있지만
그 모든게 지나가는 순간에 불과한 것.
그 두려움을 부딪치고 또 부딪치면 무서울 것도 없다.
예전, 나는 드림로드 왕복하면 힘들어 초주검이 되었었다.
"이 길을 다시 가서 돌아오라면 난 죽을거야"
그땐 그랬다.
그런데 오늘 나는 이곳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왕복런을 하고 있지 않는가.
하프 코스를 뛰고 나면 탈진해 쓰러졌었다.
" 그런데 그 두 배인 풀코스를 뛰라고?"
언감생심, 나에게 있어
공포의 극기였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풀코스를 넘어 50km는 훈련으로 뛰고 있고
100km 마라톤 완주만 40회 가까이 된다.
원효대사 해골바가지,
일체유심조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올해 처음으로 200km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 생각이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나의 여름 휴가에 제동이 걸린 탓.
200km 낙동강물사랑 대회는 늘 6월에 개최되는데 올해
변동 사항이 없다면 휴가 대신에 이 극한의 도전에 참여할 생각이다.
나는 아직 100km을 완주하면 몸과 마음 모두 초주검의 상태가 된다.
이걸 극복하고 두 배를 뛰어 낼 수 있을까?
그건 '전자의 전철'에 그 해답이 있지 않을까 여겨지지만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두 번째 종점에 도착하니 시간 소요가 만만찮다.
드림로드의 길은 오르락 내리락 급경사 구간이 많은데
대체적으로 평지의 길도 길지만
진득한 오르막이 많아 의외로 시간이 소모되어 버렸다.
컨디션 난조는 딱히 없었고
지루함은 없었다.
세상사 걱정은 다 먹고 사는 일에 기초한다
설마하니 나의 걱정이 남북통일이나 세계평화겠는가
눈앞의 걱정, 당장 서민적 해결이 우리네 초미의 관심사요
걱정거리다.
질경이 같은 서민들의 삶, 코로나가 바로 이 걱정거리를 모두 위태롭게 만들어 버렸다.
한숨나는 작금의 상황.
미미한 바이러스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리 바꿔 버릴 수가 있는가 말이다.
세상을 멈춰버렸다.
뛸 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어찌보면 생각을 하기 싫어서 뛰어 다닌다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르겠다만
뛰는 거 자체에 모든 집념을 둔다.
어찌 뛰다 보니 어느덧 50km. 목적지에 도달하니
해냈다는 보람과 긍지가 가득하지만 한편 무덤덤하기도 하다.
3개월 달아서 50km 훈련만 하고 있는데
언제 대회가 열릴 지 기약이 없는 현실.
훈련이라도 열심히 해놔야 하지 않겠는가
드림로드엔 그렇게 또 봄이왔다.
'세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제도 칠천도 한 바퀴 돌기 (0) | 2020.05.11 |
---|---|
코로나가 주는 혜택 (0) | 2020.04.08 |
흉신악살도래, 춘래불사춘 (0) | 2020.04.01 |
누나홀닭, 바사칸치빵파티 (0) | 2020.03.25 |
장유 율하 맛집, 바른치킨 (0) | 2020.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