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그 무더웠던 뙤약볕 기온들이 엄습했을땐 정말
가을이 올까 싶었을 정도다.
그러나 시간은 흐른다.
여름이라는 단어에 갇혀있을땐 그게 전부인냥 싶었지만
지금은 가을이다.
머리속 진실과
현실속 진실은 다르다.
중봉에서 막 출발했을때
한시간후 다시 그자리로 돌아올줄 예상 못했고
힘들고 고생하며 올랐던 그 지루했던 써레봉길을
다시 돌아오리란 예상도 못했었다.
돌아오면서 내내 아쉬웠던 그순간들이
어느순간 목도했던 단풍의 절경에 순식간에 환희로 바뀔줄 또 몰랐다.
눈앞의 현실
그리고 다가올 현실
그리고 반전
누구도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할 순간이다.
오후 2시
새재 들머리에서 출발할 시간 치곤 제법 늦었다.
무거운 야영짐을 지고 중봉에 도착할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싯점이였다.
고즈늑한 한판골의 길들에서 느껴지는 여유에서
결코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지리산의 극악한 길중 유독 유순한 길이다.
예상대로
치밭목 산장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기울어 짙은 어둠만이 도사리는 시간이었다.
렌턴을 켜고 중봉까지 오르려 했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니 어두운 시간 버거운 짐을 지고
중봉까지 오르는일은 참으로 힘들고 괴로운 일중 하나다.
요즘 내가 하는 행보에 사서 고생하는 일들이 즐비한데
구태여
산에와서까지 그러한 괴로운 심사를 즐겨볼 일은 아닌듯 하다.
계획된 중봉 야영은 접고 인근 치밭목 산장 근처에서
야영을 꾸리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숲속에 몇분의 텐트 행렬이 눈에 띈다.
"저 안쪽으로 들어가서 치이소"
오랜만에 보는 치밭목 지기 민대장의 반가운 목소리다.
"건강하시죠"라며 답변을 던지니
넋 살 좋은 인상에 미소를 던진다.
그가 치밭목 산장과 맺은 인연이 벌써 몇해던가
그는 내가 10년전 치밭목을 처음 찾아 왔을때도 있었고
그 힘든 가을날 하루종일 비를 맞으며 야간 산행을 하며
녹초가 되어 찾아갔을때도 있었고
여름나절 동부능선을 치닫고 기생꽃을 보러가기 위해
그 길을 찾아갔을떄도 그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변한건 세월일뿐 사람도 산도 변한건 없었다.
어둠속 텐트를 뚝딱 거리며 쳐대니
스산한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한다.
준비한 식사까지 여유있게 마치니 비로소 숲속의 낭만이
가슴까지 파고든다.
여유 그리고 자유
숲속에 있으니 모든게 평화로울 뿐이다.
바깥 세상사 시끄러워도 이곳은 그저 도원경인냥 싶다.
바람도 제법 불어댄다.
스산하지만 싫지가 않다. 예전에 야영을 할때는 무서워 꽁꽁 걸어 잠그고
혼자 끙끙대기도 했지만 이젠 그러한 바람소리 조차도 즐겁다.
무서움도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을 시간
간간히 들리는 빗소리만이 들리는 유일한 소리다.
자연과 함께 동화될즘 그렇케 나도 모르게 잠이 든듯 싶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놀라고 말았다.
텐트 문을 여는데 노란색 선그라스를 쓰고 있는듯한 착각이 들어
내눈을 만져봤을 정도다.
세상이 노랬다.
노란 단풍숲속에 내가 텐트를 치고 들어 앉았는데 그 풍경은 가히
필설불구의 놀람이였다.
그저 편하고자 골랐던 장소였다.
안전을 위해 대피소와 가까운 장소에 텐트를 친것인데
이곳이 이런 풍경으로 다아 있을줄 정말 몰랐다.
뜬금없는 행복
요즘 유행하는 말로 올레~다.
숲속에서 떠나기 싫어 한참을 뒤적대었다.
문을 열고 바깥 세상을 보는게 좋아 한참을 보았고
일부러 숲속길을 거닐어 보기도 했었다.
