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규의 산과야생화

마라톤/마라톤대회 참여기

제10회영동곶감101km울트라마라톤대회

구상나무향기 2016. 10. 1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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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대회, 이번 출전이 5번째다.


1번 실패했고 3번 모두 완주해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이 새겨져 있는

나에게있어 나름 친화적인 대회다.


하지만 그건 과거의 명예고

현재의 나로선 여전히 버겁고 고통스러운 영동의 코스일뿐이다.








처음과 지금, 영동대회에 임하는 신체의 능력치는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5번째 출전이지만, 주로에 대한 기억은 잊은 지 오래다.

아니 기억이 나지 않았고 그게 또 뛰는데 어떠한 도움도 되질 못 했다.


머리만 푹 숙이고, 엉금엉금 그저 다리만 들었다 놨다 했을뿐이다.

뛰는지 걷는지 나도 모를 정도였다.







60킬로부터, 까마득하고 아득한 저 어둠의 길은 끝도 없이 이어져 보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

한 줄의 도로만이 나에게 있어 유일한 안내자였다.


어떤 도움도 배려도 받을 수 없는 철저한 어둠 속의 나 !


인생의 길과 흡사해 상당한 고립감을 느껴야만 했었다.










버거운 도덕재와 영동 최고의 마의 구간 도마령.

이 구간을

뜻밖에 수월하게 넘어갔는데,


하지만


졸음은 역시 덫을 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용케 피해가나 싶었는데, 제대로 걸리고 말았다.








이건 뛰어도 뛰는 게 아니었다.

결국, 도착 시간을 미루어 보건대 그건 뛰는 행위가 아닌 거의 걷는 거와 같은 행위였다.


시간은 속절없이 늘어나고

초반에 벌어둔 시각을 다 소모하고야 말았었다.








비로소 졸음에서 정신 차린 80킬로 지점.

이건 저번 참여했을 때도 같은 현상이었다.


데자뷰였다.


어찌 그리 똑같은지 그때도 이 구간 오기 전까지 심하게 졸다가

딱 여기서 정신차렸는데 이번에도 똑같았다.




<20킬로 지점>



90킬로 지점부터는 마의 구간.

지루하디 지루한 평지 길의 저주가 시시각각 주자의 인내심을 실험하는 구간이다.


특히 영동대회는 101킬로다.

1킬로가 더 되는 대횐데, 이 1킬로가 사람 잡는다.










마지막 1킬로가 더군다나 심한 오르막이다.

제한시간 이내에 넉넉히 도착하는 주자야 상관없겠지만


나같이 턱걸이로 간신히 완주하는 주자들에겐

1킬로 핸디캡의 타격은 제대로 먹힌다.


예전 1킬로에서 지쳐 걷다가

결국 9분을 초과하고 말았던 적도 있었다.






<54킬로 지점, CUT-OFF 8시간 30분>



초반 페이스는 좋은데, 늘 중간 페이스가 느려진다.

때문에 막판엔 부족한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늘 전력질주한다.


졸음이 제일 큰 이유다.

이 졸음을 슬기롭게 극복할 방법이 없을까?


다른 사람들은 졸지도 않는가?


하기사 버스정류장 한 켠에서 토막잠을 자는

주자들도 보았으니 다들 졸음엔 장사가 없는가 보다.








나영철님이다.

환갑을 넘은 나이에도 노익장과 정력이 보통이 아니시다.


90킬로 지점에서 만나 옥신각신 서로

이끌어 주며 끝까지 완주하게끔 도움을 주신 분이다.


역대 사진 속, 나의 모습에

나영철님이 주위로 은근히 많이 출현하시는데 그 이유가

서로 페이스가 비슷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나름, 나랑 인연이 독특하신 분이라 만나면 늘 반갑다.





<나영철님>




제한시간 10분을 남겨놓고 극적으로 완주했다.


나름, 정의할 수 없는

여러가지 감정들을 저 길고도 길고 어둡고도 어두웠던

칠흑의 어둠 속에 다 털어 놓고 왔었다.


렌턴에 비춘 한 줄기 빛에 의지해

그 외려움과 고립감을 극복해야만 했던 아득했던 감정의 길들.


인생사하고

어찌 그리 닮았는지, 마라톤은 참 피곤한 스포츠임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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