안개가 드리운 신비스러운 숲속 그리고 짙은 단풍색
서둘러 나갈 이유는 없었다.
늦은 아침시간을 뒤로하고 천천히 써레봉을 오른다.
한번 두번 찾아온길이 아니건만 올때마다 새롭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이길을 걷곤 했었다.
중봉과 천왕봉에서 볼 수 있는 단풍의 풍경이 이곳이 가장 좋았던
자위적 판단 떄문이다.
아침나절
중봉에 걸친 운무는 써레봉을 지날즈음 모두 걷혀지고 있었다.
중산리에서 시작하는 중봉골과
천왕봉의 위세가득한 산줄기는 그대로 써레봉과 다아있다.
그리고 그아래 들어나는 숲과 골 그리고 천연색의 가을빛...
바야흐로 이계절 그리고 이시간 지리산에서 보여줄 가장 아름다운
장소가 바로 내가 딛고 서 있는 바로 이장소가 아닌가 싶었다.
그순간은 그랬다.
예전 천왕봉에서 써레봉을 내려오면서
렌턴을 켠 야간 산행을 해본적이 있었다.
아마도 내기억에 그때가 처음으로 접했던 써레봉길의 추억이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만추였었다.
스산한 늦가을 비까지 하루종일 내렸던 날이다.
그때와 지금
다른 시간대 두명의 나자신이 이곳 써레봉에서 오버랩된다.
한명은 긴장된 표정에서
역력한 두려움이 느껴지고
그리고 또 한명은 편안한 표정에서
즐거운 표정이 느껴진다.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사람이 서있건만
달랐다. 너무나도
현실만 다를뿐이다.
그저 산은 그대로 있고 시간은 그대로인데 말이다.
일체유심조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세삼 느꺼워진다.
중봉에 도착하니
저멀리 천왕봉에는 추경을 즐길려는 많은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다.
발길을 돌려 동부능선으로 넘는다.
"돌아가세요"
금줄을 넘어 하봉을 향하고자 넘어갔던 그길에서 어떤분들의
당황스런 조언이 귓가에 파고든다.
공단 직원들이 수고스럽게도 하봉 근처에서
단속을 하고 있단다.
원점회귀의 등산 여정으로 동부능선을 여유있게 걸으려는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내가 옳다고 여긴건 언제까지나 나의 견해일뿐이다.
또다른 판단을 하는 사람들은 견해가 다를지다.
어설픈 설전보다 차라리 내발길을 돌리는게 더 현명한 일이다.
하지만
왔던길 돌아길 길이 서글픈건 사실이다.
판단이 서자
마음도 접어진다.
사실 중봉에서 발길을 돌려 다시 치밭목으로 돌아갈때
무제치기 폭포에서 이러한 풍경을 보게 될줄은 정말 몰랐다.
짙은 단풍색!
이것은 반전이였다.
올라올땐 몰랐다. 이런 장소가 있는줄은 말이다.
한참을 절벽아래 들어난 지리산의 비경을 접하며
오늘 내가 이길을 다시 돌아오게 된것에 대해 기뻐하며
또 즐거워했었다.
올라올때의 풍경보다 내려갈때 보지 못했던 단풍의 비경은
훨씬 더 뛰어나 내내 산행시간을 지체하게 만들었다.
공단 직원의 단속에
되돌아간 여정
그 여정이 결코 나쁘지 않았음이다.
산더미 같은 짐을 지고 들어간 지리산
그리고 그기서 그 짐보다 더 큰 행복감을 받아 들었다.
이 가을 해볼 수 있는 낭만을
지리산에서 모두 풀었다.
난 소원성취했다.
무엇이든 플러스 발상을 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면역성이 강하여 좀처럼 병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늘 마이너스 발상만 하는 사람은
한심스러울 정도로 쉽게 병에 걸리고 만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라이프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생기 있고 건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기운이 없고, 병약한 사람이 있다.
이같은 차이는 대부분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
- 하루야마 시게오의 《뇌내혁명》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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